걍 가십거리로 가볍게 읽으세요~
여기 분들이 흥미를 가질지도 모르는 내용입니다.
댄스그룸 쿨의 보컬 이재훈. 그의 조부는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설치한 괴뢰정권 만주국에서 참의원을 지냈던 이범익이었다.
이범익은 서울에서 양직공장을 운영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거두어들였고 만주국이 건국되자 조선총독부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만주국으로 진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등 많은 활약을 하게 된다. 이범익은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 기요하라라는 이름으로 개명하고 만주국 참의원으로서 당시 중국인과 조선인들의 합동군사단체로서 1930년대 말 40년대 초에 武力對日抗爭을 주도했던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가담한 자나 혹은 동북항일연군에 지원을 해준 자를 색출하기 위한 방법으로 간도특설대 창설을 주장하여 反日獨立運動 세력 탄압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싸이, PSY라고도 한다. 그의 본명이 박재상이라는 것은 다 알기 때문에 넘어간다. 그의 조부는 박흥식이었다.
박흥식은 1926년 선일지물주식회사(鮮一紙物株式會社)를 설립하여 종이와 신문용지 제조, 판매에 주력하였고 이를 계기로 자본을 축적하여 1930년대 중반 화신(和信)의 총수로 성장하였다.
당시에는 면직물 수입이 급증하고 고무신 등의 소비재가 대량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과 수요는 여전히 전통적인 장시(場市)나 지방상점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1934년 화신연쇄점 계획을 추진함으로써 전국적 유통체계의 구축을 도모하였다. 이 시기의 상업분야는 일본의 자본과 조직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예외적으로 참여하였던 것이 화신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근본 원인은 총독부 지배권력과의 결합에 의한 매판성에 있었다.
그는 총독부 정책 및 경제여건에 재빠르게 적응하는가 하면, 총독부 관료 및 일본인 기업인들과의 유대관계 형성에 노력하였다. 1938년 이후에는 조선총독부의 강요에 따라 조선비행기주식회사를 설립하는 한편, 1942년에는 일본 국왕을 만나 ‘대동아전쟁 완수에 전력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발판으로 일제로부터 대폭적인 금융지원을 받는가 하면, 태평양 전쟁 이후에도 전혀 간섭이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이러한 친일행위로 정부 수립 후에는 반민족행위 처벌법 제4조 7항의 ‘비행기 ·병기 ·탄약 등 군수공장을 경영한’ 죄로 최초의 구속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배려로 곧 풀려났다.) 1955년에는 신신백화점, 1956년에는 화신백화점을 열었으며, 1957년 미국의 웨스팅하우스와 대리점계약을 체결하고 원자력발전소 건립계획안을 제출할 정도로 의욕적인 활동을 벌였으나, 무산되었다.
5·16군사정변 후 송도해수욕장 개발권과 화학섬유공장 설립권을 얻었다. 그러나 막대한 외자를 투입한 흥한화섬(원진레이온)이 1969년 한국산업은행 소유로 넘어가면서 몰락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1972년 설립, 1973년 일본의 소니사와 합작한 화신산업(지금의 아남정밀산업)이 부도를 내면서 경제활동은 끝났다. 화신그룹의 총수로서 상업자본가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아직 20세도 넘기지 못한 어린 나이에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팝가수로 성장한 보아(BoA). 한국 대중음악계 입장에서 볼 때는 분명 자랑스러운 아이돌이다. 그런데 따질 것은 분명히 따지고 밝힐 것은 분명히 밝혀두어야 한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좋지만 역사의식이나 사회적인 개념이 없으면 그것은 사람으로서 인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찐 돼지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녀의 증조부는 권중현(權重顯)이다. 권중현이 어떤 인물인가. 을사오적(乙巳五賊) 중의 한 사람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위시한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협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 상실의 주범으로 활동했고 대한제국의 주권이 사라질 때에도 역시 일제의 앞잡이로서 충실한 일제의 충견 노릇을 한 민족반역자가 아니던가.
이완용, 이지용, 이근택, 권중현, 박제순... 이들 다섯명의 이름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파슨이들에게 당부한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치관을 갖고 살아라. 지금 나라가 매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중국 정부가 김정일 정권 붕괴 후를 예상하여 북한 영토에 대한 영유권 확보를 위해 고구려를 자국 역사라고 왜곡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여전히 역사교과서 왜곡이 한창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대한제국 병합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친일파야말로 한반도의 근대화에 앞장선 진정한 애국자들이며 독립운동가들은 당시 시대를 이해못한 비현실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얼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자신들이 나라와 겨레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부터 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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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사실 이재훈과 보아의 경우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박재상의 경우는 유명하죠.
아는대로 주절거려 보면,
싸이의 조부인 박흥식은, 거물급 기업인 친일파였습니다. 일제 시대 조선 최고의 갑부였으며, 반민특위 제 1호 구속자이기도 합니다.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는 강남 개발의 주도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광신학교 초대 이사장으로서, 광신 학원 내에 세워져 있는 그의 동상이 말썽이 되어 몇 년 전에 철거한 것으로 압니다.
박흥식 씨의 아들은 현재 반도체 전문 업체인 '디아이'의 회장 박원호 씨이고, 박원호 씨의 아들이 박재상, 즉 싸이입니다
에...
거참 거시기 합니다.
친일파 후예이니 정이 딱 떨어지는데 후손인데 뭐 어쩌냐하는 생각도 들고.
이승만 아자씨가 얼른 재산 몰수하고 처신을 했어야 했는데...
눈치보느라...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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