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는 요리사와 미식가가 있고, 예술에는 예술가와 애호가가 있듯이, 무협에는 작가와 애독자가 있다.
작가와 애독자는 작품을 매개로 연결되지만, 아마도 양자의 문화적 코드는 다를 것이다. 애독자는 작가와만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전문적인 비평가와도 구분된다. 사태를 더욱 애매하게 만드는 것이, 애독자는 초보적인 독자와도 어느 정도 구분되며 나름대로 독특한 가락과 풍월을 읊어대는 매니아적 기질도 갖는다는 것이다.
바둑으로 따지면 아마도 애독자는 프로는 아니지만, 아마추어 수준에서는 나름대로 급수를 갖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독자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애독자 특유의 문화적 코드는 무엇일까?
독자로서 무협애독자에게는 무협소설을 즐긴다는 것이 두드러진다. 그저 즐겁게 즐긴다는 것이 애독자의 거의 모든 것이다. 그러나 초보적 독자와 구별되는 점은 애독자들은 나름대로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기의 취향을 자각하고 있고, 왜 이것이 이렇게 즐거운지를 어느 정도 해명할 수 있는 자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애독자는 비평가의 위치에도 어느 정도 근접한다. 그러나 아마도 애독자는 전문적인 비평가의 위치에 서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평은 작업이고, 감상은 즐거움의 나눔이기 때문이다. 비평가가 전문적인 관점에서 어떤 작품의 장단점을 예리하게 분석해도, 애독자들은 꿈쩍도 않는다. so what? 이 작품이 나의 흥미를 유발하고 관심을 자극하고 애상을 자아내면, 그만큼 즐겁고 재미있는 것인데...
아마도 애독자들이 작가에게 자기 감정을 이입하는 감상적 팬의 수준을 넘어서서 자기 고유의 취향과 관점을 숙성시키면서 무협을 즐기는 문화생활에 자부심을 가질 때 무협이라는 장르의 문화적 위상은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 장르문학으로서의 무협의 문학적 위상은 과거 공장무협을 만화가게에서 빌려보는 시절보다 상당히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요즘 즐겁고 재미있는 한국무협들이 두루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 옥석을 가리느라고 서로 논쟁할 필요도 없다. 애독자들은 자기가 알아서 자기에게 즐거운 작품을 찾아 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는, 소위 잘나간다는 시시한 대중문학 소설들보다도 정성 들여 쓰여진 한국무협들이 훨씬 재미있고, 인상도 오래 남는다. 소장가치있는 작품들도 여럿이고 보면, 과연 무엇을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될 정도이다. 한국무협은 어느 사이에 한국인들의 문화 안에 자리잡은 하나의 고유한 장르가 되어 있다.
무협애독자로서 나는 80년대나 90년대보다도 특히 요즈음이 매우 즐겁다. 창작에 몰두하는 여러 작가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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