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란에서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글은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의 댓글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반박하기 위해 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1. 여성의 상속
9세기 초반, 웨섹스 왕 에드버트는 도르셋 지방에 살고 있던 어느 세 자매들에게 토지소유권을 인정해주는 헌장을 건내준 적이 있습니다. 여성이 직접 재산을 소유, 분할, 경영하고 심지어 왕에게 그 소유권을 인정받고자 시도하기까지 했던것이죠.
프랑크족의 살리아 법전은 여성의 상속을 금지하긴 하지만, 토지가 아닌 재산의 상속은 금지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570년도에 프랑크 왕 킬데릭에 의해 남자형제가 없는 경우 여성에게도 상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이 수정되었습니다. 백년전쟁에 호되게 데인 이후 다시 변경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고트족 법전은 제법 놀라울정도로 선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들과 딸의 구별 없이 재산을 일정하게 분배해야한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2. 여권
9세기 후반, 웨섹스 왕 알프레드의 기록에 의하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범죄로 인정되었고, 실제로 성폭력 신고가 9세기 후반 무렵에 들어서면 제법 많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흔히 가지는 선입견과는 달리 중세라고 성폭력이 합법이진 않았단 것이지요.
3. 능동성
14세기 중반, 플랑드르의 조안나는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대리전이 되버린 브르타뉴 상속전쟁에서 남편과 아들의 상속권을 지키기 위해 직접 여러차례의 야전, 공성전, 수성전을 지휘했습니다.
11세기 중후반, 투스카니의 마틸다는 부친의 사망 후 하인리히 3세의 감금에 의하여 남동생 역시 사망하게 되자, 남동생 대신 영지를 상속받아 반황제파의 거두로 등장했습니다. 성직자 임명권을 놓고 역시 황제와 대립하던 교황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그녀는 교권의 수호자로 큰 입김을 발휘하게 됬고,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에 역시 직간접적인 영향을 제법 끼쳤습니다.
중세 중기~후기 무렵에는 도시와 길드의 발달에 힘입어 여성 수공업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존재했습니다. 또한, 미성년자 자식을 대신해 재산과 영지를 모친이 대신 경영한 사례 역시 유럽 곳곳에서 여러차례 목격되고, 그 지역의 아주 중요한 정치적 인물로 부상한 사례 역시 다수 존재합니다. 비잔틴 제국을 예로 들어 얘기해보자면, 14세기에 이온네스 칸타쿠제노스와 대립선을 세워서 내전까지 벌인 사보이의 안나가 있습니다. 걍 멀쩡히 잘살고 있는 이온네스 칸타쿠제노스를 안나가 음모론에 빠져 공격을 한 것이고 결국 근처 국가들의 개입을 불러일으키며(이건 이온네스 탓이긴 하죠) 제국의 몰락을 불러일으키긴 했지만...
이런 식의 굵직굵직한 사례들 외에도, 가부장제 안에서 자신만의 권리를 찾으려한 여성역시 제법 여럿 존재합니다. 양육권, 재산권, 남편의 불륜 등등에 대해 비교적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놓여져 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여성이 네네하기만 하는 바비인형은 결코 아니였단 것이지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남편과 대립선을 세운 아내는 여럿 존재합니다. 직접적이고 극단적인 대립만 본다면 숫자가 매우 적겠지만, 간접적이고 덜 극단적인 다툼에도 시선을 돌린다면 그렇게 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여성이라고 중세시대에 투쟁하지 않는 삶을 산 것은 아닙니다.
4. 이혼 및 재혼
교회의 영향력 하에 이혼의 숫자가 제법 줄어들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혼과 큰 차이가 없는 법적인 별거는 여전히 이루어졌습니다. 남편과 아내 둘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종의 접근금지령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재혼은 비잔틴 제국부터 신성로마제국까지 중세유럽의 곳곳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귀족의 재혼은 자식의 후견인/동맹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하에 이루어질 때도, 아니면 그냥 단순히 화끈한 남자가 자신의 야망을 위해 들이댈 때도 이루어졌습니다.
4. 결론
중세시대 여성을 일종의 ‘별다른 저항 없이 가부장제의 엄격한 시선 아래서 탄압 받은 수동적 바비인형’이라 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그런 여성이 분명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지요. 상속녀가 영지의 법적인 소유권은 유지하되 실질적인 소유권은 남편에게 빼앗긴 사례가 여럿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여성이 ‘다수 존재‘했다는 얘기와 ‘모든’ 여성이 그러했다는 얘기는 정말 비교가 안 될 만큼 다릅니다. 무엇보다도, 중세시대는 수많은 문화와 전통이 충돌하는 광활한 유럽대륙에서 무려 천년이나 지속됬던 시대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중세 후기의 연장선이라 포함시키는 역사학자 역시 다수 존재하고요. 그 속에서 여성의 인권은 지역 및 시대에 따라 크나큰 차이를 보였고, 그걸 다 싸잡아 ‘중세시대에 여성의 역할은 제한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좁고 고전적이며 편향 된 프레임이라 생각합니다. 귀족부터 농노까지 여성은 언제나 모든 곳에 존재했고, 역사의 흐름 앞에 언제나 침묵하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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