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병기
작품명 : 멘탈리스트
출판사 : 파피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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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간의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 흥미가 많기에 오래간만에 간 대여점에서 멘탈리스트라는 흥미로운 제목이 보여 얼른 잽싸게 1권을 빌렸다. (2권은 대여중) 그리고 그 글을 읽고난 개인적인 생각을잠시 적기로 한다.
최근 나온 미국 드라마 중에 멘탈리스트(Mentalist)라는 것이 있다. 꼭 소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제목을 지은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이름도, 주인공의 무기도 비슷하다. 최면, 암시, NLP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물인데, 꽤 많은 심리학적 상징이 쓰이고 있어 그쪽으로 지식이 있다면 주인공의 행동이 꽤나 볼만한 드라마이다. 그렇지만, 그런 지식이 없다면 좀 뜬금없는 내용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그런 드라마이기도 하다.
즉, 멘탈리스트 같은 정신에 해당하는 드라마, 소설등은 그쪽으로 지식이 없다면 등장인물들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상당한 전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저술해 나가야 그나마 재미를 줄 수 있다.
사실, 인간의 정신을 조작하는 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다.
첫째로 인간의 정신 매커니즘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고,
둘째는 그 매커니즘을 이용하여 조작하는 기법자체의 어려움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인간의 정신을 조정하는 것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강력함이 그 이유이다.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그 어떤 마법, 무력보다도 들인 노력에 비해서 효과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멘탈리스트의 작가님이 이런 여러가지 소설적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분야에 도전한 것 자체는 꽤나 참신하고, 도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와있는 글 자체의 완성도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첫번째로 소설 구성 플롯 자체의 엉성함을 들 수 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의 행동이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말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행동에서 이야기의 감을 잡는다. 주인공의 말이나 사고방식은 그 행동을 뒷받침하는 주 원인이지, 말이나 사고방식 자체가 독자들에게 이야기 거리가 되어 재미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멘탈리스트의 주인공의 행보는 도대체가 알아먹을 수가 없다. 목적성도 없고, 행동의 인과관계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마치 작가 자신이 알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설명을 빼먹어 버린 듯한, 그런 글이다. 글을 쓸때 작가는 자신이 "이야기꾼"으로써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이른바 교양있는 이들이 쓴 글이 왜 외면당하는가?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상대방도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반하에 글을 쓰기 때문에, 그쪽 관련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는 뜬 소리하는 얘기가 되어 버리기 쉽상인 것이다. 논문이라던가, 전공서가 아닌 소설인 이상, 작가는 이야기의 이해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해 줘야할 이유가 있다. 그렇지만 이런 구성 자체가 멘탈리스트에서는 매우 부족하다.
둘째 캐릭터의 난잡성이다.
글을 읽다보면 도대체 이 캐릭터들이 무엇을 위해서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캐릭터의 성격은 왜 이 모양인지 알수 없을 정도의 캐릭터들이 많이 존재한다. 아무런 특징도 없고, 행동도 균일하지 못하고, 즉흥 적인면들만이 존재한다. 캐릭터의 구성에 대한 아무런 고려없이 그저 글 써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만들어 낸 모양이 보인다고나 해야할까?
셋째, 최면에 대한 비 전문성이다.
소설 멘탈리스트는 이른바 고전최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물론 소설적인 상상력이 뒷받침이 되어 허구적 구성이 존재한다고는 하나, 멘탈리스트에 나오는 최면적 개념은 상당히 얕은 분야가 많다.
뭐랄까, 마치 인터넷에 있는 최면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일반인을 위한 가벼운 최면 서적 1~2권 정도만을 살펴본 뒤 글을 쓴 것 같다.
물론 아무런 자료수집도 않는 것 보다야 자료수집 자체는 꽤나 반길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최면의 기본적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없이 소설로 풀어쓴 글은 곧 얕은 지식의 한계를 들어낼 수 밖에는 없다.
개인적으로 최면에 대해서 가장 재미있었던 소설은 일본의 성인소설 -XXXX회사, XXX네트였다. 물론 성인적 글이기에 읽어보라고 권할수는 없지만, 이것들은 그 내용의 성적인 부분을 제외하고서도, 최면과 그에 반응하는 인간의 심리구조를 꽤나 [그럴듯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간의 정신을 다루는 글에서 독자에게 환상성을 주기 위해서는 최면술사 뿐만 아니라 이른바 내담자(최면을 받는 사람)의 정신 구현 매커니즘도 필요하다. 즉, 최면술사의 언어나 각종 심리적 기법이 상대방에게 어떤 현상을 불어일으키는가.. 이런 묘사가 들어가야 독자가 그것을 이해하고 주인공에게 흥미를 갖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 멘탈리스트에는 최면술사는 존재하지만, 최면에 당하는 상대는 없다. 주인공인 최면 술사는 아무에게나 - 심지어 몬스터 까지- 그냥 최면을 걸고 상대방은 그냥 당하는 것이다.
물론 뒤에 백작가의 이야기 부분에서는 조금 내담자의 모습이 있는 듯 하기도 하지만, 그 설명의 조악함으로써, 크게 어필하지는 못했다.
또한 최면을 건다는 것은 그저 단순히 최면술 책에 있는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일류 최면술가라고 불리는 이들도 방송전에 공을 들여 1차적으로 최면을 걸고 그뒤 후최면을 이용하여 방송에서 빠르게 다시금 최면을 건다. 즉 방송에서 그냥 단순히 레드썬~ 한마디만 하면 사람이 최면에 걸리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보이지 않는 뒷면에서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도 못해서 최면에 걸리지도 않았는데, 방송을 위해서 일부로 걸린척 연기를 했었다는 연예인들도 많다.
즉 최면은 한방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결전 병기가 아니라, 차츰차츰 내담자와 교감해 가며 그의 정신에 건물을 쌓아 올려가는 정신공학적 건축물에 가까운 것인데 그것을 생략한채 단지, 최면 한방 으로 OK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안타깝다.
기본적으로 멘탈리스트에서 나온 최면에 대한 몇가지의 이야기를 해 보면,
1. 최면은 상담자가 원하지 않으면 걸리지 않는다. (특히 무의식적으로) 단, 우회적으로 걸수는 있다.
2.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최면 도입문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최면에 걸리지는 않는다.
3. 사람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은 최면에 걸리지 않는다.
- 즉 영어로 한국인을 최면에 걸수는 없다. :
몬스터가 하는 말과 생각패턴이 인간과 똑같지 않은 한, 몬스터를 최면에 걸어 끌고 다닐 수는 없다. -
4. 자기최면은 타인 최면에 비해서 한계가 있다.
(자기 최면으로 퇴행최면, 인격분리, 지각변화등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5. 퇴행 최면은 과거를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 기억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강화시킨다.
6. 관념운동을 성공시켰다고 해서 그것이 다 최면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7. 비즈니스 세계에서 고전 최면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8. 중력강화 최면을 걸었다 치더라도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일류 스포츠 선수들이 마인드 컨트롤로 얻을 수 있는 육체적 능력 증가와 큰 차이는 없다.
등등.
차라리 소설적 재미를 위해서 최면의 능력을 강화시켜주는 마법적 아티펙트나 신체적 능력이라도 하나 지니고 있다면 모를까, 그냥 일반적 최면 -그것도 고전최면-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방식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분명히 이글은 신선한 시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글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인간의 정신적 컨트롤에 관한 지식이 얕은 것이 안타깝고, 최면을 너무 재미적으로, 강력하게 과정없이 그리고 있는 것도 그렇고, 소설적 흐름의 뒤엉킴이 안타까운 단점이 있다.
최면과 인간의 정신이란 부분은 확실히 흥미로운 시도이다. 그렇지만 그 흥미로움과 그것을 타인에게 재미로 이끌어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또한 그 재미로 넘어가는 가운데 일어나는 왜곡도 문제이다. 그리고 글이 후반부로 갈수록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서 최면은 사라지고, 검기, 마법이 깽판치는 소설로 변해버릴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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