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민소영
작품명 : 홍염의 성좌
출판사 : 청어람
겨울성의 열쇠를 재미있게 읽은 기억에 이 책을 찾았지만, 인연이 닿지 못해 이제서야 E-book으로 읽었습니다. 역시나 훌륭한 필력이고 느끼는 것, 배울 것이 많은 작품이네요. 읽은 소감을 최대한 미리니름 없이 정리해서 비평글 올려보겠습니다.
1.복수의 정석, 그리고 변주...
읽어본 분들은 금방 알아채실 것이고, 작가 자신도 누차 밝히고 있듯이 이 작품의 근간은 몽테크리스토 백작입니다. 최고의 순간에서 지인의 배신으로 나락에 떨어지고, 거기서 기어올라와 원수들에게 피의 복수를 가하는 내용은 용대운 작가의 탈명검, 이를 참고한 게임 서풍의 광시곡, 드라마 아내의 유혹까지 자주 사용되는 플롯입니다.
진부한 소재라고도 볼 수 있지만, 독자들에게 어필하기 쉬운 탄탄한 이야기 구조라는 장점도 동시에 지니고 있지요. 작품 완성도의 관건은 이 플롯에 함몰되어 그저그런 이야기로 남느냐, 훌륭히 소화해 자신만의 이야기로 꾸려나가느냐에 있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홍염의 성좌는 훌륭한 변주곡과 같은 작품입니다. 초반은 말 그대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이야기를 따온 듯 판에 박았지만, 점차 한소절씩 작품의 독창성을 가미해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주인공 격인 에드먼드는 결백한 사람이 아니며, 그를 파멸로 몰아넣은 자들은 나름의 이유, 양심의 가책, 속죄, 책임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면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에드먼드의 복수는 통쾌하다기 보다는 처절하고 슬픕니다.
작가는 손꼽히는 실력자이고 프로이시지만, 훌륭한 원작을 근간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이제 습작을 시작하는 초보 작가들도 충분히 생각해볼만한 작법이라고 보여집니다. 플롯 자체가 흥미를 엮어내지 못하거나 갈등을 품어내지 못하는 글월도 많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2.오페라 같이 장중한 문장
홍염의 성좌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호흡이 깁니다. 마침표 없이 글을 주욱 늘려쓴다는 뜻이 아니라, 글의 앞과 뒤과 연관되어 있고 그 자체로 운율과 리듬을 가지고 많은 의미를 함유한 시와 같다는 것이죠. 짧은 호흡과 경쾌하고 가벼운 문장에 익숙한 독자라면 쉽게 질리고 읽기를 포기할지도 모르지만, 문장 자체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작품은 국내 장르 시장에서 흔치 않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챕터의 시작과 끝, 작품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일관성이 살아있습니다. 단순히 등장인물의 인격이나 개성이 유지됨 이상의 것, 작품의 주제에 대해 풀어나가려는 노력의 표현이죠. 이런 노력의 결과로 작품은 1권부터 7권까지 유기적으로 잘 짜여져 있고 반전은 처음부터 복선으로 깔려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나옵니다. 이런 짜임새 있는 이야기는 독자를 쉼없이 문장을 읽어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3.매력적인 인물 군상
문장의 아름다움과 이야기의 짜임새도 강점이지만, 그 이상으로 캐릭터들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강한 성품을 지녔지만 고독한 주인공 유릭, 몽테크리스토 백작처럼 모든 것을 잃고 지옥에서 살아돌아와 복수를 이루는 에드먼드, 그리고 생명력 넘치고 항상 태양처럼 밝은 여 주인공 로웨나... 그리고 매력적인 특무부 인물들... (세계관이나 특무부의 설정, 그리고 이쪽 캐릭터들의 특징인 강철의 연금술사의 영향이 크게 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평면적인 구성이 아니라 입체적인 인물들의 움직임도 꼭 배우고 싶은 부분입니다. 인물들의 이름 작명법도 배우고 싶고.... 작품마다 이름들이 항상 예쁩니다.
4.이런 작품도 있었던 적이 있다...
책 대여점에 가면 내상 입을 작품을 걸러내는 것이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악서가 양서를 몰아낸다고 개탄한지도 벌써 몇 년 전 일이네요. 현판소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실례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장르소설이 이고깽->전생물->겜판소->현판소 로 점점 질이 다운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조기 종결 나거나 완결도 못하고 반품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그리고 뭔가 아닌것 같은 작품만이 살아남아서 계속 연재됩니다.
시장의 판단과 선택이 이런 것이겠지만, 홍염의 성좌와 같은 작품도 인기를 얻고 널리 읽히는 풍토가 유지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수작은 지금도 있을 겁니다. 다만 선택되지 않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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