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는 종로에서 꽤나 멀었다.
자세히 알려주진 않았지만 아마도 서울을 벗어난 곳에 위치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진산아줌마는 나를 배려한 것인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는데, 최근의 무림이 돌아가는 형세라던가 자잘한 흥미위주의 농담이 주를 이루었고
나는 그녀가 소문과는 달리 꽤 유쾌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 K1 이나 프라이드 같은 이종격투기 대회를 동양의 무술가들이 압도적으로 휩쓸고 있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진산은 그런 이야기를 상당히 좋아했는데, 이종격투기 사상 전무후무한 그랜드슬램 달성자 옹박에서부터, 한국의 전통씨름 기술만으로 최근 격투계의 정점에 오른 최홍만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말하는 인물평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대회에서 내공의 유무가 반칙사유에서 삭제된 것은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진산은 스포츠에도 관심이 큰 사람이었고, 지난 월드컵 8강전에서 우리나라의 황선홍 선수가 시전한 낭아십팔퇴의 퇴법을 극구 칭찬하는가 하면, 히딩크 감독이 고안한 첨예구궁진법의 허실과 장단점을 논하다가 버럭 화를 내기도 하였다.
이종격투가나, 유명한 소년탐정 포청천이라던지, 음공을 시전하는 가수들과 같이 무공을 이용한 엔터테이너들은 다양했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거리는 끝이 없었다.
나는 유명한 원로배우 남궁옥분이 사실 남궁세가 한국지부장이라는 것이라던지, 음공에 매진하는 남궁세가의 총아 드러머 남궁연이라던가,
한가인의 외모가 실은 주안술에 의한 것이며, 그녀의 남편 연정훈은 고구려시대 연오랑이라는 전설의 고수로부터 이어온 '사신무'를 계승하고 있는 연씨세가의 자손이라는 것이나,
한가인의 독문 무공이 무정십삼월이라는 무공이고 그녀가 고무판의 판사중 한명이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친절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완전히 긴장을 풀고 웃고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말한 것들은 모두 기밀에 속하는 거니까 어디가서 떠들어대다간 24시간 안에 주살된다는 것을 알고 있거라."
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젠장.
내공디텍터라는 것은 무림인만큼이나 희귀한 직업이다.
모종의 수련을 통해서 내공을 얻게되는 무공이라는 능력과는 다르다. 내공디텍팅은 격세유전으로 태어나는 천생의 자질이라 할 수 있었다.
가업으로 내려오는 괴상한 직업이다.
그것은 수련도 할 수 없고, 잊어버릴 수도 없으며, 교육이나 전수조차 불가능한 순수하게 비과학적인 능력이라고 한다.
누군가 내공을 일주천하거나, 무공을 시전하는 순간 그 무림인과 100미터 간격안에 있는 디텍터들은 어떤 흔들흔들한 감각을 느낀다고 하는데, 말로써는 이해가 불가능한 개념이었다.
그 감지범위도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다. 내공의 주파수를 기억하게 되면 감지범위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에 현재 나를 감시하고 있는 디텍터의 감지능력은 대략 2킬로미터 안팎. 금강은 나에게 그것을 잊지 말기를 거듭하여 당부했다.
더불어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항상 운기를 거듭하게 되는 내공심법을 가르쳤으니, 디텍터가 놀거나 내가 기절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나는 항상 그의 감시범위 안에 있는 셈이다.
아마 진산에게도 디텍터가 붙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금강이 하는 짓을 보면 고무판의 멤버들에게는 디텍터가 붙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국정원과 유착해 있는 고무판의 행동범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이다.
[내공반] 라는 시설은 공식적으로는 국정원 직할이었고, 사조직 금지항목이었으니까.
이제 나는 평생 불륜도 노상방뇨도 저지를 수 없어. 정말 절망스럽다...
"다 왔다."
외딴 산속으로나 들어가는게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목적지는 의외로 번화가였다. 아니, 유흥가라고 해야 맞겠다.
차에서 내려 진산아줌마를 따라가는 와중에도 수많은 행인들이 스쳐갔다.
전혀 은신처라고 할 수가 없다.
"설마 공짜로 보호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씻겨주고 입혀주고 키워준다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일을 해야지. 여기가 이제부터 그대의 직장이니라."
원양어선에 팔려간 소년의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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