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Lv.52 녹슨
작성
05.08.26 05:52
조회
427

시작은 청소였다.

내가 왜 남의 살림을 닦아내고 거실바닥을 걸레로 밀어야 하는지 반론할 권리는 당연히 주어지지 않았고

나는 그저 구석구석 쓸었다. 꾸역꾸역 닦아냈다.

진산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영재교육을 시킨다고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진공청소기의 사용권조차 주지 않은 것이냐!

하여튼 나는 청소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공의 힘으로 주부습진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니 금강에게 불현듯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진산의 남편인 좌백은 집을 비운 상태였다.

좌백은 천기의 운행을 살피기 위해 스모그가 없는 지리산으로 휴양을 떠났다고 한다.

이 무림인 가정의 생계는 모두 진산이 벌어들이는 모양이었다.

진산의 아들은 속셈과 피아노, 논술, 바이올린, 영어, 불어, 보습학원까지 모두 다니고 있었는데 잠깐 마주친 표정으로는 머지않아 과로사할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아직 유치원생인 것이다.

좌백의 직업은 놀랍게도 없었다.

정말 완벽하게 백수인데다가 취미는 천기를 짚는 것, 수집품은 천체망원경으로서 하나에 수백만원씩 하는 천체망원경을 여섯대나 보유하고 있었다.

점성술사냐. 주제에 자가용도 있고 일주일에 한번은 꼭 온천에 몸을 담가야 하는 체질이란다.

대단하다. 정말 감탄스러울정도로 경제력을 빨아먹는 귀신이다.

좌백은 자기만의 서재와, 자기만의 천기관측실(말이 관측실이지 옥탑방에 불과하다)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직 만나보진 못했지만 상당히 자폐적인 성격을 가진 위인으로 판단되었다.

그의 서재를 청소하다 발견한 낙서쪼가리들에 따르면 좌백은 티코 브라헤와 에드윈 허블을 존경하고 언젠가 케플러를 뛰어넘는 점성학적 성취를 이루리라 결심한 상태였다.

케플러가 점성학 방면으로는 처절하리만큼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낙서에는 천살성이 어떻고 지겁성이 어떠니 하는 소리가 적혀 있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는 말들이었다.

유일하게 내 관심을 끄는 대목은 천기와 외계인에 대한 고찰이었는데,

천기를 좀 더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외계인들의 과학문명이 부럽네, 자기도 우주망원경을 갖고 싶네 하는 흰소리로 마감하고 있었다.

아, 정말 이 집안에서는 아무런 기대감도 가지지 말자.

금강이 설명했던 오피스텔은 결국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진산이 판공비를 횡령한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아줌마가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렇게 무지막지한 생활비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금강에게 받는 돈과 앞으로 내가 벌어들일 돈을 모아서 모두 자기 아들의 학원비로 탕진할 계획이겠지. 아니면 남편의 시시껄렁한 천문연구를 돕거나.

내가 머물게 된 곳은 번화가의 단란주점이었는데, 진산의 집에서 걸어서 한시간이나 걸리는 무지막지한 거리의 일터였다.

무슨 술집에 숙직실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곳에는 온돌도 창문도 없다. 다행히 깨끗한 이불이 비치되어 있었지만 하다못해 TV조차 없는 방이었다.

오늘부터 나는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가끔 진산이 부르면 한시간을 걸어서 그녀의 집을 청소하러 가야 하는 것이다.

왜! 내가 대체 왜?

무엇보다 진산은 왜 나를 점소이라고 부르는데?

단란주점의 정체는 다음날 바로 드러났다.

게이 바. 사장인 진산은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이 바에는 게이나 레즈비언들만 출입하고 있었다.

아마도 진산의 사업적 수완이겠지. 내가 알수 없는 어떤 사악한 마케팅을 하는것이 틀림없어.

다행히 부모님은 내게 깔끔한 외모를 주셨고, 초등학생 시절의 선생님들은 내게 바른 예절을 주셨으며, 중학교 선생님들은 손님과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일반 상식을, 고등학교 선생님들은 동성애자를 동경하는 감수성을 교육하셨다.

사정이야 어떻게 되었던 무보수에 무휴가라는 점만 제외하면 바의 서빙은 내 적성에 상당히 맞는 편이었다.

그래, 가끔 진산이 가게를 둘러볼때만 빼면 말이야.

왜인지 진산은 이 가게가 게이바라고 불리는 것도, 자신이 사장이라고 불리는 것도 싫어했다.

나는 그녀를 주인마님이라고 불러야만 했고,

손님들은 그때마다 아주 즐거워하는 기색이었다.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는지 진산은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서 나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아마 주인마님이라는 호칭에 내가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내가 완벽하게 머슴으로 전락한 순간이겠지.

전혀 수련을 하지 않는데도 금강이 전수한 내공은 점점 불어났다.

그의 말대로 의식하지 않아도 운기가 되는 심법이라 그런가?

그래서인지 잡무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데도 일처리는 점점 빨라졌고 진산은 나날이 행복해했다.

단란주점의 종업원은 나를 포함해 두명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영업방침인지 여하튼 나와 그녀에게는 새로운 닉네임이 하나씩 있었고 내가 이름을 지을때 진산은 '쌍코피'나 '주윤발'이라는 작명을 권유했다.

그것만은 죽어도 따르기 싫었다!

무슨 나이트클럽도 아니고 손님들이 '쌍코피씨 여기 블랙러시안 한잔~' 따위로 부르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고심 끝에 '녹슨' 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예전에 즐겨찾던 웹사이트에서 사용하던 닉네임이었다.

잘하면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도 없지는 않다.

다른 한명의 이름은 녹목목목이었는데, 사실 나의 닉네임은 그녀의 이름을 보고 용기를 얻은 것이다.

저런 괴상한 이름도 되는데 녹슨이라는 이름이 안될게 뭐냐.

진산과 약간의 진통 끝에 결국 나는 녹슨이라는 게이바 웨이터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래... 오늘부터 새로운 인생이 시작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나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그냥 모르고 있었던게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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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하는 금강님, 진산님, 가인님, 좌백님, 녹목목목님 등... 특히 황선홍 선수와 히딩크 감독은 이런 일에 전혀 상관조차 없고...

모두 제 잡담속에서 농락당하실 분들이 아니지만...;

으음..

엎드려 빌겠습니다 -_-;;;

아 그리고 저는 동성애 옹호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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