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귀찮으신 분은 밑으로!
---
2014년 9월 29일
군 평생을 보내리라 생각했던 자대에서 끈 떨어진 연이 되어 기동중대로 오게 된지도 벌써 24일째. 다행히도 내 계급은 처음 보는 병사들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였다.
처음 통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당혹감과 배신감보다는 허허로움만이 남아있었다. 자대에서 전역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지만 무의식 저편의 영역에선 항상 가슴을 졸여왔기 때문일 것이다.
'중간 관리자'라는 자리는 그토록 무서웠다. 점점 병사들의 수준이 낮아지고 계급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는게 보이는데 그걸 조금이라도 늦춰보고자 이건 절대 양보할 수 없다 생각하는 경우엔 아무리 친하더라도 어김없이 FM을 고수했다. 근무 투입 시간이라던가, 공공장소에서 선임에 대한 반말 따위가 그랬고 분대의 최선임자로서는 우리 분대가 최고라는 평을 받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분대가 작전 같은 건 꽤나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매순간이 고층빌딩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허나 이젠 그런 모든 속박에서 자유로웠다. 내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부대의 후임병들은 어차피 내가 키운게 아니니 개판을 치든 뭘 하든 나와 상관없었다. 내가 말려들지만 않는다면. 그렇게 모든걸 내려놓자 난 꽤나 친절하고 약간은 성실한 선임병이 되었다. 기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그 덕에 병사들과 빠르게 친해진 것은 고무적인 성과라 할 수 있겠다.
5분 전투대기조로 편성된지 어느덧 4일이 지났다. 평소처럼 아침 울타리 수색을 하고 있었다. 묵묵히 걸음을 옮기다보니 어느새 위병소가 코 앞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군' 하고 생각하던 차에 뒤에서 털털거리며 내려오는 중형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으레 있는 운전연습인가 하고 선탑 자리를 살피자 눈에 익은 레드/블랙이 뒤섞인 체육복이 보였다. 어디서 봤더라 하며 경례를 올리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묘한 무표정으로 경례를 받았다.
두근
순식간에 버스가 지나갔다. 그 찰나의 순간ㅡ채 1초나 되었을까ㅡ나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옛 소대장님이었다.
"소대장님!" 나도 모르게 외마디를 내질렀지만 버스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답은 외려 뒤에서 들려왔다. "왜?"
"아..하하. 아닙니다"
"싱겁기는."
"······치직······대대 본부중대장님 위병소에서 나갔음······"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보고가 쐐기를 박았다.
'그래, 지금은 본부중대장님이었지.'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아마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방탄을 푹 눌러쓰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복귀하는 버스 안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충성소리에 슬쩍 쳐다보고 '인사성이 밝은 병사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오늘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위의 글은 전출가신 소대장님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ㅋㅋ
글쓰기를 시작하니까 이런 소소한 재미가 있네요.
나중에 친한 친구들한테도 한 편씩 줄 생각입니다.
---
비축분을 쓰다보니 1~2권 정도 미리 써놓고 연재 시작할껄~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이미 늦었지만요;
+ 휴가 이틀남았습니다 엉엉(24일 복귀)
Comment '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