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개연성과 설정에 대한 차이를 궁금해하는 글과 리플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서 몇줄 써봅니다. 저는 개연성과 설정은 분명히 다른문제라고 보기때문에, 그에 대해서라기 보단 '개연성' 을 지적하는 문제에 대해서 조심스래 제 생각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문피아의 연재글들을 보면, 리플로 달리는 가장 많이 보이는 지적 중의 하나가 '개연성이 없다' 는 지적입니다. 또한 비평란 혹은 감상란을 보아도 개연성 문제는 언제나 중요 화두입니다.
그만큼 당연히 개연성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개연성은 그 성격때문에라도 딱잘라 개연성이 없다! 있다! 를 판별짓기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구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글에 대해 개연성을 지적할때, 조금 더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근래 너무나 쉽게쉽게 개연성을 지적하는 분위기가 없잖아 있는것 같다고 느껴서라면.. 제가 좀 건방져 보일까요? 하하, 하여튼 개연성을 지적할때 몇가지 우선해서 고려해야만 할 점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세계관' 에 대한 이해 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가와 소설별로 세계관은 천자만별입니다. 비슷해보이는 판타지세계나 무협세계라도 사소한 것에서부터 중요한 사안들까지 얼마든지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이런 세계관을 인정하고 그것을 주의깊게 고려하는 것이 '개연성'을 지적하기에 앞서 1차적으로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연성을 지적하는 분들.. 중 소수는 판타지세계를 중세시대와 너무 똑같이 차용하여 비판하거나(그래도 여기까진 어느정도 수긍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심심찮게 현실세계속의 삶과 대조하여 비판하기조차 합니다. 이는 너무 매정한 태도입니다. 소설 속의 세계관을 이해하려는 노력없는 개연성 지적은 (그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작품을 나아지게 만드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 퇴보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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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서 필요한 것이 불가피한 '우연성' 의 요소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어설픈 이야기지만 드래곤라자에서 유피넬과 헬카네스로 이야기되었던 혼돈과 질서이야기로 빗대어 볼까요? ^^; 질서도 혼돈의 한 모습일 수 있다.. 뭐 거창한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가 '필연' 이라고 하는 것들도 '우연' 의 일부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스토리의 진행에 우연이란 요소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는 주인공이 양 갈래길 중 어느쪽으로 갈지 아무 생각없이 우측길을 택했다가 함정과 부딪였다면, 그것은 결국 우측을 택했다는 우연이 만들어낸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걸 가지고 개연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물론 지나친 우연성을 지적하는것은 필요하지만, 우연성으로 개연성에 대해 지적을 할때 중요한것은 작가가 그 '우연성' 의 확률을 얼마나 줄이려고 노력을 했느냐! 를 고려해주는 것입니다.
제가 연재했던 글속에서의 예를 감히 들자면, 주인공이 '공주' 를 우연히 만나서 하룻밤을 같이 노숙을 하게 됩니다. 작은 도시 근처에서요. 하하, 이쯤에서 '그럼그렇지' 하고 살짝 조소를 머금은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러나 좀 더 읽어주세요~
단지, 그냥 무턱대고 공주를 만나서 서로 갑작스래 아는사이가 된다면 그건 우연성이 지나친 것입니다. 개연성을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그 공주와 주인공이 목적지가 같다면? 이 역시 분명한 우연입니다. 그러나 일단 우연히 근처에서 마주칠 근거는 되지요.
그리고 근방의 큰 축제때문에 사람이 몰리는 상황이라면? 이 역시 분명한 우연이지만 최소한 어째서 공주도 주인공도 숙소를 못잡고 노숙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근거는 됩니다.
또 주인공은 세계관상 꽤 독특하게도 혼자 여행을 다니고 있다면? 공주가 기사수행중이며 아주 소박하고 격이없는 성격이라면? 등등등 이 모든것들 역시 우연이지만 이것들이 모두 결합되면 아래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 을 열어두게 되는 셈입니다.
'공주는 작은 도시의 꽉찬 숙소를 권위로 강탈하지 않고 근처 많은 인파가 모인 노숙자리로 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그런데 심지어는 인파가 많아 노숙자리조차 그럴듯한 곳을 찾기 힘들다. 밤은 늦었고 잠은 청해야 겠는데 불을 피우고 노숙 준비를 하기도 늦었다. 그런데 다들 다수일행으로 여행하는지라 호위까지 있는 공주가 끼어들기엔 자리도 비좁다. 그때 주인공은 혼자 여행하고 있으며 또 노숙등에도 매우 능숙해 좋은 자리를 잡고 혼자 잘준비를 마쳤다. 그래서 공주는 그것을 보고 하룻밤한 같이 불옆에서 숙영할 것을 요청했다.'
어떻습니까? 너무 제 글 설명이 길어진것 같아 좀 멋쩍습니다만.. 하여튼 이정도면 작가가 '우연히 공주를 만난다' 라는 점을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저는 이 대목에서 한분께 신랄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뭐, 그것이야 제 능력이 부족한 탓이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건 '우연성' 은 어차피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인만큼 그 우연성을 무조건 개연성 부족으로 연관지어 비판하기보단 좀더 판단 기준을 가져주셨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번째로 가져야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주인공이 공주를 만난다' 라면 개연성 부족이라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글쓴이가 공주를 만나는 부분에 여러 고려를 해두어 우연성을 낮추는 노력을 해두었다면 그것을 이해해주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연성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심지어는 지금 이 문피아에서 들어와서 이글을 읽는 것도 우연일 수 있습니다.;;
제가 세상사 만사를 우연이다! 우연이 이루어낸 필연! 이런 거창한 이론을 펼치려는게 아닙니다. 스토리 전개에 우연성이란 요소의 불가피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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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로는 '생략' 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판/무 소설을 써가며 반드시 쓸 수밖에 없는 방식입니다. 글읽는분 입장에선 당연히 쭉쭉 소설을 읽어내려가기 때문에 어쩌면 소홀해지기 쉬운 일입니다만..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이닦고 밥먹고 옷입고 신발신고 집을나서서 버스를타고 직장에가는길에 친구A를만나 이야기를하다가 같이커피한잔하고 헤어지고 30분쯤걷고 도중에구두밑창이떨어져서 구두방에서수선을받고 직장으로가서 늦은것때문에 불려가서혼이났는데 그와중에 직장에불이나서 대피를했다.
이와 같은 사건이 있을때 판/무 소설을 쓰는 이라면 당연히 '직장에 가는 길에 친구A를 만나 커피 한잔했다. 그 후에 출근했는데 직장에 불이나서 깜짝 놀라 대피를 했다.' 이렇게 쓰게 될것입니다. 소설은 단순사실의 나열이 아니니까요.
주인공이 한걸음 내딛는것, 숨 한번 쉬는것, 지나가는 행인1, 행인2, 상인1, 상인2, 마차지기1, 경비병1, 마을소년1, 모두를 보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것을 전부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설령 하더라도 그러면 아무도 그 글을 읽지 않겠지요.
당연히 스토리 진행 과정에 생략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가 읽으면서 그에 대한 감안을 해주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읽는이 입장에서 이 생략부분을 잘 떠올릴 수 있게 글을 쓰는분들을 좋아합니다만.. 어쨌든.
위와같은 사건이 있을때 한 열장면 스무장면후에 나와야할 화재사고지만 소설상으로 옮기면 결국 두장면만에 등장합니다. 그러면 '헐? 주인공이 출근하자마자 불이나?' 라고 사건이 뜬금없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엔 분명 생략된 시간의 흐름, 생략된 사건들이 있습니다.
결국 판/무 소설은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그 사이사이를 사건에 대한 암시 및 다른 일명 떡밥(?)을 던지거나 종종 케릭터를 소개하거나 가끔 재미로 개그코드를 널는다거나 철학적인 논쟁을 넣거나 하는 작가 특유의 부분들을 제외하면 결국 사건과 사건사이에 '생략' 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생략 사이의 일을 추론하고, 최소한도라도 고려한 후에 개연성을 논하는 태도 역시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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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태도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길게 말할 필요도 없지만 '예의' 입니다. '니글이 어찌어찌한게 개연성 없어서 하차한다' 라는 식의 말보다는 '이런 이런 부분에서 연관관계가 좀 약한듯 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정도 라면 작가도 곰곰히 생각해보고 그게 옳다싶으면 글을 수정할 수 있겠지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작가역시 자기 입장에선 이러이러하게 고려하고 썼다~ 라고 설명을 해서 독자분이 생각을 수정할 수도 있을테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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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개연성 문제는 그 사안이 예민하고 신이 아닌한 함부로 쉽게 판단내리기 힘든 구간이 존재하는만큼 세계관, 우연성, 생략, 예의 이 네가지 사안을 고려하고 지적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라는게 이 글의 논지였습니다.. ;;
음, 짧게 쓰려했는데 엄청나게 길어졌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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