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끊은 지도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담배를 끊어서 제일 좋은 건 이제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지요.
그에 비하면 아침에 일어날 때 뭔가 더러운 게 없다거나, 어쩌다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 날 금방 깬다거나, 옷과 몸에서 냄새가 안 난다거나, 돈을 절약한다거나, 저 악마 같은 담배 회사 주머니를 불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 등은 사소한 즐거움입니다.
그런데도,
이제 금단증상도 거의 없는데도,
지난 두 달 동안의 고생을 뒤로 하고 다시 담배를 물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액체로는 해소할 수 없는 집요한 갈증도, 술이 전처럼 맛있지 않다는 점도, 문득 가슴이 답답할 때 뭔가 허전한 채로 멍하니 답답해 하고 있는 수밖에 없다는 점도 아닙니다.
당췌 글이 안 써지네요.
좋아하는 판타지소설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펜 하나를 꺾기로 한 지 몇 달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펜 하나를 더 꺾었지요. 영어 번역 실력에 나름 자부심이 있었는데, 여건상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남 좋은 일만 하게 되더군요. 그 일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본명으로 쓴 책은 인문교양서를 여성잡지 기사 수준으로 수정하길 요구하는 출판사와 3년째 줄다리기 중입니다.
결국 글로 먹고 살 생각을 버리고 다시 말로 먹고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글이 안 써진다는 이유로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을 정도냐!
라고 물으신다면, 먼저 죽은 서양 사람의 말을 빌어 대답하겠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섹스와 같은 행위이다. 그것에는 분명히 나름대로의 실제적인 목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그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요.
저에게는 글을 쓰는 것도 같은 행위인 것 같습니다.
아니, 장르소설을 쓰는 것이 말이죠.
무언가를 낳는다는 것, 혹은 그 결과물보다 쓰는 행위자체가 즐거우니까요.
그런데,
돈, 출판, 개를 줘도 안 아까울 인기 같은 것을 떠나서,
순수하게 본인의 즐거움을 위해 글을 쓰려고 하는데, 그게 안 써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성기능장애에는 사이비 치료제도 있고 민간요법도 있는데, 이건 좀 미치겠는 게 아주 좋습니다.
이젠 술을 많이 마셔도 담배 생각이 안 나는데요.
지금도 내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울 걸 뻔히 알면서도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이걸 쓰고 있을만큼 취했는데도 담배생각은 전혀 안 나는데, 글만 쓰려고 하면 창자에서부터 그 더러운 연기를 향한 갈증이 손을 뻗어 목구멍을 간질이네요.
문피아에는 소설을 여러 편 연재했었습니다.
[나르시스]는 한 권 20만자 분량으로 세 권을 쓰고 연중했지요.
15권 완결 예상이니까 한 동안 그거 쓰면서 신나게 놀 수 있어야 정상입니다.
[차원비행]도 1부만 연재했습니다.
공모전 분량 제한 때문에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2부를 한 챕터로 줄였었죠.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2부를 신나게 쓰고 있어야 정상입니다.
어설프게 연재하다가 어설프게 출판했지만 결말은 제대로 맺었다고 자평하는 [엔트로피]는 사실 [나르시스]와 [차원비행]의 '더 비기닝'에 해당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둘 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폭발하면서 시작하니까요.
[엔트로피]도 출간삭제했으니, 문피아에서 완결까지 쓴 글은 중편 [빨랑하늘] 밖에 없네요.
사실 [차원비행]은 순수하게 쓰는 즐거움을 위해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므로 지금 고려 대상은 아닙니다.
[나르시스]도 너무 무겁고, 역설적으로 애정이 너무 많아서 지금 손대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화창조 스토리 공모전에 보낸 팩션 한 편도 소설로 쓸 생각이었는데 역시 즐거움을 위한 글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저 돈을 벌기 위한 글이 될 것 같아 관두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순수하게 즐거움 만을 위한 이야기를 한 번 써보려고 했는데 담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소한 아직은요.
자기가 읽어도 재미가 없는 데다가 넷북 배터리가 다 닳도록 5천자도 못 쓰고 앉아 있다면 즐거움은커녕 자학에 가까운 짓이겠죠.
고통을 감내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결과물로 추구하는 것도 아닌데요.
담배 없는 삶에 완전히 익숙해지고 뇌와 손가락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재생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온갖 장르를 넘나드는 bottle taste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네요.
다른 일을 하면서 취미생활을 위해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될 것 같진 않으니, 글을 쓰고 싶어 다른 취미생활에 손이 안 가는 글단증상이 사라지기 전에 이 빌어먹을 니코틴 금단증상이 완전히 사라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