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대작, 아니 초장편을 쓰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 또래의 많은 분들이 아마도 그러했듯, 고교 재학 중이던 88년 시립도서관 도서대여실에서 우연히 영웅문 2부 5권을 몇 장 잘못 넘겼다가.. 그만 세상에 나온 모든 무협을 읽고야 말겠다는 되도 않는 집념을 불태우게 되었습니다.
역시 많은 분들이 아마도 그러했듯, 많이 읽다 보니 무협의 정석, 공식, 전형이 눈에 밟혔고, 해서 '나도 쓸 수 있겠다'라는 오만에 틈이 나면 몇 자 끄적여 보다 포기하고, 다시 끄적여 보다 포기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10여년전, 사회생활 초창기에 처음으로 근 몇 만 자에 이르는 글을 썼고, 문피아 등 장르 사이트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어떻게 하면 남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 당시 한참 떴던 '비뢰도' 팬 카페에 가입해서 글 올리는 방에 한 자리수 조회수에 만족하며 찔끔찔끔 몇 편을 올리다 역시 슬그머니 접고 말았습니다.
10년이 지난 2009년 2월.. 지금은 사라진 '디스켓'에 저장된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그 무렵의 글을 발견했고, 또 우연히 문피아를 알게 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조금씩 끊어 올렸습니다.
사실, 있는 만큼 올려보고 다시 슬그머니 관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비축의 끝부분을 올리고 정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갑자기 추천글이라는 것을 받았습니다.
추천글 이후 단 단위이던 조회수가 갑자기 십, 백 단위로 뛰는데, 페이지만 새로고침해도 조회수가 바뀌는 그 현상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나이 서른아홉에 신천지를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미칠 것 같은 쾌감에 쓰고 또 썼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법 읽을 만은 한 듯한데,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진도 또한 너무 느리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출판 접촉도 몇 번 왔는데, 어차피 출판을 감당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출판사 쪽에서도 똑같은 얘기를 하면서 수정할 수 있는지만 물었지요.
당연히 불가능했습니다.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쓰는 첫 작품이라 도저히 고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따로 시놉같은 것도 없이 손 가는 대로 쓰고 있던 터라 고치려야 고칠 수도 없었습니다.
글이 가는 방향에 대한 독자분들의 불만에 솔직히 '앙탈'을 부렸습니다. 제발 선작 취소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도 했고, 조금 있으면 좋아지니 기대해 달라고 끊임 없이 매달렸습니다. 좋아질 런지 자신은 없었지요.. ^^
그때가 아마 선작수 1천에서 왔다 갔다 하던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상처도 받고, 지치고, 마침 회사일도 바빠지면서.. 어영부영 근 1년 가까이 연중에 들어갔습니다.
거의 포기할 생각이었는데, 또 한가해지니 다시 생각이 나더군요.
1년 연중을 꺾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마침, 겨우 주인공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찔끔 써서 내놓고 또 찔끔 써서 내놓고 하던 차에, 갑자기 추천글이 몇 편 쏟아져 나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반으로 줄었던 선작수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천천히 늘기 시작했습니다.
주간 평균 조회수도 연재 재개 이후 평균 50% 정도 늘었고, 선작도 연재 재개 당시 600선에서 '어, 어' 하다 보니, 2,700까지 올랐습니다.
요새, 문미 사족에 농담 삼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이러다, 연재 3년 만에 골베에 들겠다고요..
그럼, 문피아 내에서도 정말 드문 케이스일 거라구요..
솔직히 가능할 거라 생각은 전혀 안 했습니다.
여전히, 먹고 사는 주업이 먼저라 호시탐탐 욕 덜 먹고 연중할 기회를 노리는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오늘 아주 우연히 30위까지 나오는 골베 순위 페이지를 찾았다가, 숨이 덜컥 멎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있었습니다.. 끄트머리 중의 끄트머리였지만 29위에 제 글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대문에 찍히는 10위 안도 아니고, 골베 들었다고 무슨 상 주는 것도 아니지만..
뭐랄까요..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아직도 서장을 쓰고 있다고 간간히 욕을 먹습니다만..
이 순환 빠른 장르 사이트에서 묵묵히 버티다 처음으로 타이틀에 들었습니다..
정말 첫 추천글을 받았을 때 못지 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갑자기 흥이 일어 주체를 못해 이렇듯 주저리 주저리 글을 써 올립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왠 주책이냐 후회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감격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써 올립니다.
오랜만에 이런 기쁨을 준 독자분들.. 문피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3년을 같이 했고, 앞으로 10년을 더 같이 갈 지 모르는 골수 독자분들..
정말 고맙습니다..
저 골베 29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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