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을 마무리하며, 또 내일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일주일을 대비하며 문피아에 들러 이것저것 글들을 찾아봤습니다.
그런 도중에 [토론마당]의 어느 글에서 이런 덧글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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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작품이나 저질 작품이나 뚝같은 인세를 받는 시장...
힘들게 공들여 쓰나 대충 발로 쓰나 똑같은 인세를 받는 시장...
어디서 본 것 같지 않나요?
네, '공산주의'와 상당히 유사해 보입니다.
어차피 똑같은 돈을 받는다면 누가 공들여 씁니까.
대충 대충 발로 쓰고 오히려 그렇게 많이 써야 돈이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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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판타지 소설 시장의 아픈 곳을 아주 정면으로 찌르는 상당히 날카로운 글입니다. 아프지만 그게 현실이지요.
그러면서 문득 저는, 저의 졸작이 출판 계약을 할 때 담당자분께서 말씀해주신 [판타지 소설을 쓰는게 사실 돈이 별로 안되거든요]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유시장을 가진 자본주의 국가에선, 누구나 자신이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만약 대가가 없다면 자연스레 의욕이 없어지고, 의욕이 없으면 정성이 없어지기 마련이지요.
그렇다면 이런 환경에서, 과연 작가는 얼마만큼 자신의 작품에 정성을 쏟을 수 있을까요?
문피아에서 돌아다니다보면 [정말 좋은 글인데...대여점에선 잘 안나가요]라든가 [대여점에서 잘 나가는 글은 결국 양판소에요]라는 글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말은, 안타깝지만 제가 출판사와 몇번 싸우면서 진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인공이 멋지고 강해야합니다]라든가 [복잡한 내용은 없어야합니다]라든가...
결국 아무리 정성들여서 복잡한 플롯과 깔끔한 결말, 철저한 현실 고증을 거친 제대로 된 글을 쓴다해도, 그런 정성을 들인 시간과 노력이 무색할만큼 소위 말하는 [양판소]와 비슷한 돈을 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양판소를 쓰는 것이 낫지요. 훨씬 많이 빨리 쓸 수 있으니까.
물론 예외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예외라는 것이, 현실에서 정말 드물게 일어난다면 결국 그것은 그저 예외일뿐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나빠도 성공하는 사람이 한 둘은 있기 마련인데, 그 한 둘을 내세워서 [환경이 나쁘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겠죠. 그런식이라면 북한이나 소말리아에도 잘먹고 잘사는 사람 한 둘은 있을 겁니다.
아무튼, 종합해서 이야기하자면 작가들이 [정당한 대가]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나마 글에 정성을 들이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즉...[돈에 구애받지 말고 그냥 애정으로 글을 써야합니다]
사실 이런 말은 어디서 많이 본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공계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과학자는 돈보다는 꿈을 쫓아야합니다]라고 어느 높으신 분들이 이야기하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덕분에 유능한 과학자들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판타지 문학계는 몰라도, 비슷한 만화계에서는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재능이 있는 작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본 진출을 노리고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는 만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많이 힘들기에 그런 것 입니다.
즉 이런 현상을 피하고자 한다면 일개 작가로서는 우리나라를 벗어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싶다면? 우리나라 사람인데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싶은 것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을까요?
예, 그래서 많은 이공계 분들이, 그리고 많은 만화가 분들이, 그리고 많은 소설가 분들이 [그저 애정으로] 자신의 일에 몰두합니다. [그저 애정으로] 자신의 일에 정성을 쏟습니다.
저 또한 되도않는 졸작을 쓰는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 작품이 막히거나 고민이 될때마다 [이 작품을 쓰는 이유가 뭘까? 내가 왜 이리 고민을 해가면서 작품을 써야하는가?]라고 자문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때 제가 내리는 답은 결코 [돈을 벌기 위해]라든지 [작가로서 먹고 살려고]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아내가 즐거워하니까]...뭐 그렇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70년대 정신론]으로 무장하여 글에 정성을 쏟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결과물은 그다지 대단치 않아 부끄럽습니다만.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가끔은 자조스럽게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빨리 조기완결 당하고 천천히 즐기면서 글 쓰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 가끔은 진짜로 조기완결을 바랍니다. 농담이 아닙니다.
그러다 문득 다른 분들의 글들을 봅니다. 다른 분들은 저보다도 더 훨씬 많이 자신의 작품에 정성을 쏟으십니다. 그럼 이분들도 아마 저처럼 [그저 애정으로] 정성을 쏟으시고 계실겁니다. 아니, 저보다도 훨씬 더 자신의 글에 애정을 가지고 계실겁니다.
그러니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담아, 정당한 대가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고 그저 재밌게 읽어주는 독자분들을 위해 글을 쓰고 계실겁니다.
여유가 된다면 그런 분들을 직접 만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술 한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군요.
그리고 부디, 아무쪼록 그런 분들이 글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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