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체, 번역투에 대한 옹호론은 대체로 '한국어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차용해도 괜찮다.'와 '번역투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이고
반대론은 대체로 '한국어를 지켜야 한다.' '번역투는 기독성을 떨어트린다.'등을 이유로 듭니다.
그런데 옹호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시며, 자신의 그런 견해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신뢰를 가지시는 것 같네요.
저는 번역투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용인하자'는 주의입니다. 왜냐면 한국어는 언어학자들조차 서로 틀리는 언어거든요. 애초에 프랑스어처럼 매년 정확한 기준을 정하는 것도 아니고, 많이 쓰는 표현을 표준어로 바꾸기도 하고, 사전에 유행어를 싣는 짓도 하는 나랍니다. 정확한 기준이 없는데 어떻게 일일이 다 구분한다는 겁니까. 그야말로 웃기는 일이지요.
문제 하나 내볼까요?
'필요로 한다.' 혹은 '요한다'는 영어 번역투(need to의 직역)나 일어 번역투(要する의 직역)인데, 우리는 이런 번역투 이외에는 '어떤 필요가 어떤 행동의 동기가 된다.'라는 내용을 간편하게, 목적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보통 이런 번역투의 대안으로 '해야 한다.'를 제안하곤 하는데, 이 경우 필연적으로 내용의 왜곡이 생기지요. '필요가 있다.'라는 표현을 제시하기도 합니다만, '필요가 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또 문장이 다소 복잡해지거나, 목적이 달라지곤 합니다. 이는 한자어 단어에 '있다'가 결합한 형태가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북한의 식량부족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라는 문장을 위의 제안에 따라 번역투 없이 한국 문법으로 고칠 경우엔
[북한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
[북한은 식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줘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식량이 부족한 북한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식량이 부족한 북한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북한의 식량부족을 도와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식량부족을 도와줄 필요가 있다.]
[북한은 그들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북한은 그들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같은 표현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일견 이것들은 예문인 [북한의 식량부족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와 의미상 같아 보일 수 있으나, 사실 많은 왜곡을 부릅니다.
[북한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우리가 북한을 돕는 것이 의무라고 표현합니다. 더불어 식량부족을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는 '사족'까지 달리게 되죠.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북한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울 필요가 있다.]라고 표현해도 쓸데없는 사족이 달리고 문장이 복잡해집니다.
[우리는 식량이 부족한 북한을 도와야 한다.]와 같은 경우, 북한의 '필요'를 우리의 '의무'로 바꿔버립니다. 북한에게 필요한 것이 반드시 우리의 의무일 수는 없지요.
[우리는 식량이 부족한 북한을 도와야 한다.]와 같은 경우도 북한의 필요를 우리의 필요로 바꾸는데, 북한의 식량부족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가 반드시 그걸 도울 필요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북한은 그들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나 [북한은 그들의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의 경우는 문장이 지나치게 길고 복잡하며 필요 없는 내용들이 추가됩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떠나서, 북한은 식량이 부족하고, 그 때문에 우리의 도움에 대한 필요가 있다.'라는 내용을 간단하게 한문장으로 표현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문제의 정답은
'북한의 식량부족에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입니다.
반전인가요? 이딴 간단한 대답을 떠올리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렸냐, 위에 써놓은 개소리들은 뭐냐 같은 말들이 나올 수 있는데, 위의 내용은 어떤 한국어를 바르게 쓰자는 사람의 블로그에서 '번역투의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필요로 하다-> 해야한다, 필요가 있다.'이기 때문에 써본 헛소리입니다.(작년 10월 4일엔 그 블로그 덕분에 우리나라말이 '필요'와 '의무'를 구분하지 않는 줄 알았지 뭡니까. 근데 사실 표현할 수 있어요. 자칭 전문가도 쉽게 생각해내지 못할 뿐이지.)
즉, 한국어를 제대로 쓰자고 홍보하는 사람들 조차도 한국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죠? 제대로 쓰자고 말하는 사람들부터가 한국어를 제대로 모르고 파악도 안 됬는데 어떻게 일반인들이 그걸 제대로 씁니까. 소설을 쓰기 위해서 국어학자들 이상의 국어실력을 보유해야 합니까? 아니잖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한국어 표현과 섞여도 어색하지 않은 표현에 한해서는 번역체를 용인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게 번역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게 '번역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완벽한 한국어 표현을 제시하던가요. 만약 그 의미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면, 그런데 그 표현이 현대 언어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면 그 익숙한 번역투 표현을 쓰면 되겠지요. 우리에게 없다면 배워 쓰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게 기본적인 배움의 자세라는 거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겁니다. 어느 한 두개는 우리말로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말을 정확히 안다면 왠만한건 다 올바른 한국어 표현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근데 그걸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무작정 쓰지마라고 하는 건 잘못된 겁니다. '~와 같은 표현은 번역투이니 쓰지마라.'고 지적하기 전에, 지적하는 자신부터 '~와 같은 표현을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은 뭐가 있을가?' 고민한다면 자기 자신의 한국어 실력도 좋아지겠네요. 어휘력도 늘겠고.
만약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다면 그냥 내버려둬요. 무작정 '저 표현은 번역투이니 쓰지마라.'라고 하다니, 무슨 독재정권도 아니고.
애초에 정확한 기준을 통해 이건 괜찮다, 이건 안 됀다. 라고 구분할 수 없을 바에야 그냥 독자들 개인의 판단에 맡기고, 확실히 문제가 되는 것 부터 처리하자 이겁니다. 이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안그래요? 왜 쓸데없이 사대주의에 쇄국주의같은 말로 싸웁니까. 번역체 지적받은 사람들도, 그냥 한국어 쓰면 될 것이지 굳이 번역체만 골라서 쓰다보니까 한국어 표현이 생각이 안 나는 겁니다. 겸허히 지적을 받아들이고 알려주는대로 고치면 그만. 윈윈이네요.
그러니까 저렇게 하기 힘들거나 싫다면 그냥 쉽게 지적할 수 있는 각종 무분별한 영어표현을 지적하는 게 우리말을 지키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번역투보단 그게 문제인거 같은데 그런 것보다 번역체에 더 열올리시는 것 같아서 좀 보기 안 좋네요.
예를 들어볼까요?
[그의 공격을 점프해서 피한 뒤 강하게 대시했다.]
[아주 소프트한 블랙이 내츄럴한 멋을 더합니다.]
[매직 마스터는 시동어도 없이 블링크를 사용하며 파이어볼을 시전했다.]
[소드마스터의 파워풀한 움직임은 오러블레이드를 제외해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아주 웃긴 표현인데 어디서 많이 봤죠?
근데 이런건 잘 지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제 착각인가요.
단언하건데, 저런 표현을 지적해본 적 없는 분이시라면 번역체에 대한 지적을 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물론 전 애초에 댓글을 잘 안 달아서 그런거 잘 지적 안 합니다.ㅋ
신경끄고 사는게 제일 편해요. 포기하면 편하다는 옛 말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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