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 지루한 수업 시간을 때우던 공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선은 무엇이고 악은 무엇일까.
거창한 무언가를 구하고자 했던 생각들은 아니다. 열 넷이란 나이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의문을 한 번 쯤은 품음직한 나이니까. 그 때부터 시작했고, 엉뚱한 생각은, 줄곧 이어져 오늘도 내 안에서 계속된다.
좀 더 어린 시절, 부모님 말씀 잘 듣고 학교 선생님 말씀 잘 듣는 것으로 훌륭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인 줄 알았던 그 시절 내 삶을 지배하던 선이란 참고 순응하고 견디는 것이었다. 슬프고 화가 나고 억울하여 때론 분노하더라도 참아라. 인생이란 그런 것,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해도 참아야 하고, 견뎌내야 하는 것. 지금에서야 단언하건대 그것은 선도 아니요 올바른 삶도 아니다. 내가 배운 것은 결코 도덕이 아닌 순응하는 인간에의 길, 내게 강요되던 것은 선이 아닌, 분노를 속으로부터 삭이는 노예근성 충만한, 인간 아닌 어떤 것을 창조하는 길이었으니.
사람은 분노하고 증오해야 한다. 나를 압제하고 구속하려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슬퍼하고, 그에 의해 마침내 타고난 영혼마저 짓밟히는 현실을 개탄하며 통곡해야 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누려야 할 사랑을 빼앗긴 것을 아쉬워하고, 내가 거세당한 순수함을 아쉬워할 능력마저 남김없이 제거해 버리는 폭력, 그 폭력에 대항하여 복수해야 한다.
참고 견디는 것은 결코 미덕이 아니다. 순응하고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모든 것을 증오하라. 불합리한 폭력에 반항할 수 없도록 교묘한 말들로 진실을 호도하는 모든 것을 증오하라. 우리에게서 사랑을 빼앗고 진실을 빼앗고 영혼마저 빼앗아 한낱 기계의 부속품보다도 못한 쓰레기취급 하는 모든 것을 증오하라. 비록 그 모든 것이 미친 자의 미친 소리,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의 몸부림을 악이라는 한 마디로 정의하는 세상 속에서 대답 없는 메아리로라도 퍼질 수 있다면 그것은 가치 있을 테니.
그러나 기실, 증오는 품은 자를 가장 고독하게 하며 복수는 행한 자를 가장 허탈하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이 이야기는, 그렇게 증오에 자신의 모든 영혼을 남김없이 바쳐 마침내 복수를 꽃 피워낸 사내에 관한 이야기다. 그 모든 압제를 향해 세월을 쏟아 부어 일궈낸 복수이지만 그의 두 손에 쥐어진 것은 증오를 가슴에 품음으로서 한 줌의 희망조차도 남지 않은 너덜너덜해진 영혼과, 모든 비극이 벌어진 후에도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 삶의 허망함과 지독한 후회일 뿐.
스스로를 지옥의 유황불 속에 집어 던져 그 자신을 제물로 삼아 복수의 화마를 키워내었건만 돌아오는 것은 허무뿐, 그렇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남아 있던 한 줌의 순수와 가능성을 내던져 버린 가치 없는 생이었던 걸까? 결국 그런 것? 그렇게 황량할 뿐인 것일까? 복수와 증오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결국 그런 것인가?
사랑을 잃고 지독한 외로움에 몸부림친다. 절망 같은 고독 속에 던져진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지만 이미 고독해져 버린 영혼은 소통할 방법을 모른다. 태어나고 한 번도 사람의 말을 들어본 적 없는 아이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기억이 없거나 혹여 있더라도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역사속의 한 페이지처럼 빛바랜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인 그들은 서로에게 말을 걸 수 없다.
그러나, 사랑하고 사랑받고 이해하고 이해받기를 원하는, 타고난 욕구, 그것만큼은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듯 너무나 간절한 욕구이기에 또한 그들은 서로를 더듬어보려 애쓴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지만, 어쩌면, 그렇게 열심히 서로를 더듬다 보면 마침내 이어지는 접점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접점이 두 셋이 되고, 여러 접점들이 만나고 이어져 결국 고독의 나락에서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음을 믿고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안고서.
긴 사설 끝에 결론을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결국 사랑이야기다. 사랑을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혹은 사랑을 잃고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람은 결국, 사랑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사람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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