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한담

연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합시다.



작성자
Lv.6 샤랑
작성
07.05.18 22:26
조회
1,007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한동안 글을 쓰지 않다가, 정확히 말해서는 텍스트에 멀어져 있다가 갑자기 가까이 하려면 이것만큼 멀게 느껴지는 것이 없다. 10 년지기가 갑작스레 내 손을 거부한 느낌이랄까, 아니 그 이상의 실망감 혹은 좌절감 같은 것이 펜을 잡았을 때나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엄습한다. 뭘 하고 있는가, 뭘 하려 하는가. 자존에 대한 의문의 반복. 며칠 전 겪었던 지독한 설사로 내 몸속에 있던 모든 텍스트가 빠져나가버린 것처럼 텅 비어버린 내 자신을 느끼며 한탄에 빠진다.

심지어 그림조차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지독하게 굳어져버린 내 영혼의 진단. 병명은 텍스트에 오랫동안 노출되지 않음으로써 적당한 영양소를 섭취받지 못해 걸린 대서기피증, 음. 말을 쓰고 나니 굉장히 어색한데. 무언가 적당한 병명이 없으려나.

사실상 이즈음 되고 나면 느끼는 것은, 텍스트가 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간 너무 오랫동안 텍스트를 외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긴, 그 정도라면 어떤 친구라도 삐질만하지. 아팠다라던가, 혹은 고통스러웠다라던가 그 모든 이유를 불문하고 그것을 친구와 함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이랄까. 내 안의 텍스트는 그런 배신감을 느끼고 나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게 친구, 자네가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내 모든 사고조차. 지금 자네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이 조곤거리는 몸짓조차 자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언제까지 뼈져있을 텐가. 한번만 돌아봐주지 그래.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말이 있더군. 하나님은 한손에 구름같은 스폰지를 들고, 소매자락을 걷고는 보좌에 앉아서 인간을 기다린다지. 그리고 자신의 앞에 나신으로 선 인간이 울고 불며 그간 지어온 죄를 나불거리기 시작하면 양 손에 침을 타악- 뱉고는 스폰지로 인간의 몸을 벅벅 문질러 그 더러운 몸을 깨끗하게 해주신다네. 그리고는 그 인간을 당신의 우편으로 집어던지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더군. “결국 너도 천국 가고 싶다는 거잖아. 이봐, 베드로. 이 녀석도 그곳에 넣어주라고.” 그런 자비로 한번만 용서해주지 않겠는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한동안 자네를 돌아보지 않았어도 항상 내 등 뒤에는 자네가 있었음을 아네. 내 머릿속에는 자네만이 가득했음을 아네. 그것이 한국어이건 혹은 영어이건, 혹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일본어이건 간에 오로지 자네로 가득했음을 아네. 왜냐면 난 자네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사고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림은 아름다운 예술에 불과할 뿐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능은 그다지 기대되지 못하네. 정확하고 명확한, 그러면서도 때론 한없이 서정적이고 그리운 그런 자네의 향기만이 내 머릿속에 가득하네. 내 인생에 있어서 후회하지 않을 만남이 몇 있다면 그 중에 자네가 포함되어 있음을 내가 분명히 약속하네.

내 머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몸과 손가락은, 내 눈은 기억하고 있네. 내가 자네를 처음 만나고, 자네를 통해 처음 세상을 사고하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은 자네로 이루어져 있네. 그림이 아냐, 오로지 자네일세. 이미지라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지. 하지만 뇌 어딘가에, 가슴 어딘가에 감동이라는 징과 이성이라는 망치로 새겨진 자네는 결코 지워지지 않네. 그 위에 먼지가 앉고 때가 끼는 한이 있더라도, 언젠가 깨끗한 스폰지를 가지고 문지른다면 무엇보다 말끔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자네이지. 아직도 부족한가? 자네에 대해서 찬양하라고 한다면 난 성경 66 권을 쓸 자신은 없더라도 어권 42 권은 쓸 자신이 있네. 창어기, 출탈고기, 문법기... 그러게 써간다면 제법 괜찮지 않겠는가?

이제 그만 용서해주게나. 난 자네를 멀리했던 것이 아냐. 내가 자네를 쓰진 않더라도 내가 본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본 모든 그림 속에 무엇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 어느 곳에도 자네가 빠진 곳이 없네. 캔버스의 왼쪽 끄트머리에서 오른쪽 끄트머리까지 온통 자네로 시작해서 자네로 끝나는 거야. 내 시선이 시작되는 곳은 ㄱ이며 내 눈이 감기는 곳은 ㅎ 일세. 아, 세종대왕께서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에 대하여 이후로도 수만년간 한탄만이 남을 진저. 천국에서 그를 뵙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것-실은 만났네만 그래도 그분의 역사 속에 함께 있지 못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지-만큼이나 지루하고 고루한, 그리고 안타까운 현실일세.

이제 그만 용서하게나. 이제 느릿한 동작으로 내 붉은 노트를 꺼내어 한동안 접어두고 있던 환상의 그림을 다시 그려볼 생각일세. 물론 그리는 것은 내 머릿속에서만 이고, 그것을 정리하고 또한 깎아내어 하나의 완성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자네만이 할 수 있는 일일세. 나 홀로는 결단코 하지 못할 일이야.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도움역시 무엇보다 필요하지. 단언코 말할걸세. 바벨탑에서 수 만가지의 자네를 만든 하나님의 역사에 축복있을 진저. 바벨탑에 그 모든 언어가 기록되지 못했다는 점이, 그리고 아무도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은 지독한 고통일세.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기도, 또한 하나님이 바벨탑 건설 이상으로 인간에게 실망하게 된 사건이지. ―하나 조심스레 생각해보네만, 만일 그날에 인간들이 자신들의 언어를 하나하나 조립해서 서로를 모아가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바벨탑에 직접 내려와 주셨을 지도 모를 일일세. 그 정도의 인류라면 당신의 모습을 보고 죽을 영광을 얻을만하지 않겠는가?

이제 그만 손을 잡게나. 이제 진정 자네가 필요하게 되었네. 우리의 커뮤니케이션은 이정도면 되어.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또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물론 아직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야 할 것이 있지만, 지금 당장은 이정도의 관계가 적당하네. 난 자네를 알고, 자네는 나를 알고, 난 자네를 필요로 하며, 자네는 나를 그리워하는 관계. 아 물론 나 역시 자네를 그리워하네. 단 하루라도 자네를 보지 않으면 눈에 핏발이 서네. 실제로 그런 날이 없어서 그런 지는 모르겠다만.

오랜만에 웃어보았군. 역시 그리움은 무엇보다 사람을 감성에 젖게 만드는 아름다운 묘약일세.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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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너무 안나와서, 마음이나 풀자는 의미로 그냥 지껄여댄 글입니다. 쓰고 나니 너무 즐거워서 이곳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도 글을 읽고, 어떤 분들은 쓰시기도 하시겠죠. 여러분들은 자신 안의 글과 어떤 대화를 나누십니까? (웃음)

P.s 하략된 부분이 궁금하시다면 정규연재란의 샤랑 - 엘프의 검 게시판을 확인해주세염 (도망)

P.s 에이, 작가로써 자존심 때문에 전문을 다시 올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잠깐이지만 너무나도 옹졸한 모습을 보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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