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요즘은 목표를 정해두면 딱! 딱! 완수하고 있는데...
오늘의 목표가 홍보글 쓰는 거였걸랑요...
그런데 자리가 안 생겨서 뻘글을 끄적이다가 그냥 올립니다.
술 좀 빨고 쓰는 거라 내일 지울지도 모릅니다.
제가 알기로 웹소설 사이트만 해도 순수문학(순문학은 일본식 표현이므로 자제)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 역시 순수문학으로 등단한 사람이고, 산문집 출간을 시작으로 시와 소설을 쓴지 오래 되었습니다. 순수문학의 현실은 소수의견을 쓰신 손아람 작가님의 진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경제처럼 미래가 없습니다.
등단을 위해 해마다 로또와 같은 신춘문예에 도전하거나 거룩한 기득권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문예지를 통해 등단해야 하지요. 이 바닥도 금수저가 있어서 돈 많으면 자비출판으로 등단합니다.
순수문학 시장이 ‘닫힌 플랫폼’이 되어버려 많은 작가가 꿈을 버리거나 생계를 포기하며 글을 씁니다. 저도 사업 그만두고 수입없이 산지 이제 2년이 다 됩니다. 빚만 쌓였죠. 장르문학 시장이 열린 플랫폼이고 시장 파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거 순수문학 작가도 다 압니다. 그런데 이곳에 도전하는 게 쉽지 않아요. 제가 알기론 손에 꼽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IT 시장에 있을 때 PC에서 모바일로 환경이 바뀌었죠. PC 통신하던 회사가 포털이 된 후 전 입사했고 2G 폰을 쓰던 제가 모바일 앱을 기획했습니다. 독자들도 바뀌었습니다. 소설을 읽던 이들은 이제 책을 읽지 않거나 외국 서적을 읽지요. 왜냐하면 닫힌 플랫폼이기에 순수문학 작품의 퀄리티가 낮기 때문입니다.
한편 저보다 윗세대들은 무협 소설의 황금기(적확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를 겪었기에 그때의 독서경험을 인터넷을 통한 장르문학으로 이어나가고 계십니다.
저보다 아랫세대는 판타지, 게임, 로맨스 다양한 글을 PC 통신과 함께 접했습니다.그러니 익숙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요.(전 김용도 모르고 반지의 제왕도 모르는 낀 세대걸랑요.)
쓰다보니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아무튼 한담에 글을 잘 쓰지 않으니 쓰는 김에 길게... 순수문학 작가들이 장르에 도전하려고 해도 ‘How to’를 잘 모르더군요.
저만해도 웹툰 플랫폼으로 유명해진 모 사이트의 예전 동료를 부러워한 적도 있지만 ‘웹소설’이 ‘시장’을 이룬 건 잘 몰랐습니다. 웹 상에 글 쓸 생각을 한 건 올해 초였습니다. 조아래에도 올리고 여기저기거기조기 다 올렸습니다.(결론은 문피아 졸라 쌩큐!)
성공사례가 적어요. 전 SF가 장르에서 괜찮은 줄 알고(시장성) 작년 가을에 단편을 써서 공모전 최우수상을 탔는데, 저와 같이 수상하신 모 대학 교수님도 문피아에 도전하셨다가 절망만 겪고 GG 치고 다시 정글로... (지난 달 SF 관련 어워드에 함께 초대되어 만나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올해 대한민국 전자출판 대상을 타셨더군요.) 둘 다 느낀 건 국내에서 SF는 힘들다... 순수문학 하다가 장르문학 하는 건 차라리 글을 다시 배우는 게 더 빠르다...
제가 교류하는 문피아 작가 분은 거의 없는데, 그 중 순수문학 작가는 단 한 분입니다. 올 가을에 제게 먼저 쪽지를 주셔서 지방까지 내려가서 얼굴을 뵙고 왔습니다. 띠동갑이 넘지만 요즘 제일 친한 친구입죠. 제가 종로학원에서 재수하며 술쳐먹고 다니던 시절에 올해의 작가상도 받으신 분이더군요. 그분에게 많은 걸 배웠는데, 암튼 장르문학의 호흡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
제 나름의 표현으로는 순수문학 작가들은 배고픈 독자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소고기를 직접 수급합니다. 칼로 다진 후 다른 잡육과 섞어 패티를 만들고 양상추와 양파, 기타 채소를 다져 속을 만든 후 유기농으로 만든 빵 속에 넣어서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장르문학 작가들은 독자가 배고프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게 차이였어요. 어쩌다 뜬 분도 계실지 모르지만 장르의 대가분들은 독자에게 익숙한 맛, 클리쉐와 공식을 활용하여 적시에 제품을 제공합니다. 이건 퀄러티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시대에 맞는, 장르의 가능성이었습니다. 필력과 상상력, 대단합니다.
존나 정좌하고 숙연하고 성스럽게 책을 보는 독자를 상정하는 게 아니라 바쁜 현대 생활에서 출퇴근, 통학 시간에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똥 눌 때 화장실에서, 늦게 오는 오라질 친구를 기다리며 보는 콘텐츠라는 것에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순수문학보는 독자들은 국내 작가의 소설 따위 보지 않으니! 게다가 국내작가는 출판사에서 출간도 안 해줌! ㅆㅂ!)
말이 길었습니다. 이 주제는 원래 따로 기----일게 쓰고 싶었는데 새벽에 혼자 오버를 했습니다. 저도 혼자만의 과도기를 거쳐 얼마 전 문피아에서 완결을 했습니다.
‘글자’ 개념이 어려웠는데, 순수문학 지망생들은 단편(200자 70매 내외)에 익숙합니다. 책을 출간해도 장편이 1,000매이니 장르문학 기준 1.5권 정도 되려나...?
그러니 ‘질’ 단위의 장르 작가 산출물을 보면 혀를 내두르며 도망가는 게 당연합니다. 까놓고 ‘아 ㅆㅂ, 이렇게 길게 어떻게 써!!!!’ (아, 이게 플롯을 짜고 쓴 글이 아니라 의식흐름기법으로 쓰다보니 두서가...)
편당 100원 과금제에 대해 가끔 많은 논쟁이 벌어집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런 말도 싫습니다. 다 개인적인 생각이지, 어딘가를 대표할 사람들이 인터넷 게시판에 글 쓰는 경우 거의 없음)으로는 100원은 정말 싼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모니터나 맛폰으로는 소설을 못 읽는 사람이긴 합니다만, 그걸 감수하며 문피아에서 눈 뗼 수 없는 몇 편의 글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순수문학은 원고지 1,000매로 만원이 넘는 책을 팔아요. (작가인세 10%, 초보는 그 이하, 네임드는 이상.)
장르문학으로 따지면 200자 X 1,000의 분량인데 편당 5,500자라면 36원 정도네요.
(그런데 국내 순수문학 작가는 책 못내! 못내! 못낸다고, 빼애애액!!!!)
아, 물론 그런 건 있네요. 게임 시스템이나 (저는 잘 몰라서) 분량 기본적으로 잡아먹는 패턴은 참 부럽거나 신기한데 저같은 사람에게는 그런 것도 대단한 재주로 보이네요... (스탯창? 뭐 그런 거? 잘 몰라요. 스타1 이후로 게임 안 함)
거의 1/3의 값인데 예술노동자인 작가 입장에서는 순수문학이 3배 더 힘드냐??? 으허허, 세상 모든 일은 입장에 따라 좌우되고 케바케(Case by case)지요.
그런데 저뿐 아니라 순수문학하다가 문피아에 오신 분(sample은 적습니다만).의 공통적인 의견은 거의 비슷한 고통(?)을 느끼며 쓴다는 것입니다. (말씀드린바와 같이 순수문학의 진입장벽은 ‘등단’이라는 괴물입니다. 원고지 70매를 채우느라 한달도, 1년도, 10년도 걸리지요. 사실 비교하기 힘든 문제인데 제 경험으론 그거나 이거나...)
저는 플랫폼에 대해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전문가이기도 한데 문피아의 지금 과금 정책은 절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외부 강의 나가면 항상 예를 드는 게 애플의 iTunes지요. mp3가 공짜로 풀릴 때 높다싶은 과금으로 아티스트에게 동기부여를 한 회사입니다. 그리고 플랫폼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하게 했지요.
심판은 소비자가 합니다.
물론 연중 사태나 낮은 퀄리티에 대한 문제는 있지요.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물론 당장은 힘듭니다. 시장이 성숙해지면 가능할텐데 문피아가 가장 앞에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는 문피아 관계자들과 친분이 없뜸)
(1. 연중 작가를 특정해서 차단시키고 페널티를 부여하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2. 실명인증이나 본인확인을 도입한다고 해도 친인척 정보로 다른 작가로 탈바꿈 가능)
늦은 시간에 글쓰느라 계속 두서가 실종상태이긴한데, 제가 ‘문피아빠’는 아니지만 이런 플랫폼마저 없으면 글을 감상할 곳은 거대자본이 투입된 ‘알만한 그 회사’가 될 것입니다. 제가 IT에 있을 때 음악, 영화 다 그랬걸랑요. 퀄리티는 떨어지고 다양성은 실종될 것입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장르바닥작가들이 대세, 시류에만 따른다...?
전 신해철과 서태지가 그립습니다. 하지만 TV를 켜면 아이돌, 걸그룹만 나오죠. 가치있는 곳에 돈을 쓰는 소비자가 있으면 산업이 성장합니다. 그래서 좋은 콘텐츠에는 돈을 지불하려고 합니다.
제 생활을 유지하기엔 턱 없는 돈이지만 그걸 결제해준 독자가 계셔서 글 쓰고 있습니다. 좋은 독자가 좋은 작가를 만듭니다.
정치도 똑같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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