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연재 - 망각의문 by 보니비
이렇게 좋은 작품이 무관심 속에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 글을 씁니다.
제가 보기에 망각의 문이란 글의 최대 장점이라면 등장인물들이 사람답다는 것입니다. 각 등장인물 모두 확연한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개성 하나하나가 등장인물을 압도하지 않습니다. 최근 나오는 작품들을 보면 종종 등장인물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너무나도 억지스러운 성격을 부여하고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지켜보는게 재밌으나 그 자극적이기만 하고 평면적인 모습에 질리기 마련인데 망각의 문의 등장인물들은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굉장히 입체적인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도 하나하나 개연성이 있기에 등장인물들이 모두 무척 현실감있게 보여집니다.
두번째로 훌륭한 묘사입니다. 묘사가 너무 적고 대화가 많으면 너무나 가벼운 느낌을 주고, 묘사가 너무 많으면 느리고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망각의 문은 이 묘사의 양이 적절히 조절되어 있는 글로 호흡 조절이 거의 완벽합니다. 빠르게 가야 할 부분에서 빠르게 가고 묘사가 필요한 부분에선 꼭 필요한 만큼의 묘사만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묘사들을 읽을때 작가가 얼마나 주의깊게 생각했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성의없는 묘사는 읽는 즉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플롯 진행에 필요한 부분만 대충 묘사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망각의 문은 필요한만큼 주변 상황도 묘사를 해 글에 몰입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굉장히 읽기 자연스러운 문장들도 이에 한 몫 합니다. 최근 문장을 명사에서 짧게 짧게 끊어 속도감을 주며 강조하는 문체가 보이는데(한백님 작품들 이후였던것 같습니다) 그런 문체는 어느 순간부터 눈에 거슬리게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망각의 문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설명하기 미묘한 것인데 글 전체에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망각의 문에서는 언제 파국이 닥쳐올지 모르는 그 긴장감과 안타까움이 글 전체에 배어있습니다. 이렇게 글 전체에서 통일된 분위기가 느껴지려면 작가가 전체 플롯과 진행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글을 써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망각의 문을 읽으면 작가의 그런 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넘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망각의 문의 설정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긴 연표 같은 것은 없습니다. 망각의 문 특유의 간단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설정을 읽을 땐 다른 일부 작품들처럼 설정을 이해하기 위해 글 읽는 것을 멈출 필요가 없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모든 설정이 쉽게 이해가 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평화로운 슈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 마누, 그리고 두 곳을 가르는 죽음 그 자체인 검은 들녘. 이 간단한 설정만으로도 훌륭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현재 망각의 문은 대략 책으로 8권 분량정도가 연재된 것 같고 완결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평화로운 첫 챕터에서조차 아까 얘기했던 임박한 파국의 느낌이 느껴져 긴장을 놓칠 수 없고, 한 챕터 한 챕터 읽어나갈 때마다 그 긴장과 흡입력이 점점 더해집니다. 일단 읽기 시작해서 탄력이 붙으면 절대 놓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꼭 읽어보세요.
정규연재란 망각의 문, 보니비 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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