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에 와서 장르문학의 시장은 마치 1980년대 헤비메탈과 팝의 상업적 만개를 보는 듯 했다.
화려한 장비와 파워풀한 사운드에만 신경을 쓴 시장체계를 보며, 나는 오만하고 교오하게도 반란을 꿈꿀 수밖에 없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고무판만 보더라도 은하계의 얘기를 다룬 SF작품이라든지, 환상나라까지 가서 치부를 줍는 소년의 이야기라든지,(본인은 이 작가 분들과 일체 친분이 없음을 밝힌다.) 독창성과 창의성이 빛나는 작품들이 거의 사장되다시피 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소개를 하자면, 나의 전작은 고무판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며 완결을 맺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완결 이후에도 선작수가 꾸준이 늘어서 3천 가까이 되었고, 하루에도 추천 글이 꽤나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분명 후속작으로 판타지를 쓴다면 어느 정도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란 유혹도 들었다. 나의 장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4년간 다져진 판타지적인 필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작을 연재하는 4개월간 고무판은 솔직히 많이 변해있었다.
전작을 처음 연재할 당시만 하더라도 정규연재란 기준으로 연재한지 하루 만에 조회수가 천이 넘는 판타지는 단 한 작품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당시엔 판타지를 연재하는데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달랐다. 이제 판타지로도 조회수 천은 쉽게 닿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 했다.
물론 이전부터 연재되어왔던 작품들은 천을 넘기기는 여전히 어려웠다. 이는 너무 많이 쌓여버린 분량 때문이지 작품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형벌을 받고 순례하는 자라든지, 하늘과 땅이 어우러지는 시대라든지, 이러한 작품들은 뛰어난 퀼리티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저조한 조회수의 영향으로 지켜보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더해가게 만들었다. (이 작품들 역시 본인과 전혀 친분이 없는 작가들의 글이다. 친분이 털끝만큼이라도 있는 작가분들의 글은 일부러 서술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5개월간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고무판의 지켜본 결과 확신할 수 있었다.
어쨌든 지금에 와서는 전작과 같은 판타지로는 반란을 꿈꿀 자격이 없다는 걸 스스로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걷는 것에 익숙한 자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야망은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작을 연재하며 가장 고무판에서 없는 장르를 찾아보았고, 그 해답은 단언 현대물이었다. 고무판을 다 뒤져도 현대물로 등록된 글은 10개가 되지 않는 현실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인페르노라는 글이다.
나는 이 글로 교만하게도 장르문학시장의 원점회귀를 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인페르노의 소재는 록과 실존기생생물인 네마토모프, 그리고 실존하는 병인 AIDS다.
정확한 자료조사로 현실 속에서 지독한 환상을 끌어내는 것, 그것이 판타지의 원점이라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된 인페르노는 현재 선작수 2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직 연재한지 한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비대중성을 고려해볼 때 적은 수가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해선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이 정도에 그쳐서는 반란은 고사하고, 지난 선배들의 과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꼴밖에 되지 못한다. 나는 욕심쟁이다. 나에겐 지나친 야망이 있다. 나는 탐욕스러운 자다. 나는 추한 자다.
평균조회수가 2천이지만, 나의 눈에는 아직 전작보다 낮은 선작수만 보이고, 전작보다 저조한 조회수만 보인다. 아직 나는 전작에 가려진 글을 쓰고 있는 셈이었다.
이대로는 반란을 꿈꿀 자격이 없다. 나는 방구석에 처박혀서 천하를 꿈꾸었던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다. 이것이 진정 현실이라는 사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사장 당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진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기는 건지도 모른다.
인페르노의 시작은 참으로 평범하다. 한 남자가 있다. 록을 즐기고, 라이브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꿈인 그야말로 볼 것 없는 고등학생이 있다.
그 학생에게 닥친 일, 고구려 제 3대 왕인 대무신왕이 창안한 비천사신무와 네마토모프에게 잠식당한 세상, 생물학병기로 만들어진 AIDS, 논픽션과 픽션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아니라 그늘에 가려진 사실을 말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겉치장일 뿐이다.
실제로 내가 가장 흐뭇해했던 댓글은 인페르노를 본 독자 분들이 운동을 시작했다든지, 기타를 다시 친다는 얘기들이었다. 인페르노의 주제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의 삶이 아니라 독자 분들의 삶을 뜨겁게 만들어줄 열정을 선사하는 것이 글의 궁극적인 목표다.
나는 말한다. 인생의 반란을 꿈꾸는 자라면 한번쯤은 읽어봐도 후회는 하지 않을 거라고. 나는 말한다. 대세는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거라고.
긴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본 글을 반말로 집필한 점은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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