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아카식 레코드의 본문과는 조금 다른, 타 케릭터에 포커스가 맞춰진 일화입니다. 이야기에 케릭터나 글에 대한 궁금증을 느끼신다면, 주저 없이 작연란에 아카식 레코드로 달려가시면 갈증을 해소 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 아래 글은 다소 우울할 수도 있습니다. 경쾌함과는 거리가 먼 점 유의 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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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눈이 두 볼을 스치던 날.
수는 낯선 남자의 손을 붙잡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온통 따듯한 노래들로 가득한 세상은 그 어느 날보다 큰소리로 사랑을 부르고 있었다.
“있잖아요. 아저씨. 나 처음 아닌데 괜찮아요?”
“음? 하하! 그런 거야 애당초 생각도 안했어. 왜 그게 불안해?”
“아니요... 그냥. 그냥요.”
성당의 붉은 십자가처럼 유난히도 밝고 붉은 모텔 간판의 네온 싸인.
차갑게 얼어붙은 문을 여는 손이 작게 떨렸다. 후끈 차가운 몸을 감싸는 공기가 무겁다. 진득하게 몸에 달라붙는 공기가 무겁다.
“쉬다 가시게? 아니면 하루 자게?”
“잠깐 몸만 녹이고 가게요.”
“오천원이야. 저기 안쪽 방. 알지?”
“하하- 그럼요.”
웃음 터트리는 남자의 뒷모습 사이로 꼬장꼬장한 주인집 할미의 눈빛이 닿았다. 더러운 것을 밀어내려는 듯, 휙 하고 돌아서는 눈동자에 입꼬리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다 알고 있으면서 묻지 않는다. 나이도, 주민등록증도 확인하지 않는다. 다 알고 있으면서... 주름진 할미의 입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끼익-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닿은 문고리가 소리를 내질렀다.
텅 빈 방안으로 놓인, 이불 두 개와 베개 두 개.
너무나 희고 깨끗하기에 오히려 더욱 더러워 보이는 이불위로 몸을 누였다. 말이 필요하지도 않은 익숙한 상황에 눈부신 형광등 빛이 번져갔다.
“흠흠-”
머쓱한 마음을 정리하듯, 방에 들어선 남자의 입에서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 볼에 붙은 눈이 녹아내릴 만큼 뜨거운 입김이 닿았다. 따스함에... 더럽고 눅눅한 그 뜨거운 따스함에 차게 언 두 볼은 녹아내리건만 가슴 속은 차갑게 얼어붙어갔다.
툭, 툭, 툭,
하나하나 정성스레 닫아둔 블라우스의 단추가 떨어지는 시간. 그녀는 추운 방안에서 떨고 있을 동생의 모습을 잊어보려 애썼다.
‘분명히... 울고 있겠지?’
와락 가슴을 파고드는 차가운 손길에 번쩍하고 또렷해지는 동생의 눈물에 젖은 모습.
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 볼 위로 녹아 흐르는 눈이 눈물이 되고, 얼어붙은 숨소리가 메마른 입술을 타고 흘렀다.
“헉... 헉... 헉... 아저씨가 사랑하는 거 알지?”
“...네... 알죠. 잘 알죠...”
꽉 닫힌 문 밖으로 흐르는 고요한 노래가 흘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밤...”
어둑한 하늘위로 날리는 눈발이 굵어졌다.
창을 가리고 세상을 가리고 눈앞을 가리는 차가운 눈.
창밖 세상으로 흐르는 익숙하지만 먼 노래를 입을 닫아 가슴으로 불렀다. 이제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그렇게 부르고 또 불렀다.
* * *
“언니...”
열쇠로 잠가둔 방문으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잔득 울며 기다리던 것이 어제같은 데, 이제는 제법 혼자 기다리는 것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많이... 기다렸어? 오늘도 아파?”
“아니아니, 오늘은 안 아파. 언니는 일 잘 다녀왔어? 피곤하지는 않고? 응?”
문을 열기가 무섭게 쪼르르 달려와 품에 안기는 동생이 너무 가볍다. 시간은 흐르고 날은 가는데, 어린 동생은 자라지 않는다.
눈물을 먹이듯 밥을 먹여서 그럴까?
수는 방긋 웃는 동생의 몸을 꼬옥 끌어 안았다.
“에이 언니. 단추 또 풀러졌다. 내가 아침에 꼭 매줬는데, 에이 바보. 나한테는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고 뭐라고 하면서 언니는 단추도 제대로 못하는 거야? 이렇게 다니면 추워서 콜록 콜록 감기 걸린데요.”
“응... 미안. 언니가 바보여서 그래. 우리 채린이가 다시 해줄래? 언니 단추 채린이가 다시 채워 줄래?”
“응! 언니 채린이가 해줄게 헤헤”
웃으며 옷깃을 여미는 동생의 작은 손이 가슴에 닿았다. 금방 더 따듯한 방에서 더 뜨거운 남자의 손에도 녹지 않았던 가슴인데, 그 작고 차가운 동생의 손길에 봄바람에 눈이 녹듯 스르르 녹아내렸다.
“채린이 언니 없는 동안 뭐했어? 오늘도 그림 그렸어?”
“응? 아니 아니. 이제 크레파스가 없어서 그림 못 그려. 있잖아 언니. 그래서 채린이 저어기 창문 벽에 양말 달았다. 있잖아 오늘 밤은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래. 그래서 채린이도 선물 받으려고 양말 걸었어. 언니가 사주려면 또 일해야 하고, 돈 많이 들잖아. 히히 채린이 양말은 작아서 언니 팬티 양말 걸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크레파스랑 스케치북이랑 막 많이 줄 거야? 그치 언니?”
해맑게 웃으며 묻는 동생의 말에 왈칵 눈물이 베어 나왔다. 어금니를 꽉 물고 참아 온 눈물인데, 이제는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한번 흐르기 시작한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언니 울어? 응? 언니 울어? 으아아앙! 언니 울지마 언니 울지마아- 응? 으아앙”
밝게 웃던 동생의 두 눈이 어느새 시뻘겋게 부어올랐다.
“있잖아. 채린아. 세상에는... 산타가 없어. 세상에... 산타는 없어 그러니까 기다리지마. 언니가 돈 많이 벌어서 사줄게. 스케치북도 크레파스도 언니가 다 사줄게.”
엉엉 울음을 터트리는 동생의 등을 쓰다듬으며, 수는 눈가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산타.
그녀의 세상에 산타는 빨간 옷에 풍성하고 긴 수염을 기른 착한 할아버지가 아닌 동생이 꼭 채워준 옷을 끌러 내리는 차가운 남자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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