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모델링에 관심이 많거나 게임을 자주 플레이하는 분이시라면 3d 모델은 크게 2개로 나뉘어짐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메쉬와 텍스쳐. ssao, aa, af, 그 외 요즘 최신엔진들이 몇년간 쏟아내고 있는 수많은 그래픽 효과들은 마치 향신료처럼 메쉬와 텍스쳐로 만들어진 메인디쉬에 향을 더하기 위해 뿌리는 것일 뿐입니다. 메쉬는 3d 모델의 기본 뼈대와 몸체를 만들고 텍스쳐는 그 몸체 위에 덧붙혀져 단순한 뼈대가 현실의 무언가처럼 보이도록 만듭니다. 전 소설의 묘사란 이 3d 모델링의 뼈대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에 들어갔다. 이 문장을 보고 무슨 이미지가 떠오르셨습니까? 전 아무 이미지도 안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아우구스투스가 토가를 입었는지 아니면 갑옷을 입었는지 만약 토가를 입었다면 집정관의 토가를 깔끔하게 잘 차려 입었는지 아니면 대강 입고 서둘러 왔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집정관의 토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저는 그 완벽한 3d 모델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지 않으니 정확히 어떤 색깔과 어떤 디테일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저는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에 어떤 마음가짐 어떤 표정으로 들어갔는지 모르고 들어간 원로원은 어떤 분위기였는지 어떤 모습이였는지 어떤 구조를 가졌는지 만약 복도가 있다면 어떤 모습이고 복도에 사람들이 다닌다면 어떤 모습이고 어떤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띄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저 텍스트로만 보일 뿐입니다. 정보로요.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에 들어갔다는 하나의 정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냥 정보요.
다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갤리선 30척으로 이루어진 갤리함대가 수평선 너머에서부터 나타났다. 갤리선의 적갈색 몸체는 튼튼하고 우아하기 그지 없었지만 오랜 항해에 지치기라도 했는지 소금물이 들어 옅게 색이 빠져 있었다. 갤리선 30척의 몸체 양옆에는 구멍 수십쌍이 뚫려 있었는대 각 구멍마다 적갈색의 기다란 노가 하나씩 튀어나와 은은히 들리는 갑판장의 구호에 맞춰 몰려오는 파도와 몰아치는 수면을 휘갈겼다. 이 시간, 이 날짜에 저런 대규모 갤리함대가 오스티아, 위대한 로마 공화국의 심장이자 수도인 로마의 외항에 나타날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마우레타니아 토착왕국에서 외교적 문제점을 해결한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의 귀환. 갤리함대의 선두에 선 육중한 5단갤리의 뱃머리에 바로 그 옥타비아누스 카이사르, 로마 원로원과 로마 시민 애증의 대상인 시대의 풍운아가 장군의 누런 구리흉갑을 몸에 걸친채 묵묵히 서 오스티아를 바라봤다. 5단갤리 꼭대기의 뱃머리에 서서 앞에 보이는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옥타비아누스의 조용한 눈빛은 차분하지만 힘찼고 강렬한 야망을 안에 담고 있었다. 이제 옥타비아누스는 모든 준비를 끝냈다. 로마의 문제는 모두 해결됬고 옥타비아누스로서는 마지막 한 걸음, 로마 공화국을 로마 제국으로 뒤바꿀 위대하고 거대한 마지막 걸음만을 남겨두었다. 옥타비아누스는 그의 양아버지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성급하지 않았고 그의 경쟁자 안토니우스처럼 자만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현실적이고 냉철하게 반드시 해야할 것을 하나씩 했고 해결해야할 문제를 하나씩 처리했고 걸어야 할 길을 하나씩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옥타비아누스는 승리했다. 훗날 미래의 역사가들은 이 순간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옥타비아누스, 독재관의 아들, 교활한 정치가, 아우구스투스이자 프린켑스이자 임페라투스로서 군대를 뒤에 업고 제정의 첫 막을 시작하다! 그 생각은 이 냉철하고 현실적인 옥타비아누스마저도 입꼬리를 승리감에 살짝 비틀리며 들어올리도록 만들었다. 짧게 자른 검은 머리카락은 승리감의 달콤한 바람에 휘말리며 살랑였고 차갑고 무심하지만 뜨거운 야망이 들끓고 있는 시커먼 눈동자는 검게 번뜩였다.
길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불필요한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보이실 것입니다. 한 물체는 기본적으로 색깔, 형태, 이름으로서 간략히 뼈대만 잡아져있고 실질적인 텍스쳐는 하나도 깔려있지 않습니다. 그저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이 주어져서 독자가 어느 방향으로 상상을 해야할지 방향을 잡아줍니다. 그와 함께 사전배경과 정보가 주어지고 어째서 어떤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필요한 만큼 설명됩니다. 솔직히 제 묘사력이 부족해서인지 그리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할만큼은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의 2번째 예는 독자가 어떤 모습을 어떻게 상상해야할지 적당히 방향을 잡아 독자가 혼란을 느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꽉 옭아매서 마치 영화나 만화처럼 상상의 여지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독자는 갤리선 함대의 묘사를 보며 갤리선이 수평선에서부터 서서히 기어오르는듯한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고, 갤리선의 노가 젓어지는 묘사를 보며 거센 파도가 노와 부딪혀 새하얗게 깨져나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고, 옥타비아누스가 승리감에 젖은 묘사를 보며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색깔, 복장, 행동, 심리, 신체특징들이 필요한 만큼‘만’ 주어졌으니까요. 뭐, 제 생각일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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