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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sf] 교도소 헌병

작성자
Personacon 통통배함장
작성
13.05.29 21:56
조회
6,039

정세가 심상치 않았다. 러시아와 미국은 서로를 견제했고, 1년 전 러시아에서 개발한 핵융합 기술은 언제든 미국 경제를 압박할 수 있었다. 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구 소련에 속했던 국가들. 그러니까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그리고 내 조국 카자흐스탄은 이미 친 러시아 파로 돌아섰다. 그 옛날 구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우리는 군비 증강에 열심이었다. 러시아에게서 독립하여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보려던 노력은 결국 러시아가 다시 득세하자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렸고 우리는 그들에게 빌붙었다.

 

17살의 고아인 나는 이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결정을 내려야했다. 그래서 나는 군에 입대했다. 나보다 적게는 3살, 많게는 6살씩 나이 많은 사람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5주간의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내가 배치된 곳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곳, 바로 군 교도소였다. 그곳에서 나는 헌병 특기를 받고 간수의 역할을 수행했다. 간수라는 보직은 예상 외로 편했다. 온 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경계 근무와 가끔 죄수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여태껏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나도 이제 17살이 되어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 여자를 애인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지금 불과 50m의 거리. 하지만 나는 군인이라는 신분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나타난 덩치 큰 괴한 2명이 재갈을 물리고 옷을 사정없이 찢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 위병소에서 뛰쳐나갔다. 이 대로변에서 범죄라니 대체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내가 권총을 빼들며 위협을 가하자 우락부락한 사내 중 나이 많은 놈이 경찰 배지를 보여주었다. 나는 침만 꼴깍 삼키고는 권총을 다시 집어넣었다.

 

 

 

 

“야 이 새끼야.”

 

그의 입에서 다짜고짜 나온 단어는 너무나 상스러운 육두문자였다. 나는 전에 소대장님이 그렇게 험한 욕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빼 내 멱살을 잡으며 다시 말했다.

 

“네가 대단한 영웅인 것처럼 느껴지냐?”
“아닙니다.”

 

그의 권위에 주눅이 든 나는 잔뜩 긴장했지만 대답은 똑바로 했다.

 

“근데 왜 경찰 체포에 간섭하고 지랄이야?!”

 

소대장님은 큰 소리를 치며 나를 벽에 밀어붙였다. 딱딱한 벽돌에 등이 세게 부딪혔다. 어딘가 부러진 듯 아팠지만 기색을 낼 순 없었다.

 

“네가 오전에 한 짓 때문에 내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알아?”

 

소대장님은 젊은 황인종 남성이었다. 그의 쌍꺼풀 없는 눈이 바르르 떨리며 나를 노려볼 때 살기까지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별안간에 그의 주먹이 얼굴에 꽂혔는지 별이 보였다. 나는 자빠질 듯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차려.”

 

소대장님의 명령에 나는 차려 자세를 취했고 다시 주먹질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코에 명중한 것 같았다. 콧날에 시큰한 느낌이 들더니 뜨거운 액체가 양쪽 구멍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손으로 콧날을 부여잡았다.

 

 

 

묵직한 10인승 호송 장갑차에 실려 정문을 통과한 1명의 죄인은 이름이 T-SH110873이었고 죄수복을 입고 있었지만 놀랍도록 아름답고 익숙하기까지 한 소녀였다. 나는 2주 전 광장에서 목격했던 바로 그 년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보였지만 분명 그 것이었다. 녀석의 머릿결은 윤기가 없이 흐트러졌고 눈동자는 활기를 잃었다. 입술은 파랗게 질렸고 피부는 푸석푸석했다. 나는 그녀가 지난 2주 동안 대체 어떤 일을 겪었을지 궁금했다. 그녀는 남성 전용인 우리 교도소에 수감된 유일한 여성이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는 성별이 없겠지만.......


 

 

“이 케미노이드는 첩보원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아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어. 경찰과 러시아군 정보부에서 2주 동안 심문을 했는데 얻은 게 아무 것도 없었어.”

 

나는 케미노이드를 정말 첩보원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미국은 진정 무인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된 것일까? 그런 놈들하고 싸워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여기서 좋은 소식하고 나쁜 소식이 한 가지씩 있는데, 뭐 먼저 얘기해 줄까?”

 

저마다 목소리를 냈지만 좋은 소식을 먼저 얘기해달라는 쪽이 압도적이었다. 소대장님은 입술에 침을 적셔가며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은 소식은 이 케미노이드를 우리한테 준 이유가 복지 증진을 위해서라는 점이고, 안 좋은 소식은 이 케미노이드를 아침 8시 20분부터 20시까지 책임지고 관리할 병사를 한 명 뽑으라는 소장님의 지시가 있었다는 점이다.”

 

 

 

성욕을 배설할 구멍이 없던 병사들에게 그 케미노이드가 지닌 가치는 상상 이상이었다. 그건 유일한 배출구이자 탁월한 배출구였다. 하지만 이용자의 수가 워낙 많아 두 번 이상 할 수 있으리라 희망하는 자가 없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순서가 끝나면 케미노이드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3원칙을 지킨다면서 전쟁에 일조하는 건 대체 무슨 느낌이야?”

 

녀석은 날 멀뚱멀뚱 바라볼 뿐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었다. 나는 답변이 궁금해 놈에게 연필과 수첩을 건네주었다. 녀석은 깨알같은 글씨로 수첩에 뭐라 적기 시작했다. 정말 그 나이 또래 소녀가 사용할 글씨체 같았다. 하지만 그것 모두가 녀석을 설계한 CIA 소속 어떤 인물의 작품일 것이란 생각을 하니 속이 역겨웠다.

 

녀석은 다 쓴 뒤 수첩을 내게 건네주었다.

 

『존재 자체가 끔찍하고
결국 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일했지만
어떤 일을 해도 살인자라는 생각뿐.』

 

대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인지 화가 났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일했다니? 어쩌면 녀석의 반응 전부가 연기일 수도 있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일했다고? 우리의 방호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첩보원 짓거리를 했을 게 분명한 년이 할 말이 아니지 않아?”

 

잔뜩 화가 난 나는 다시 수첩을 건넸고 녀석은 열심히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끔찍한 임무가 DNA 새겨진 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제 임무가 미국의
완벽한 승리를 보장하여 전쟁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암시하는 것뿐.
하지만 제가 실패하고 전쟁 위협은 증가.
전 고통 받아야 마땅해요.』

 

수첩을 건네받으며 녀석의 눈을 보았을 때, 눈물이 맺힌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도 고도의 전략일지 아니면 진심일지 헷갈렸다. 나는 녀석의 마지막 문장이 의심스러웠다.

 

“너도 감정을 느껴? 그러니까 단순한 통증이 아니라 슬픔, 사랑, 분노 같은 거 말이야.”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뭘 느끼는데?”

 

『슬픔, 죄책감, 자괴감
그런 것들을 느끼는 것은 너무 힘들지만
겪어 마땅한 일이예요.』

 

 

 

“이름이 있어?”

 

그녀는 날 바라보지 않았지만 나는 기다렸다.

 

“알려주고 싶지 않아?”

 

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일까?

 

“알려줄 수 없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 코드가 이름 말하는 것도 막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름 알기를 깔끔하게 포기한 뒤 풀어 헤쳐진 그녀의 가슴팍에 손을 가져갔다. 깜짝 놀란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나는 말없이 그녀의 단추를 모두 잠가주었다.

 

“밥 먹자.......”

 

나는 그녀의 옆에서 식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갑자기 달라진 내 모습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숟가락을 들었다. 양 손을 바들바들 떨며 숟가락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안쓰러운 모습에 내가 직접 떠서 먹여주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손을 풀어주는 것은 규정상 금지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숟가락을 빼앗은 뒤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을 떠서 먹여주었다. 식사 수발이 서툴러 흘리는 게 더 많은 것 같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 그녀가 바닥에 뭔가를 썼다. 짧고 강렬한 문장 부호였다.

 

『?』

 

나도 손가락으로 답했다.

 

『!』

 

나는 창살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한동안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체 그게 무슨 뜻인지 분석해보려는 듯 했다. 곧 그날의 여덟 번째 이용자가 나타났다. 비록 나는 그녀의 고통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이제부터 그녀의 관리병이 아니라 보호병이 되기로 결심했다.

 

 

 

 

======================

 

 

1. 프롤로그

2. 교도소 헌병

3. 군화 속 작은 새

4. 탈주자

5. 사람 사냥

 

 

 

 

 

 

 

 

군화 속 작은 새

   

 

 

 

 

 

 


Comment ' 4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5.29 22:18
    No. 1

    캡틴 커크(이렇게 부르는 거 맞나요?) 님 보면 항상 다작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한번 읽어보러 갑니다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통통배함장
    작성일
    13.05.29 22:18
    No. 2

    너무 일만 벌려요... OTL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5.29 23:28
    No. 3

    선장님의 작품들은 항상 명작이죠!!! ^▽^ bb
    항상 감탄합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7 사는이야기
    작성일
    13.05.30 00:27
    No. 4

    캐미노이드...라는 단어를 듣고,

    생각나는 것은...

    섀..ㄴㅓ...ㄴ...

    완결까지 읽은지 꽤 지났어도,

    그 당시의 느낌은 아직까지 생생하네요...

    그 여운을 이어,

    새로운 주행을 시작해보겠습니다 ^_^~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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