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로 옮겨진 반도 얘기 때문에 생각이 난 것인데...
미국에서는 흑인을 지칭하는 많은 단어가 있습니다.
90년대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것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그나마 제일 중립적으로 생각이 되는 'african-american'이 있고요 (물론 이것도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난하지만 상황에 따라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는 black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흑백차별이 있을 때 쓰던 negro (어원은 그냥 라틴의 검은색)가 있고, 마지막으로 흑인이 아닌 사람이 흑인에게 썼을 경우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nigger라는 말이 있죠.
웃기는 것은, 이 nigger라는 표현의 경우 흑인들끼리 쓸 때는 굉장히 친근한 단어로 사용됩니다. 우리들이 불알친구들 사이에서 '새끼'라는 말이나 기타 욕을 남발해도 '정겨운 표현'이 되는 것과 비슷한데, 여기서 더 나아가 nigger라는 단어는 동질감의 표현이 되기도 하고, 동네친구라는 뜻이 되기도 하고, 갱이나 갱을 동경하는 애들 사이에 끼기 위해 터프한척 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특히 랩에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백인애들끼리, 동양애들끼리 서로를 nigger라고 부르는 경우도 흔히 있죠 (흑인 애들이 없을 때).
하지만 근본이 비하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저속한 표현에 속하기 때문에 (욕으로 쓸 수 있는 것들이 원래 다 좀 그렇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죠) 당연히 공식적인 석상에서 쓰이지는 않고, 흑인들 중에서 일부 식자들은 흑인들끼리도 이 단어를 쓰면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합니다. 물론 대부분은 '타 인종이 우리에게 쓰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일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흑인들끼리의 유대감을 강화시키기 위해 쓰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는 경우까지 있고요.
우리나라도 흑인들처럼 노예로 부려지다시피한 역사가 있고, 그 역사가 흑인들의 해방보다도 더 최근이기 때문에 (물론 법적차별이 없어진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해방보다 늦죠) 이와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 단어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문제는 언어는 다르지만 한자는 공통으로 쓰기 때문에 '발음은 다르지만 표기는 같아서 의미가 다른지 같은지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물론 제가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일제강점기에 친일하는 사람들이 동포들을 뭐라고 비하했는지를 안다면 (조선인이라 불렀는지? 아니면 조센징이라 불렀는지? 아니면 또 다른 표현이 있었는지?) 각각의 단어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는데 조금 더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사실 굉장히 애매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런 애매한 부분에 대해서는 생산적인 토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최소한 일부 사람들이 왜 해당 표현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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