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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라고 보기 어려운 기사단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절대 강하지 않습니다.
사건을 해결하는 메인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기사라는 단어에 있는 꿈과 희망과 로망을 안고 배속받은 기사단이 속칭 잡무 기사단.
꿈과 희망과 로망이 모두 멀어지고 자신이 바라던 기사로써의 삶 따위는 찾아보기도 힘든 곳에서 하루하루 잡일을 하는 불쌍한(?)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아래는 1장 - 악몽의 원인 중 -
“젠장. 단장인 나를 이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레이븐은 불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뭔가 단단히 벼른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왠지 벌써부터 저 결의의 결과가 안 좋게 끝날 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하려고요?”
“복수다.”
“네?”
“단장인 나를 이렇게 만든 것에 대한 복수를 할 거라고!”
“그 복수가 제대로 이뤄질 거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복수하려고요?”
“세리스의 부끄러운 모든 걸 폭로해주지!”
더 듣고 있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나가야 하나? 도대체 어떤 정신상태를 가지고 있으면 나이를 저렇게 먹어놓고 유치한 생각밖에 못하는 거지?
“그러다가 더 맞습니다.”
움찔 하는 모습이 순간 나타났지만, 레이븐은 곧 ‘후후.’ 웃음을 지었다.
“맞기전에 끝낼 거야.”
그렇게 맞아놓고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그래서 뭘 폭로할 건데요?”
“세리스가 가장 신경 쓰는 거.”
신경 쓰는 거? 의문부호가 머리 위에 올라섰을 때, 레이븐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여자의 속옷을 꺼내들었다. 아주 당당하게 말이다.
“…….”
분명 내 표정은 내가 조절할 것도 없이 ‘으엑?’ 하는 표정이 되었을 것이다.
“이걸 공개하는 거다!”
“…….”
신이시여. 저 인간은 대체 어떻게 하면 구제가 가능하단 말입니까?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저런 멍청한 인간이 기사단 단장이라니.
“자세히 봐봐. 이게 속옷이냐? 그냥 그 위치에 얹어놓는 거지. 안 그래? 아예 안 입는 게 나을 정도로 안쓰럽다고.”
자세히 보긴 뭘 봐, 인간아!
게다가 저렇게 얘기하는 걸 보니 슬프긴 하지만 분명 저건 세리스씨의 것이 확실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인간은 대체 저걸 어떻게 손에 넣었단 말인가?
“…….”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세리스씨가 뭔가를 찾고 있던 거 같았는데, 설마 저거인가?
“레이븐 미친 건 아니죠? 너무 많이 맞아서 뇌가 이상해진 거 아니죠?”
“후후후. 나는 멀쩡하다. 지극히!”
“그러다가 진짜 죽어요. 죽을 수도 있다고요. 제발 그런 미련한 짓은 그만두세요!”
“미련한 짓이라니. 이건 당연한 거야! 나도 지금까지 당하기만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당한 이유가 전부 본인이 스스로 만든 거라는 건 모르는 겁니까아?! 으아아아! 이 인간 진짜 짜증나. 완전 짜증난다고!
게다가 저걸 공개하면 진짜 레이븐은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세리스씨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가슴이다. 레이븐의 말대로 안쓰러울 정도였기 때문에 차마 말을 꺼낼 수도 없었고, 꺼낸다 하더라도 그 즉시 처형감이 된다.
세리스씨의 분노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으면 가슴에 대한 부분으로 공격을 해라! 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레이븐의 저 행동은 너무 많이 맞아서 이성이 맛이 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분명 세리스씨가 저걸 본다면, 엄청날 정도의 살기를 내뿜을 것이다. 감히 쳐다보는 것도 숨을 쉬는 것도 못할 정도의 엄청난 살기를 내뿜을 것이다.
“……죽여버리겠어.”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어?”
나는 내 뒤에서 느껴지는 그야말로 엄청난 살기에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으, 으어억…….”
그곳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세리스씨가 마치 피에 물든 것 같은 눈동자로 레이븐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지금까지 봐왔던 분노 중 가장 큰 분노다. 이대로라면 진짜로 레이븐은 죽는다. 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이걸 공개함으로써 세리스의 치부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거야!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더 이상 바깥을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말이지! 그것만으로도 나의 복수는 성공인 거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거 같습니다.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레, 레이븐. 그만하는 게 조, 좋을 거 같은데요?”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그럴 수는 없지. 나도 인간으로써의 타락을 각오하고 벌인 일이라고! 그리고 말이지…….”
그딴 일로 제발 타락하지 말란 말이야!
레이븐은 그동안 쌓인 게 많았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고, 나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와중에도 세리스씨는 레이븐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머리카락은 당장이라도 타오를 것만 같았고, 붉은 눈동자에는 이제 광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는 합장을 하고 문 앞에서 레이븐을 향해 말했다.
“명복을 빌게요. 다음 생에는 제발 멀쩡한 정신을 가지고 태어나길 바라겠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설마 말하러 가는 건……, 헉?!”
뒤늦게 발견한 듯 레이븐이 헛숨을 들이키는 게 들렸다.
나는 그 순간 문을 나섰고, 그대로 쪼그린 채 귀를 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귀를 막는다 하더라도 지옥의 소리는 내 귓가에 그대로 꽂혀 들어왔다.
끄어으아으아아악! 세, 세리스 자, 잠깐! 어, 어깨가! 처, 척추가아아아악!
나는 이 순간 공포에 떨면서 내 꿈과 미래가 사라졌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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