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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Lv.22 무한오타
작성
08.06.15 23:45
조회
948

제목 :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89

저자 : 전혜린

출판 : (주)민서출판

작성 : 2007.07.03.

“아무리 모든 것에 대한 중립을 말하고 있다 생각하여도, 인간이기에,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야 만다.”

-즉흥 감상-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책일지라도 최근 들어서는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서부터 힘들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차선책으로 읽기 시작한 것이 수록된 각각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듯 하면서도 결국은 전체적으로 저자분의 삶과 그 속에서 하나 된 흐름을 보이는 기록들이라 판단중인 에세이 유의 책이 되겠는데요. 이번에는 방학동안의 계절학기라는 정신적 여유에 반해 뜻하지 않은 조부의 상喪을 통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게 한 한권의 책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책은 저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녀를 향한 추모를 기리는 듯한 글로서 시작의 장을 열게 됩니다.

  그렇게 저자의 독일-뮌헨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기록에 이어 그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그런 그녀의 인생 속에서 접하게 된 문학작품들의 구절과 함께하는 그곳에서의 생활의 발견, 결혼과 태어난 딸의 성장일기 등을 동반한 인생철학의 기록들이 하나 가득 펼쳐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추린 내용에 대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 것을 먼저 적어보자면, 아직 타인에게 읽혀지지 않은 책이나 작품일 경우 그 소개 과정을 조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요. 아무리 선입견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접한다 말하는 저 일지라도 이번처럼 책을 넘겨보기도 전부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보이는 듯 했지만 결국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 한 여인의 이야기’라는 설명을 먼저 들어버린 탓인지,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단어가 제 감상회로를 압박해오는 듯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책에 담겨진 내용이 삶에 대한 찬양과 고향으로의 향수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많았었기에 그저 혼란에 빠져버리고 말았는데요. 흐음. 일단은 본의 아닌 접근점이 그런 선입견과 관련된 필터를 거친 것이었기에 우선은 개인적인 생각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보고자 합니다.

  저는 ‘자살’에 대해 부정하는 쪽이 아닙니다. 하지만 죽고 싶다 말하는 이가 옆에 있다면 기꺼이 여행을 같이 갈 것을 추천하는 바인데요. 그것은 제가 여행을 통한 죽음에 가까운 체험들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통해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의지력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언제부터인가 쓰러져 육체의 통제력을 상실한 체 흙먼지 풀풀 날리는 바닥을 정면으로 의식하며 누구 하나 도움의 손길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저 멀리 이온 음료 자판기를 목격해본 경험 있으신가요? 맑기만 했던 겨울 하늘아래의 등산에 이어 하얀 눈 펄펄 내리는 하산과정 도중 분명 아는 길이라 생각하고 내려왔건만 방향을 잃어 조난당했고 기적적으로 혼자 그 난관을 극복하고 살아서 집으로 되돌아 가본적은 있으신가요? 2월의 바닷가에서 캠핑하다가 저 혼자 살아남기 미안해 일행과 방한 장비를 나누었다가 얼어 죽을 뻔 한 경험은 있으신가요? 외국이나 국내의 여행도중 본의 아니게 길을 잃어 미아가 된 뒤 그 상황을 타개해 가고자한 목적지나 처음의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보신 적은 있으신가요? 물론 나름대로 인생의 끝에 서본 듯한 감각을 경험해보신 분이 있으실 것이라고는 생각이 듭니다만, 실질적인 죽음 앞에 서보셨다가 살아 돌아오신 분들이 혹 있으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감히 저와 비슷하게 변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 이런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었냐하면, 저의 위와 같은 경험을 믿지 않으시는 분들이 저를 보고 ‘온실에서 자란 놈!!’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번 책을 읽고서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요. 물론 한권의 책을 읽고서 ‘저자는 이런 사람이다!!’ 함부로 결론 짖기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이 기록만을 참고하자면 저에게는 그야말로 ‘온실에서 살아오신 분’이라는 기분이 들어버렸습니다.

  저는 저자분이 살아온 시대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현재적인 시점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자살’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서는 그저 한쪽 방향으로만 보려고 하는 기분밖에 들지 않았는데요. 그렇다면 문제의 ‘자살’을 제외시키면 이 기록들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읽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 문학 에세이, 2005’와 비슷하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오면서 삶의 지표가 되어준 수많은 문학작품의 이야기가 저자분의 일상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하나 둘씩 자연스럽게 등장함에 그런 기분을 가져볼 수 있었는데요. 여기서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했기에 더 적어보자면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1999’처럼 자신의 삶에 있어 남들과는 다른 상처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새롭게 태어나 앞으로 나아가야할 밝은 빛의 길에 대한 기록이라 받아들일 수 있는 반면, 이번 책의 기록일 경우 삶의 공허함을 말하는 동시에 반전적으로 삶의 환희를 말하는 기록이라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딸의 탄생과 성장과정의 기쁨에서는 다시 태어남의 희열이 읽히기는 했지만, 그 이야기와 함께 20대에서 30대가 되어가는 저자분의 기록에서는 저의 혼란스러웠던 학창시절 저만의 카운슬러였던 일기장을 다시 보는 기분이 없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Woher sind Sie?”

  그리고 기록의 중간에 등장하는 이 질문은 저 자신이 그렇게 일기장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해왔던 것이며 또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그 중에서도 특히 ‘아버지들의 아버지Le Pere de Nos Peres, 1998’를 통해서 많은 생각의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던 질문이었는데요. 아마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의 시간을 가져보신 분들이라면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인간은 어디로 가는가?”에 대해 최소 한번 이상은 고민해본 문제일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저자 분은 ‘고향’이나 ‘향수’에 대한 어떤 뚜렷한 목적지나 방향성의 부재에 대해 고민 한다 판단되었는데요. ‘광적인 열중’이후에 찾아오게 되는 ‘광적인 허무’에 대해서는 저 또한 경험해본 문제이니 그 기분에서만큼은 비슷하게나마 공감을 가져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살’이라. 아직 20대 중반을 살아오며 역시나 30… 아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저라지만 ‘자살’에 대해서만큼은 ‘금지코드’가 정신에 강하게 못 박혀있다는 것을 그나마 축복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여기까지 정리하던 중 생각해본 것이지만, 우리들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언젠가 무엇인가를 미친 듯이 하던 중 그 나름의 높은 벽을 만나 좌절의 늪에 빠져들고 있을 때 시를 쓰는 친구가 한마디 해준 것을 저는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범해. 그러니까 평범하지 않을 수 있는 거라구.”

  얼핏 모순처럼 들리는 말일지라도 그 당시에는 정말이지 그동안의 근심걱정이 한방에 날아가 버리는 기분이 들었었는데요. 이 말을 저자분의 기록을 통해 설명해보자면, 저자분일 경우 자신의 삶이 평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 모든 ‘특별함’의 끝에서 ‘평범함’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에 자아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 또한 저의 체험을 토대로 느낀 것이기에 정답이라고는 감히 장담할 수 없지만, 그것과 반대로 그런 ‘특별함’ 자체가 일상이 되어버린다면 모든 ‘특별한 행위’에 뒤따를 수밖에 없는 허무라던가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머릿속의 논리가 완성되었기에 위의 말에서 산뜻한 충격을 받아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데요. 흐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내지른 ‘유레카’에 대해 어떻게 쉽고 멋진 설명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저자분의 사후에 그동안 일기나 편지 등의 형식으로 작성되었던 기록들을 묶어 출판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과연 저자 분은 이 기록들이 출판되기를 원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가 작가의 사후에서야 빛을 보게 되는 작품들이 많다는 점을 비춰보자면 역시나 ‘죽음’이라는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터부시 되는 것을 통해 촉망받는 커리어 우먼으로서의 저자로 하여금 죽음으로 이끌게 한 원인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기록에 대한 공개를 결심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기까지 했는데요.

  덕분에 이렇게 ‘죽음’에 대한 선입견의 색안경까지 끼고서는 혼자만의 일기장이라면 당연시 되어야할 ‘희로애락’에 대해 ‘슬픔’에 대한 부분만이 부각되어 보인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습니다.


Comment ' 4

  • 작성자
    Lv.5 호라이즌
    작성일
    08.06.15 23:56
    No. 1

    뜬금 없지만 톨스토이의 명언이 생각나네요.
    이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이오스
    작성일
    08.06.16 01:10
    No. 2

    안녕하세요 호공조 이오스매니아에요... 훗. 항상 글 잘보고잇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무한오타
    작성일
    08.06.16 08:01
    No. 3

    호라이즌 님의 답글에 대해서... 저는 죽어서 가죽... 아니 이름을 남기고 싶습니다^^ b

    이오스 님의 답글에 대해서... 오우 반갑습니다 크핫핫핫핫핫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메인디시
    작성일
    08.06.24 15:22
    No.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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