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온 연예계물을 보면 딱 이 느낌이 듭니다.
‘정파’.
딱 예전의 전형적인 정파 주인공같이 바른 인물들이 주인공이란 말이죠. 더 좋은 연기를 위해서, 더 좋은 작품을 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하는 열정. 신인 때나 인기를 얻은 후에나 현장 스태프, 단역에게 예의를 잃지 않는 친절함. 팬들의 사랑에 진심으로 고마움과 감사를 느끼며 아무리 사인 요청이 많아도 즐거워하는 인격자.
흔히 연예계를 정글이라고 하죠. 그런데 이 주인공들에게 연예계란 너무 쉽습니다. 세상이 원래 실력으로 말하는 곳이라 해도 술수에 휘말리거나 약점을 찔리면 아무 것도 못 해보고 그대로 주저앉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 이 주인공들의 주변엔 능력 좋고 주인공을 진심으로 아끼는 매니저, 소속사 대표, 동료 배우, 팬들이 즐비하고 적들은 그저 이정도면 되겠지 하는 찔러보기식 공격이나 성급한 판단과 행동으로 자기 스스로를 망칩니다.
정글이라면서요? 적들도 주인공편에 못지 않게 험난한 연예계를 수없이 겪고 이겨내서 그 자리를 차지한 짐승들인데 왜 그리들 허접합니까? 주인공 주변에는 죄다 좋은 사람들 뿐이고요? 주인공 매니저나 대표가 사기꾼이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에게는 어떤 타격이 와도 좋으니 주인공이 원하고 주인공에게 이득이 가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향을 가진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나도 성공하고 너도 성공하자’ 마인드가 아니라 ‘난 어떻게 되든 일단 너부터 성공하고 보자’ 이 느낌입니다.
거기다 다른 놈들이 자기들에게 어떤 수작질을 부리기 전까지는, 공격을 당하기 전까지는 캐스팅이든 편성이든 뭐든 그냥 실력으로만 맞붙습니다. 이미 잡고있는 약점이 있어도 상대방이 먼저 치기 전까지는 그냥 정정당당하게만 붙는다고요. 너무 올바른 친구들이 연예계에 많아요!
원래 하려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서론이 너무 길어졌네요. 그러니까 제가 하려던 말은, 뭔가 좀 더 다크하고 하드한 연예계의 민낯을 보고 싶단 겁니다.
여자 연예인을 내세운다면 ‘인생 다시 한 번’의 ‘김수연’같은 인물. 어려운 상황에서 유혹에 빠져서가 아니라 충분한 외모와 연기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빠르고 손쉬운 성공을 위해 자기 몸을 이용함에 거리낌이 없고, 그 관계를 문제 없이 정리하는 영리함을 겸비했죠. 자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내숭은 덤이고요.
남자 연예인이라면 항상 보는 순둥이 주인공 말고 진짜 ‘아 얘가 톱스타구나’하는 그런 인물을 보고 싶습니다. 아예 뭐 성격파탄자는 아니고 그냥 이름값을 한다, 까칠한 게 톱스타 티를 낸다 뭐 이런 정도?
물론 톱스타 대우 받고 가끔 일부러 지각도 해주면서 감독과 기 싸움을 하는 톱스타를 그려내려면 신인 때부터 성장하는 주인공을 쓰진 못 할겁니다. 대번에 주인공이 초심을 잃었네, 변했네 하는 소리가 나올게 뻔하거든요. 처음부터 톱스타 주인공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린 듯한 까칠한 톱스타의 몸에 누군가가 들어가서 그걸 안 들키려고 까칠함을 연기하는 착각계가 어떨까 싶습니다. 싸가지 없는 톱스타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개과천선했다는 전개는 이제 너무 식상하잖아요?
물론 쓰기 어렵습니다. 착각계는 필수적으로 여러 인물의 시점을 보여줘야 하고 인물들은 진지하지만 독자에겐 개그가 되는 점이 포인트인데 이는 자칫 잘못하면 유치해져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언제나 문제는 필력이죠. 위에 말한 여주인공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이상하게도 정서상 살인보다 성을 다루는 걸 더 불편해 하거든요.
뭐 그래도 무협도 정파 주인공에서 정사지간으로, 정사지간에서 사파, 마도인까지 이제 범위가 넓어졌잖아요? 자신만의 협을 추구하긴 하지만 막으면 다 죽인다 하는 수준까진 왔습니다. 악마전기까진 바라지 않더라도 이처럼 이제 연예계에서도 사파인, 마인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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