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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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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조조의 명과 암

작성자
Lv.45 호우속안개
작성
16.10.16 20:31
조회
2,585

- 조조는 기본적으로 초세지걸 이라고 할만큼 영정 유방 유수 이후 4번째로 중국의 7~8할 사이를 정복했다.

- 많은 문인들을 키우고 보호하여 문화의 중흥을 이끌어 냈다.

- 이민족을 잘 통제하여 촉한 동오 외의 세력과는 거의 전쟁이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 위나라 이후의 왕조인 서진에게 통일의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 많은 인재를 등용하고 잘 활용하였다. 설사 본인에게 큰 위협을 끼쳤던 정적이라도, 적과 내통한 혐의가 있더라도 통제범위내에서 유능하다면 기용하는 과단성을 보였다.

- 동탁 이각 이후로 땅에 떨어졌던 한왕실을 잘 활용했고 겉으로나마 존중하는 척 했다.

- 본인이 찬탈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아들이 곧바로 해버리지만..)



- 2차례에 걸쳐 서주에서 대학살을 일으켜 호曰 계곡과 하천 강이 온통 시체로 가로 막혀 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라고 할 정도로 큰 범죄를 저질렀다. 


- 원소와의 전쟁 이후 항복한 5~10만의 장정들을 산채로 땅에 묻어버렸다. 이는 장평대전 때 30~40만의 조나라군을 묻어버린 백기나, 거록에서 큰 승리후 항복한 진나라 군 15~20만명을 묻어버린 항우 이후 가장 큰 살육중 하나로 뽑힌다.


- 백성들의 강제 이주를 즐겼다. 특히 회하이남 지역의 백성들을 모두 강제 이주 시키려 하다 100만여 백성들이 손권에게 귀의할 정도. 한중이나 서량지역 등의 지역에서 행했고 매우 강제적이라 백성들의 원망이 컸다.


- 둔전제를 실시하며 세금과 군복무기한을 크게 늘렸다. 세금같은 경우 무려 6할에 가까운 곡식을 내야 했기에 백성들 삶이 퍽퍽했다고 한다. 더구나 이후에는 여러 세금이 더 붙어 위말기와 서진시기에는 더 힘들어 졌다고 한다.


- 여색. 그중에서도 유부녀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져 연주 사례지역의 많은 사대부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는 그 부인을 탐하는 경우가 잦았다. 


- 통제 범위를 벗어난 천재는 크게 시기하여 한직으로 내쫏거나 죽이는일을 자주 하였다.  대표적으로 자기 아들 조충이 죽자 조충과 비슷한 재주를 가졌다는 주불의를 죄없이 죽인 예가 있다. 


- 비록 부하라도 생명을 함부로 거두는 일이 잦았다. 예컨데 전쟁중 식량이 떨어져 불만이 높아지자 보급관이 착복했다는 누명을 씌운후 죽인다던지, 암살이 두려워 일부러 자기 호위병을 죽이고 꿈에서도 근처 오는 사람을 파악해 죽일 수 있다고 소문낸다던지.. 수도에 큰 불이 나자 그 불을 끄러 온 신하들을 의심하며 반란가담자거나 불낸놈들 이라고 말하며 모두 죽인다던지 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Comment ' 12

  •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6.10.16 22:08
    No. 1

    다른 것은 모두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며 명과 암의 구분도 그에 따른다고 봅니다. 잘 읽었고요.

    그런데 둔전에 대해서는 조금 이견이 있는데,
    배경 : 황건의 난 이후 유민 급증. 정착민 부재로 인한 토지의 황폐화. 대대적인 식량부족.
    식량증산의 필요성 : 본인의 권력 강화. 유민의 안정화에 이은 국가 안정. 민생을 통한 군사력 강화.

    그 수단으로 채택된 것이 둔전제로, 사실상 이 외에는 당시로는 택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볼 수 있습니다. 주나라 시대의 정전이나 한대의 인두세는 천하가 안정된 바탕으로나 효과가 있기 때문이지요. 비록 가혹하나, 농민을 토지에 묶는 것은 결과적으로 난세 평정에 큰 몫을 했습니다.

    세율에 대해서는 조지와 임준에 맡긴 첫 시행때 20%로 시작했고, 이후 소가 있을 경우 50%, 없을 경우 소를 빌려주는 댓가로 60%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현대 기준으로는 높은 세율이지만, '백성이 모두 즐겁게 임하였다' 라고 기록이 남을 정도로, 당시에는 전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고 농사에 전념하고 또한 최소한 굶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일 수 있습니다.

    군복무에 대해서는 병호제로 갈라지기 때문에,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외하고는 둔전의 영향은 크지 않습니다.

    조환 시대에 둔전은 거의 완전히 폐기되기에, 이후 세율과 국가재정의 방만은 서진 청담파들의 사치 풍조와 사마씨의 학정에 기인하며 둔전 등의 제도의 영향은 적습니다. 다만 서진 초기에서 팔왕의 난에 이르는 기간 동안까지는 '비록 암주와 학후(진혜제와 가남풍)의 조정이라고 간주되기도 하지만, 천하는 이처럼 편안하였다." 라는 기록이 진서에 있을 정도이기에, 평화의 시대란 것은 어쩌면 가장 큰 혜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결론 : 한계는 있지만, 당시 둔전은 필요불가결의 정책이었다고 봅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0 카힌
    작성일
    16.10.16 22:19
    No. 2

    먼저 댓글을 달았었는데, 오타가 많아 다시 답니다.

    삼국지 관련해 나오는 숫자가 맞는지부터가 의문입니다. 역사 자료를 토대로 인구를 추정한 기록을 보았는데요. 한나라 시절에 오천만 가량 되었던 시기도 잠시 있었지만 삼국지 때는 위촉오 인구 합이 천만이 안되는 것으로 나오더군요. 왜 이런 큰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천만이 안되는 전체 인구 중에서 5~10만을 생매장 했다는 말이나 100만의 인구가 손권에 귀의 했다는 말은 뻥튀기가 매우 심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측이지만 1~2만 정도 귀의 했겠죠

    찬성: 0 | 반대: 3

  • 답글
    작성자
    Lv.50 백린(白麟)
    작성일
    16.10.17 00:12
    No. 3

    혼란기가 오면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인구가 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집계상으로도 천만 이하였던 적은 없지 않나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7 말린콩
    작성일
    16.10.17 00:46
    No. 4

    통전기록으로
    263년 촉 94만
    280년 오 230만
    263년 위 440만..정도로 추정하는 데이타도 있습니다.
    .
    280년 진서지리지에 진나라 인구 1620만 정도로 집계되는데 실제 추정치는 4천만 이상 잡더라구요.
    .
    뭐 그 당시 지금에서야 군웅할거시대니 뭐니 하지만, 실제로는 이넘저넘 몽땅 무장강도에 칼든 도둑놈 시대라...
    행정력 자체가 직할지와 군대가 주둔하는 곳 외엔 미치지 못했다고 봐야겠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개백수김씨
    작성일
    16.10.16 23:30
    No. 5

    풍운고월님// 제가 알기로는 지속되는 전쟁 + 기근으로 인구가 계속 급감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인구에 관한 문헌들도 말기나 서진 통일 이후에 작성된 것이 많아서 편차가 클 수밖에 없구요
    물론 과장된점은 있어보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사(樣師)
    작성일
    16.10.17 00:31
    No. 6

    말도 안되는 소리네요.
    정사라고 할 수 있는 삼국지나 진서에 나오는 오나라 인구수가 240만입니다.
    아무리 집계상 오류가 있다고 해도 위의 글대로라면...
    오나라 인구 240만 중에서 100만이 위나라에서 넘어온 사람들이라는 것인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더구나 위나라 강제 이주가 싫어서 자발적으로 오나라로 강제 이주를 100만이나 한다?
    저 정도 인구가 오나라로 이주를 하려면 위나라나 오나라 국가 체계가 완전히 무너져야 가능합니다.
    요즘 난민 문제를 생각하면 국가나 지역사회에서 현대에도 수용할 수 있는 외부인은 한계가 있습니다.
    중세 어떤 국가도 본래 인구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그것도 고향을 떠나서 생산기반이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찬성: 1 | 반대: 2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6.10.17 00:56
    No. 7

    -정사 삼국지 장제전에 '장강과 회수 사이의 10만 호가 도주했다' 라고 나옵니다. 1호=10인 까지는 칠 수 없어도 수십만은 잡아줄 수 있는 상황이겠죠. 전혀 말이 안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정사의 인구는 파악할 수 있었던 인구로, 실제로는 이보다는 많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당시는 '통치' = '행정력이 완전히 미치는' 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원술 토벌 이후 유복과 장제가 수춘 합비 일대를 정비하기 전까지 회남지역은 상당한 행정공백지역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국경이란 개념이 확실하지 않은 그 때, 사람들의 이동과 정착은 나라 대 나라의 이민이 아니라 누구에게 세금을 내며 살아가느냐, 그 정도의 인식이 고작입니다.

    -오나라는 만성적인 인구 부족에 시달렸습니다. 손권은 산월, 교지 뿐만 아니라 대만까지 손을 뻗어 사람을 모아들이려 애를 썼습니다. 제갈각이 교지에서 수만 병사를 모아오며 고속승진했고, 위 10만 호 이주 건에 손권이 크게 기뻐했었죠,

    -당시의 난민과 지금의 난민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생산 및 산업체계가 단순했던 그 시절에는, 유민 대부분은 땅과 기구를 주면 즉시 농사가 가능할 정도의 귀중한 '인력' 입니다. 당시는 고대였고, 인구는 곧 생산력입니다. 반면 현대는 대체적으로 해당국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몸만 빠져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같이 비교하긴 힘들 겁니다.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양사(樣師)
    작성일
    16.10.17 02:46
    No. 8

    일단 10만호가 10명이라는 것 자체가 오류입니다.
    삼국지나 진서는 물론이고 명사나 청사고까지...
    중국 정사에서 한호의 인구는 4명에서 6명 사이입니다.
    애초에 호라는 것 자체가 한 사람 장정이 거느리는 부양가족이기 때문에 10명 정도의 숫자가 되면 따로 호가 독립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10명인 호가 있을 수는 있으나 10만호 전체가 10명으로 구성될 가능성은 없고 평균적으로 4.5명에서 5.5명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건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양 중세 장원에서 농노 한 가족의 숫자도 대략 5명 내외입니다.

    물론 지적하신 것처럼 중국에서 어느 시대에나 실제 인구와 공식적인 호의 수는 차이나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현대 중국에서조차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위에서 오로 도망갔다는 10만호는 좀 사정이 다릅니다.
    위에서는 은호였을 수도 있으나 오로 도망가서 10만호라는 숫자가 나온 이상 오의 통치체계에 편입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삼국지에서 밝히는 오나라 민호 52만 호 중 10만호 정도...(도망간 시점과 오나라가 멸망한 시점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증감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도망온 난민이거나 그 후손일 가능성이 큽니다.
    군호나 세족은 민호 52만 호 중의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도 10만호면 오나라 인구 전체 인구 최소 10분의 1에서 10분의 2정도입니다.
    중국의 특성상 다른 지방의 이주민이라면 생활습관이나 심지어 언어까지 다른 사람들이 유입됐을 때 오나라 지역 사회는 꽤 많은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에서 토착민과 이주민 갈등이 얼마나 심했는가는 현대에도 남아있는 토루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실제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는 겨우 3만명 조선족까지 합해도 80만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 내부에서 탈북자나 조선족에 대해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상당히 많습니다.
    당연히 탈북자는 물론이고 조선족도 한국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지요.
    이런 갈등을 수면 아래로 잠재우기 위해서는 국가의 행정이 뒤따라야 합니다.
    한국과 같은 고도의 행정력을 가진 국가도 이런데 삼국시대 특히 오와 같은 호족연합 세력이 강한 나라에서 10만호나 되는 난민을 국가체제에 통합시킬 정도의 행정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위에서 도망쳐왔다는 10만호가 얼마나 식량을 가지고 왔느냐는 문제입니다.
    몇몇 가족들은 멀리 도망가면서 식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민호는 중국사에서 충분한 식량을 비축할 여유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말 그대로 전쟁이 중국 전체에서 벌어져서 인구가 급감하던 삼국시대 그것도 행정공백 상태에서 충분한 식량을 비축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사 충분한 식량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마차나 말과 같은 이송수단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던 민호가 오나라로 가면서 소지할 수 있는 식량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나라가 과연 새롭게 늘어난 10만호를 다음 추수할 때까지 부양할 충분한 여유 비축 식량이 있었을까요?
    설사 있었다고 해도 그건 군량미이지 국가에서 난민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식량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오나라 전체에 10만호를 부양할 수 있는 식량이 있었다고 식량과 같은 가격탄력성이 높은 제품의 특성상 오나라는 엄청난 식량 가격 폭등을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오나라에 살던 민호 입장에서는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위나라 난민들 때문에 몇 배나 비싼 식량 가격을 감당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렇게 생긴 불만을 오나라가 억누를 행정력을 가진 나라인가요?
    더구나 오나라가 오나라가 인구부족이라서 손권이 멀리까지 사람을 모으려고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오나라에 엄청나게 여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원래 오나라 사람들이 경작하고 있던 땅의 일부를 빼앗아서 위나라에서 온 난민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이상...
    위나라 난민들이 정착하고 경작할 농지는 새롭게 개간해야 합니다.
    아무리 옥토라도 경작되지 않는 이상 제대로된 식량 생산을 위해 논이나 밭으로 바꾸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오나라는 위나라 난민들을 부양해야 합니다.
    위나라 난민들이 오나라에 가서도 어차피 새로운 땅을 경작해야 한다면... 도대체 그냥 위나라 이주 명령을 따르지 뭐하러 목숨을 걸고 오나라로 가서 새로운 땅을 개척합니까?
    한두명은 따뜻한 강남이 더 좋다고 생각할 수있다지만 10만호가 그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강제이주를 피해서 위나라에서 오나라로 도망가는 난민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수는 퐁운고월님의 말처럼 많아야 수천호 즉 몇만명 수준이지...
    조조의 강제이주를 피해서 10만호 혹은 100만명이 위나라에서 오나라로 도망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찬성: 1 | 반대: 4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대마왕k
    작성일
    16.10.17 03:29
    No. 9

    저도 1호 = 10명은 과하다고 봅니다. 이미 적어놓은 바고요.
    하지만 사실 자체는 분명 정사에 적혀 있습니다. 물론 사료는 다양하게 교차검증해야 하고 또한 정사 자체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점에 의심을 품음은 합리적 자세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1. 삼국지 저자인 진수는 촉-진 두 정권을 섬겼고, 편찬은 진나라 치하에서 한 겁니다. 위 정권을 무너뜨린 진 치하에서, 조조의 실책이라면 실책인 해당 건에서 과장 혹은 곡필했을 가능성은 확실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2. 그러나 전후 형주 및 양주의 인구 증가를 볼 때, 중원 전란을 피한 대량의 유입인구 없이는 설명이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100만이 과장이라면 고작 몇 만도 그렇습니다.

    3. 식량이 없어서 난민이 부담이라면, 또한 그를 받아들일 행정력이 없다면 손권이 그렇게 인간 끌어들이기에 목을 맬 까닭이 없습니다. 즉, 해당 시기에 손권 및 오 정권의 관점에서, 유입되는 사람들은 먹여 살려야 할 부담스러운 입보다는 확실한 노동력으로 보고 있다는 반증이 됩니다. 또한 그들에게 나누어줄 땅과, 수확이 결실을 맺을때까지 먹여 살릴 자신은 있었다는 것 아닐까요?
    관련해서, 조조가 청주 황건당을 토벌하고 다수의 인구를 손에 넣은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식량이 부족해서 둔전을 해야 할 판에 대체 그들은 어떻게 수용했을까요? 이후 둔전은 과연 누가 한 것일까요? 부족하나마 받아들이고, 장래의 이득을 본 것 아닐까요.

    난민은 먹여 살려야 하는 입이냐, 아니면 생산할 수 있는 손이냐.
    당대 권력자들의 관점은 어디로 가 있었을까요? 당연히 후자가 아닐까요?
    제 논지는 이것입니다.

    늦어서 자러 갑니다만, 다시 돌아와서 보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64 수로공
    작성일
    16.10.17 04:14
    No. 10

    덕분에 공부 잘 하고 갑니다.
    헌데, 궁금한 점이 생겨서 몇 가지 문의를 드립니다.
    1. 그 시대에 노비, 천민, 노예와 같은 부류가 있었습니까?
    2. 만약, 있었다면 이들은 세금에 대한 어떤 책임을 졌어야 하나요?
    3. 세금에 대한 책임이 없다면 인구수에 포함이 된 것인가요?
    이상입니다. 혹시라도 알고 계신 분이 계시면 답글 부탁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개백수김씨
    작성일
    16.10.17 07:41
    No. 11

    제가 알기로는 당시 위나라 빼면 촉, 오는 대부분이 미개척지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원주민과의 충돌이 일어나는 이유는 한정된 재화. 그러니깐 생계유지가 가능한 토지의 부족으로 서로 충돌이 일어나는 것인데...
    대부분 미개척지, 거기에 연중 날씨도 따듯한 오나라라면 10만호 정도 되는 인구가 들어온다 한들 대부분 수용이 가능했을 것 입니다.
    지금이야 10만호에 해당하는 40~50만정도의 인구가 들어오면 그것을 관리한다고 어마어마한 돈이 깨졌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때 그정도 인구가 들어오면 그냥 미개척지에 영토 분배만 하고 아무런 지원 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국민으로 받아들여 세금과 군적에 넣는거에 의미가 있는거지 별도의 지원은 뭐... 중국의 인명경시는 현대나 고대나 유명했으니깐요.
    아마 스스로 가져온 돈으로 먹고살아야 했을 겁니다.... 물론 10만호는 개척 과정에서 어마어마하게 죽었을 거고.

    찬성: 2 | 반대: 0

  • 작성자
    Lv.18 글도둑
    작성일
    16.10.18 18:04
    No. 12

    뭔가 이야기 흐름이 인구 수의 고증으로 몰리고 있네요.

    그런데 중궈 특유의 뻥튀기를 감안하면 딱히 얼마나 많은 인구가 움직였다는 그리 의미가 없는것 같습니다.

    중궈 자체가 인구가 많다 보니 % 단위로 계산해도 많은 인구가 움직였다는 거겠죠.

    요점은 억압에 못 이겨 많은 인구가 이탈을 한거고, 반란이 무서워서 부대 단위로 군인들을 파묻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닐까요.

    다만 그 숫자가 조금 크다는 정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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