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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백과

무협에 관련된 지식백과



한자성어 여러개.

작성자
Personacon 검우(劒友)
작성
03.01.04 19:47
조회
1,792

가가대소(呵呵大笑)

큰 소리로 껄껄 웃는 웃음.

가가문전(家家門前)

집집마다의 문 앞.

가가주입춘(假家柱立春)

가게 기둥에 입춘.

假 : 빌릴 가 柱 : 기둥 주

가감승제(加減乘除)

사칙으로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말함.

가계야치(家鷄野雉)

집안에서 기르는 닭과 산의 꿩이란 뜻으로, 자기 집의 것은 하찮게 여기고 남의 집 것만 좋게 여긴다는 것의 비유 [고사] 진(晉)나라의 유익(庾翼)은 서법(書法)이 왕희지(王羲之)와 같다는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유익의 집안 사람들이 자기의 서법은 배울 생각을 하지 않고 모두 당시 유행하던 왕희지의 서법을 배우자 어떤 사람에게 편지하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이들이 집안의 닭은 천하게 여기고 들판의 꿩만 사랑하여 모두 왕희지의 서법만 배우니, 나를 그만 못하게 여긴 것이오."

[출전](太平御覽)

가고가하(可高可下)

어질고 현명한 자는 지위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는다.

가급인족(家給人足)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함.

가기이기방(可欺以其方)

그럴 듯한 방법으로 남을 속일 수 있음.

가기이방(可欺以方).

가기이방(可欺以方)

그럴 듯한 말로써 남을 속일 수 있음.

가농성진(假弄成眞)

처음에 장난 삼아 한 일이 나중에 정말이 됨.

농가성진

가담항설(街談港說)

길거리나 세상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기.

세상에 떠도는 뜬 소문.

가담항어(街談巷語)

늘 세상에 떠도는 뜬소문.

가도멸괵(假途滅괵)

길을 빌려서 괵을 멸한다는 뜻.

이는 옛날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주유가 길을 빌려 익주를 치는 척하면서 실지는 형주를 치려는 계획을 세우자, 제갈량이 이미 이를 간파하고 주유를 농락하였다

가도벽립(家徒壁立)

집안에 세간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다만 사면에 벽만이 둘려 있을 뿐이라는 뜻.

집안이 가난함을 비유한 말이다.

가도사벽(家徒四璧)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살림이라고는 네 벽밖에 없음.

(고사) 중국 한(漢)나라 때의 사마 상여는 시를 짓기로 이름난 사람 이었다.

그가 왕길이라는 사람의 집에 몸을 의지하고 있을 때, 탁왕손이라는 부자가 두사람을 초대하였다.

이 연회 자리에서 사마상여가 타는 거문고소리를 들은 탁왕손의 딸 탁문군은 그만 사마 상여를 사모하게 되었고 사마상여도 그를 좋아 했지만 탁왕손은 사마 상여의 집안이 너무 가난해 결혼을 반대하여 두 사람은 성도에 있는 사마상여의 집으로 한밤중에 도망을 하였다.

사마 상여의 집은 지독하게 가난해서 방 안에는 네 벽밖에 없었다.

그래도 탁문군은 낙담하지 않고, 사마상여와 백년 가약을 맺고 생계를 열심히 꾸려 나갔다.

그러던 중 한 무제가 사마 상여의 글을 읽고 크게 기뻐하며 도성으로 그를 불러 들여 벼슬을 내렸는데, 이 때부터 그는 유명해져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탁왕손을 비롯하여 그의 집안에서는 아무도 사마 상여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동가서(可東可西)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

가동주졸(可動走卒)

길거리에서 노는 철없는 아이.

가렴주구 (苛斂誅求)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들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

(고사)「공자가 태산의 곁을 지날 때, 부인이 있어 묘지에서 곡하며 슬퍼하거늘, 공자가 엄숙히 이를 들으시고, 子路로 하여금 그에게 물어 말하되" 그대의 곡성은 한결 같이 거듭 근심이 있는 것 같으니라."

이에 말하기를"그러합니다.

옛적에 나의 시아버지도 호랑이한테 죽고, 나의 남편도 또 그것에게 죽고, 이제 나의 아들이 또 그것에게 죽었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되" 어찌 이 곳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하니 "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

공자가 말씀하시되 " 제자들아 이를 들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 이니라."

가릉빈가(迦陵頻伽)

불교에서 나오는 상상의 새로서 머리는 미녀의 얼굴 모습에 목소리는 아름다우며 용의 꼬리가 달리고 극락정토에 사는 새.

가무담석(家無擔石)

석(石)은 한 항아리, 담(擔)은 두 항아리의 뜻으로 집에 저축이 조금도 없음

가무음곡(歌舞音曲)

노래와 춤과 음악.

가봉녀(加捧女)

전부(前夫)의 아들을 거느린 재가녀(再嫁女).

즉, 전 남편의 아들을 데리고 재혼한 여자를 말한다.

가부결정(可否決定)

옳고 틀림을 정하는 일

가부득감부득(加不得感不得)

더할 수도 뺄수도 없다.

가부장제(家父長制)

가부장이 그의 가족 대하여 지배권을 가지는 가족 형태, 가부장이 중심이된 가족의 체계를 원리로 하는 사회의 지배 형태.

가부취결(可否取決)

회의절차에 따라 의안의 옳고 틀림을 결정함.

가분(加分)

환곡은 총량의 절반만 대출하는 것이 법전에 명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 대출하여 모곡(耗穀)의 이(利)를 취하는 것.

창고 곡식을 전부 나누어 주면 무기한 정배(定配), 4분의 3이상 나누어 주면 고신(告身)을 빼앗게 했는데 혹 구황(救荒)을 위해 상사에게 보고하고 가분했을 경우에는 정상을 참작하여 용서한다고 되어 있다.

☞ 고려사(高麗史) 형법지(刑法志) 직제(職制) / 太祖實錄 二年十一月癸丑 / 太宗實錄 四年九只月丁巳 / 太宗實錄 七年八月丁未 / 十三年六月丁丑 / 世宗實錄 二十年三月丙申 / 世宗實錄 二十一年三月癸酉 / 世宗實錄 地理志 全羅道 / 中宗實錄 十三年七月癸丑 / 中宗實錄 十五年二月丁亥

가분급부(可分給付)

성질이나 가치를 유지하고 나눌 수 있는 급부.

가빈사양처(家貧思良妻)

집안이 가난하게 되면 비로소 살림을 잘하는 아내를 생각하게 된다는 뜻.

가빈즉사양처(家貧則思良妻)

집안이 가난해지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게 된다는 뜻으로, 집안이 궁해지거나 어려워지면 어진 아내의 내조의 필요성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는 말.

가빈친로(家貧親老)

살림이 궁색하고 어머니가 늙었을 때에는, 그 봉양을 위해서, 마땅치 않은 벼슬자리라도 한다는 뜻.

가서만금(家書萬金)

여행 중에 가인으로부터 서신을 받으면 그 기쁨이 만금을 얻는데 해당한다.

고사 : 詩聖인 唐나라 杜甫(712∼770, 字 : 子美, 號 : 少陵)의 '春望'이라는 詩에 國破山河在요,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 있고 春城草木深이라.

성에 봄이 오니 초목이 우거졌구나.

感時和賤淚요, 시절을 느껴 꽃에 눈물을 뿌리고, 恨別鳥驚心이라.

이별을 한스러워 하니 새 소리에도 놀란다.

烽火連三月이요, 봉화불은 삼 개월이나 계속 피고 있고, 家書抵萬金이라.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에 해당하는구나.

白頭搔更短하니, 대머리 긁어서 더욱 빠지고, 渾欲不勝簪이라.

상투를 하고자 하나 비녀를 이기지 못하는구나.

가신(家臣)

주인과 다 함께 생활하며 충성을 다하는 참모 (고사) 가신(家臣)이란 옛날 中國이 봉건제도(封建制度)를 實施할 때 대부(大夫)階層에서 거느리고 있던 部下들을 뜻한다.

一種의 參謀인 셈이다.

大夫는 제후(諸侯)로부터 土地를 받았다.

그러나 워낙 넓어 管理를 위해 많은 신속(臣屬)들을 두었는데 그들을 통틀어 家臣이라고 했다.

家臣은 主人에게 온갖 忠誠을 다 바쳤다.

물론 그에 따른 對價는 充分히 支拂되었다.

家臣制度가 盛行한 것은 춘추시대(春秋時代)였다.

家臣의 代表라면 단연 공자(孔子)를 꼽아야 할 것 같다.

그는 祖國 노(魯)나라가 어지럽자 일찌감치 제(齊)나라로 갔다.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당시 齊의 大夫였던 고소자(高昭子)의 家臣이 되어 열심히 일한 結果 信任을 받게 돼 마침내 王인 경공(景公)을 만날 수 있었다.

요컨대 그가 家臣이 되었던 것은 自身의 政治的 理想을 實現하기 위해서 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家臣을 둔 例가 있다.

高麗때 임금보다 더 큰 權力을 휘둘렀던 최충헌(崔忠獻)이 자기 집에서 국사(國事)를 處理하면서 임금의 臣下와는 別途로 사신(私臣)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때부터 家臣이라면 國家와는 關係없이 어떤 勢力家 밑에서 일하는 사람을 指稱하게 되었다.

가여낙성(可與樂成)

함께 일의 성공을 즐길 수 있음.

가유명사삼십년부지(家有名士三十年不知)

가까운 데 있는 사람은 모르고 지내기 쉽다.

가유호세(家諭戶說)

집집마다 깨우쳐 알아 듣게 말함.

가이동가이서(可而東可而西)

동쪽이라도 좋고 서쪽이라도 좋다함이니 이러나 저러나 상관없다는 뜻.

가인박명(佳人薄命)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하고 명이 짧다.

(고사) 北宋 후기 적벽부(赤壁賦)를 지은 蘇軾(字 : 子瞻, 號 : 東波)의 시'薄命佳人'은 어린 승려를 보고 그의 아름다운 모습과 우수에 젖은 듯한 표정을 보고 노래한 시이다.

自古佳人多命薄하니, 예로부터 아름다운 사람은 많이 운명이 기박하였으니, 閉門春盡楊花落이라.

문 닫으니 봄은 다하고 버들 꽃 떨어지는구나.

아래 시의 작자 소식(蘇軾:1036-1101)이 항주, 양주 등의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 우연히 절에서 나이 삼십이 이미 넘었다는 예쁜 여승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웠을 소녀시절을 생각하며 미인은 역사적으로 운명이 기박하였음을 시로 쓴 데서 전하여졌다.

두 볼은 엉긴 우유와 같고 머리는 옻칠을 한 것처럼 새까맣고, 눈빛이 발에 들어 오니 주옥과 같이 빛난다.

본디 흰 비단으로써 선녀의 옷을 지으니, 입술연지는 천연의 바탕을 더럽힌다 하여 바르지 않았네.

오나라 사투리의 애교 있는 소리는 어린아이처럼 앳되고, 무한한 사이의 근심 다 알 수 없네.

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운명 기박함이 많으니, 문을 닫고 봄이 다하니 버들 꽃 떨어지네.

이 시는 1086년부터 8년 사이에 지은 것이다.

'가인박명(佳人薄命)'은 어린 승려를 노래한 七言律詩로 되어 있다.

가인어월이구익자(假人於越而救溺子)

먼 월(越)나라로부터 사람을 빌어다가 물에 빠져 있느 아이를 구하려 한다면 때가 늦어 아이를 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하는 일이 옳아도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비유.

가장집물(家藏什物)

집안의 모든 세간.

가정(家庭)

예부터 중시된 사회의 기본 단위.

漢字에서 「집」을 뜻하는 글자가 많다(宅· 安· 室· 店· 庫 ·府· 廳 등).

家는 집 지붕 밑에 돼지가 있는 모습으로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돼지와 함께 한 집에서 살았음을 意味한다 지금도 東南亞나 아마존江의 오지(奧地)에서는 그렇게 산다.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家畜 중 돼지를 第一 먼저 길렀다는 사실이다.

家는「집」을 뜻하게 되었다.가족(家族 )· 가훈(家訓)· 농가(農家)· 종가(宗家)가 있다.옛날 王이 國事를 論할 때 먼저 문무백관(文武百官)을 모아 意見을 들었는데 그것이 조회(朝會)다.朝會는 많은 臣下가 모였으므로 宮中의 넓은 마당에서 거행하곤 했는데, 그것이 조정(朝廷)이다.그러니까 廷은 王이 文武百官을 모아 政治를 論했던 王宮의 넓은 마당을 뜻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집이 딸린 마당,곧 「뜰」의 뜻이 되었다 정구(庭球)· 정원(庭園)· 정훈(庭訓)이 있다. 家庭은 한 가족이 살고 있는「집」이다 우리와 같은 血緣社會에서 그 基礎가 되는 家庭의 存在는 무척 重視되었다.그 家庭의 화목(和睦)을 위해 父母에 대한 효도(孝道),兄弟間의 우애(友愛)가 强調되었으며, 그것을 위해 個人의 修養이 重視되었다.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 家庭의 重要性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때이기도 하다.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으로,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 입장에서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말.

춘추 시대(春秋時代) 말엽, 공자(孔子:B.

C 551∼479)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實勢)인 대부(大夫) 계손자(季孫子)의 가렴 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제자들과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부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일행이 발길을 멈추고 살펴보니 길가의 풀숲에 무덤 셋이 보였고, 부인은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자비심이 많은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그 연유를 알아 보라고 했다.

자로가 부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부인, 어인 일로 그렇듯 슬피 우십니까?" 부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이윽고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이랍니다.

수년 전에 저희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더니 작년에는 남편이, 그리고 이번에는 자식까지 호랑이한테 잡아 먹혔답니다."

"그러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여기서 살면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 당하거나 못된 벼슬아치에게 재물을 빼앗기는 일은 없지요."

자로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들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것을…"

가호위호(假虎威狐)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린다는 뜻으로, 신하가 임금의 권세를 빌어 다른 신하를 괴롭힘을 말함.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먹으려 하자 여우가 말하기를, "그대는 나를 함부로 잡아먹지 못한다.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모든 짐승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게 하였으니, 그대가 나를 잡아먹으면 이는 하느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대가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앞장서 갈 것이니 그대는 내 뒤를 따르면서 보아라.

모든 짐승들이 나를 보고도 감히 달아나지 않는가를."

호랑이가 여우를 따라가니 모든 짐승들이 그들을 보고 달아났다.

호랑이는 짐승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여 달아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여우를 두려워한 것으로 잘못 알았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짐.

격양가(擊壤歌)

땅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는 말이니, 곧 태평세월을 즐겨 부르는 노래.

고성방가(高聲放歌)

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

골골무가(汨汨無暇)

일에 파묻혀 몸이 쉴 겨를이 없음.

골몰무가(汨沒無暇)

한 가지 일에 빠져 틈이 조금도 없음.

과대평가(過大評價)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하여 평가함.

관사시이불개가역엽(貫四時而不改柯易葉)

일 년 사계절 가지와 잎이 모두 싱싱하다.

사람의 변함없는 절개를 나타낼 때 쓰는 말.

관후이불가교(貫후而不可校)

돈꿰미가 섞어져서 그 돈을 헤아릴 수 없음.

돈이나 곡식이 주체할 수 없이 많음을 비유.

교목세가(喬木世家)

여러 대를 입신 출세하여 높은 지위에 있어서 나라와 기쁨과 근심 걱정을 같이 하여 온 집안.

국가(國家)

농경시대 땅의 경계선.

國은 一定한 구역(口)의 땅(一·지평선)에 사람(口·입)이 살고 있고, 그들을 保護하기 위해 武器(戈·창·군대)를 갖추고 있는 模襲이다.

재미있는 것은 甲骨文에는 창과 사람뿐이다.

그저 猛獸로부터 사람을 保護하면 足했던 것이다.

後에 定着生活로 農耕地가 必要했다.

하지만 淳朴했던 데다 肥沃한 땅이 널려 있었으므로 境界線도 必要없었는데 이때의 國자가 혹(或)이다.

後에「혹시」의 뜻으로 전용(轉用)되었으므로 땅을 뜻하는「토(土)」자를 덧붙여 역(域)자를 만들었다.

나중에 오면 慾心이 생겨 남의 땅을 넘보기 시작했다.

따라서 境界線이 必要하기는 했지만 分明하지 않아도 됐다.

그래서 四角形이 아닌 圓形에 가까웠다.

그러나 다시 그 뒤에 오면 人心이 매우 사나워져 國境線도 分明하게 그을 必要가 있었다.

그것이 현재의 國자로 완벽한 正四角形(口)模襲을 하고 있다.

이때부터는 단 한 뼘의 땅도 讓步하지 않게 되었다.

人類는 이제 農耕定着生活을 하면서 家畜도 기르게 되었다.

家는 집 밑에 돼지(豕)가 있는 模襲이다.

먼 옛날에는 사람이 돼지와 함께 한 집에서 살았음을 의미한다.

지금도 東南亞나 아마존 강의 오지(奧地)에 가보면 家畜과 함께 사는 原住民들을 볼 수 있다.

또 한가지 알 수 있는 것은 家畜 중에 돼지를 第一 먼저 길렀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漢字를 익히면 옛 人類의 삶까지 알 수 있다.

국가장흥필유정상(國家將興必有禎祥)

나라가 부흥되려면 반드시 좋은 징조가 있다.

국가혼란유충신(國家昏亂有忠臣)

나라가 혼란하게 될 때 충신이 있다.

태평성대에는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기 힘들지만 나라에 변란이 생겼을 때야 비로소 충신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말.

기화가거(奇貨可居)

진귀한 물건을 사 두었다가 훗날 큰 이익을 얻게 한다는 뜻.

곧 ① 좋은 기회를 기다려 큰 이익을 얻음.

② 훗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돌봐 주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림.

③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음.

(고사) 전국시대 말, 한(韓)나라의 큰 장사꾼인 여불위(呂不韋:?∼B.C.235)는 무역을 하러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에 갔다가 우연히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의 손자인 자초(子楚)가 볼모로서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 이 장사꾼의 머리에는 기발한 영감이 번뜩였다.

'이것이야말로 기화로다.

사 두면 훗날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 여불위는 즉시 황폐한 삼간 초가에 어렵게 살아가는 자초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귀공의 부군이신 안국군(安國君)께서 멀지 않아 소양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정빈(正嬪)인 화양부인(華陽夫人)에게는 소생이 없습니다.

그러면 귀공을 포함하여 20명의 서출(庶出) 왕자 중에서 누구를 태자로 세울까요? 솔직히 말해서 귀공은 결코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그렇소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걱정 마십시오.

소생에게는 천금(千金)이 있습니다.

그 돈으로 우선 화양부인에게 선물을 하여 환심을 사고, 또 널리 인재를 모으십시오.

소생은 귀 공의 귀국을 위해 조나라의 고관들에게 손을 쓰겠습니다.

그리로 귀공과 함께 진나라로 가서 태자로 책봉되도록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만약 일이 성사되면 그대와 함께 진나라를 다스리도록 하겠소."

여불위는 자기 자식을 회임한 조희(趙姬)라는 애첩까지 자초에게 양보하여 그를 완전히 손아귀에 넣은 뒤 재력과 능변(能辯)으로 자초를 태자로 세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자초가 왕위에 오르자[장양왕(莊襄王)] 그는 재상이 되었으며, 조희가 낳은 아들 정(政)은 훗날 시황제(始皇帝)가 되었다.

낙양지가(洛陽紙價)

낙양의 종이 값을 올린다는 말로, 책이 호평 속에 아주 잘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말하며 '낙양지귀(洛陽紙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진서> "문원전"에 나온다.

육조시대 진나라에 좌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재질이 빼어나 일단 붓을 들면 장엄하고 미려한 시를 청산유수처럼 써 내려 갔다.

좌사는 파란만장 했던 촉나라의 성도, 오나라의 전업, 위나라의 업이 정립해서 흥망성쇠를 되풀이한 역사를 노래로써 읊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침 낙양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을 기화로 이 회심의 대작을 "삼도부"라는 제목 하에 착수하였다.

그는 집안에도 들에도 종이와 붓을 놓고 불현듯 시구가 떠오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글을 썼다.

그렇게 하기를 10년간 하여 완성하였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는 궁리 끝에 그 당시 박학하기로 이름이 난 황포밀에게 서문을 부탁하기로 했다.

황포밀은 좌사의 글을 읽어보는 순간 절로 감탄을 하며 그 자리에서 기쁜 마음으로 서문을 써 주었다.

얼마 후 그 당시 유명한 시인 장화가 우연히 이 시를 읽게 되었다.

장화는 웅대한 구상과 화려한 환상, 그리고 유려한 필치에 감탄을 금치 못해 이렇게 외쳤다.

"이 시인은 반고와 장형의 경지를 넘어섰구나!" "삼도부"는 장화의 격찬이 있은 이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글을 다투어 베껴 갔다.

그 당시는 아직 인쇄가 발달하지 못했던 때였으므로 사본용으로 쓰는 종이가 수없이 팔려 낙양의 종이 값이 마구 뛰어오르게 될 정도였다.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서진(西晋)의 문학자 좌사(左思)가 제도부(齊都賦)와 삼도부(三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洛陽) 사람들이 너도나도 베꼈기 때문에 낙양의 종이가 모자라 비싸진 고사에서 유래.

저서가 많이 팔리는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낙양지귀

난상가란(卵上加卵)

알 위에다 알을 포갠다는 뜻으로, 정성이 지극하면 감천(感天)함.

[고사] 옛날에 한 벼슬아치가 귀양을 가게 되었다.

아내가 "언제쯤 돌아오실까요?"하고 묻자 죄인은 "살아선 못 돌아올 것 같소.

혹, 알 위에 알을 포갤 수 있다면 몰라도‥‥"하고 대답을 흐린 채 집을 떠났다.

아내는 그날부터 밤낮없이 달걀 두 개를 소반 위에 놓고서 천지 신명에게 "제발 달걀이 포개지게 해주소서"하고 축원(祝願)하며 달걀을 포개다가 떨어지면 애통하곤 했다.

어느 날 밤 임금이 미행(微行)을 하다가 축원하는 소리를 들었다.

곧 신하를 시켜 곡절을 알아본 임금은 그 여인의 정성을 가상히 여겨 죄인을 풀어 주었다.

[출전]《성수패설(醒睡稗說)》

남가일몽(南柯一夢)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곧, ① 덧없는 한때의 꿈.

②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고사) 당(唐)나라 9대의 황제인 덕종(德宗:780∼804년)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淳于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 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 태수를 제수(除授) 받고 부임했다.

남가군(南柯郡)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간의 치적을 인정 받아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대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주] 제수(除授) : 천거(薦擧)의 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임금이 직접 벼슬을 시킴.

남가지몽(南柯之夢)

남쪽 가지 밑에서 꾼 한 꿈.

일생과 부귀영화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남혼여가(男婚女嫁)

아들은 장가를 들고, 딸은 시집을 감.

내자가추(來者可追)

이미 지나간 일은 어찌할 수 없으나 미래의 일은 조심하여 지금까지와 같은 과실(過失)을 범(犯)하지 않을 수 있다.

노마십가(駑馬十駕)

노마는 걸음이 느린 말, 곧 재능이 떨어지는 자.

재주가 없는 사람도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에 미칠 수 있음의 비유.

재능이 없는 자도 노력하면 수재(秀才)와 어깨를 겨룰 수 있음의 비유.

농가성진(弄假成眞)

장난 삼아 하다가 참말이 됨.

누세통가(累世通家)

삼국지에서 공융이 이응에게 한 말로, 수 세대에 걸쳐서 집안끼리 알았던 사이라는 뜻.

지난날 공자와 노자가 예(禮)에 대하여 논한 일을 떠올린 것이다.

다수가결(多數可決)

찬성이 많은 쪽으로 결정함.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말로 형상화된 도(可道)는 늘 그러한 원래의 도(常道)가 아니다.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정처가 없으며 의식주가 곤란하다.

두 가지 좋은 일을 아울러 가지려 함.

(고사) 옛날 齊 나라 사람이 혼기에 찬 딸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두 곳에서 동시에 혼담이 들어왔다.

동쪽에 사는 남자는 집안이 넉넉하지만 얼굴이 못 생겼고, 서쪽에 사는 남자는 얼굴은 잘 생겼으나 집안이 가난 했다.

그 부모가 딸에게 말하기를 "네가 동쪽에 가고 싶으면 왼손을 들고, 서쪽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 손을 들라."

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딸은 두 손을 다 들었다.

이에 부모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밥은 동쪽에 가 먹고, 잠은 서쪽에서 자면 되잖아요."

하였다.

동가지구(東家之丘)

①자기 마을에 현인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음.

②남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도리어 경멸함.

③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없음.

[고사]공자의 이웃에 사는 한 어리석은 사람이 공자가 성인이라는 것도, 이름이 구(丘)라는 것도 모르고 늘 '동쪽 집(東家) 구(丘)씨'라 불렀다는 옛일에서 온 말.

동가홍상(同價紅裳)

같은 값이면 다홍 치마.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 하여 책을 읽음.

우리나라의 가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높고 파란 하늘에 황금 빛 들판, 여기에다 불타는 단풍까지 곁들여 온통 원색의 장관을 이룬다.

이를 두고 시인 묵객들은 천고마비니 征雁紅葉(정안홍엽-기러기 날고 단풍이 물듦), 菊傲水碧(국오수벽-국화가 뽐내고 물이 비취처럼 푸름)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다.

가을은 낭만의 계절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가을은 쾌적한 날씨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각종 문화행사가 이때에 집중돼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다면 가을은 문화의 계절이기도 한 셈이다.

책 읽기에도 여간 좋지 않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가을은 등화가친의 계절이라고 했다.

당(唐)의 문호 한유(韓愈)에게는 아들 창(昶-字는 符)이 있었다.

그는 아들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이라는 詩를 썼다.

時秋積雨霽(시추적우제) - 바야흐로 가을, 장마도 걷히고 新凉入郊墟(신량입교허) - 마을과 들판에 서늘한 바람 燈火稍可親(등화초가친) - 이제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簡編可舒卷(간편가서권) - 책을 펴 보는 것도 좋으리.

그렇다 우리 조상들은 이 때가 되면 희미한 등불을 가까이 두고 귀뚜라미 소리를 벗삼아 책을 읽곤 했다.

이젠 전등이 대낮같이 밝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전등가친(電燈可親)의 계절이라 해야 겠다.

만가(輓歌)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

(출전) (晉書)〈禮志篇〉,《古詩源》(고사)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즉위하기 직전의 일이다.

한나라 창업 삼걸(三傑) 중 한 사람인 한신(韓信)에게 급습 당한 제왕(齊王) 전횡(田橫)은 그 분풀이로 유방이 보낸 세객(說客) 역이기를 삶아 죽여 버렸다.

이윽고 고조가 즉위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전횡은 500여 명의 부하와 함께 발해만(渤海灣)에 있는 지금의 전횡도(田橫島)로 도망갔다.

그 후 고조는 전횡이 반란을 일으킬까 우려하여 그를 용서하고 불렀다.

전횡은 일단 부름에 응했으나 낙양을 30여리 앞두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포로가 되어 고조를 섬기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전횡의 목을 고조에게 전한 고조에게 전한 두 부하를 비롯해서 섬에 남아있던 500여 명도 전횡의 절개를 경모 하여 모두 순사(殉死)했다.

그 무렵, 전횡의 문인(門人)이 해로가, 호리곡(蒿里曲)이라는 두 장(章)의 상가(喪歌)를 지었는데 전횡이 자결하자 그 죽음을 애도하여 노래했다.

부추 잎의 이슬은 어찌 그리 쉬이 마르는가 [해上朝露何易晞(해상조로하이희)] 이슬은 말라도 내일 아침 다시 내리지만 [露晞明朝更復落(노희명조갱부락)] 사람은 죽어 한 번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나 [人死一去何時歸(인사일거하시귀)] -해로가- 호리는 뉘 집터인고 [蒿里誰家地(호리수가지)] 혼백을 거둘 땐 현 우가 없네 [聚斂魂魄無賢愚(취렴혼백무현우)] 귀백은 어찌 그리 재촉하는고 [鬼伯一何相催促(귀백일하상최촉)] 인명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못하네 [人命不得少지주(인명부득소지주)] -호리곡- 이 두 상가는 그 후 7대 황제인 무제(武帝:B.C.141∼87) 때에 악부(樂府) 총재인 이연년(李延年)에 의해 작곡되어 해로가는 공경귀인(公卿貴人), 호리곡은 사부서인(士夫庶人)의 장례 시에 상여꾼이 부르는 '만가'로 정해졌다고 한다.

[주] 해로가 : 인생은 부추 잎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음을 노래한 것.

호리 : 산동성(山東省)의 태산(泰山) 남쪽에 있는 산 이름.

옛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넋이 이곳으로 온다고 믿어 왔음.

만추가경(晩秋佳景)

늦가을의 아름다운 경치.

망신망가(忘身忘家)

몸과 집안을 잊다.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

말로 형상화된 이름은 늘 그러한 실제의 이름이 아니다.

무가내하(無可奈何)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음.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

가(可)도 불가(不可)도 없다.

원래는 '행동에 중용(中庸)을 지켜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나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논어> '미자(微子)'편, <후한서> '마원전(馬援傳)'에 나온다.

무사가답(無辭可答)

사리가 떳떳하여 대꾸할 말이 없음.

무소가관(無所可觀)

볼 만한 곳이 없음.

무일가관(無一可觀)

족히 볼만한 것이 하나도 없음.

무일가취(無一可取)

취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음.

문불가점(文不可點)

문장이 이루어진 후에 한 점도 가필할 필요가 없다.

-잡편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

문 박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일컫는 말.

(출 전) [사기(史記) 급정열전(汲鄭列傳)] (고사) 한(漢)나라 때 급암과 정당시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들은 둘 다 관직에 임명되어 탁월한 능력을 보이곤 했으나 험난한 생애를 보내었다.

그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문전에 많은 손들이 모였으나 좌천되면 뚝 끊기곤 했던 것이다.

이것을 보고 사마천은 한탄하면서 한무제 때의 적공(翟公)이야기를 기록했다.

적공이 정위가 되자 문 밖에는 손님들로 가득 찼으나 그가 관직에서 밀려나자 문 밖에 새 그물을 쳐 놓을 만큼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門外可設雀羅).

그러나 적공이 다시 부임하게 되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에 그는 세력에 아첨하고자 하는 자들을 비꼬아 이렇게 말했다.

"한번 죽고 삶에 사귐의 정을 알고 한번 가난하고 부유함에 사귐의 태도를 알며 한번 귀하고 천하게 됨에 사귐의 정을 볼 수 있다."

백가쟁명(百家爭鳴)

여러 사람이 서로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

백년가약(百年佳約)

젊은 남녀가 한평생을 함께 살자는 언약.

결혼을 말함.

법불가우존(法不可于尊)

법은 존귀한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삼국지에서 조조가 출정하면서 그의 말이 보리밭을 밟게 되자, 조조는 군법에 따라 자신의 목을 베려 하였다.

그러자 곽가가 조조에게 말하길, '춘추에 이르길 법은 존귀한 데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했으니, 승상께서는 크게 자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고 하였다.

병가상사(兵家常事)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흔한 일이므로, 지더라도 낙담하지 말라는 말.

봉가지마(봉駕之馬)

수레를 전복시키는 사나운 말.

항상 지켜야 할 도리를 좇지 아니하는 영웅.

부가정독배궐마익(婦家情篤拜厥馬익)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집 말뚝에도 절한다.

불가구약(不可救藥)

일이 실패하여 수습할 길이 없음.

불가구힐(不可究詰)

내용이 복잡하여 진상을 밝힐 수가 없다.

불가명장(不可名狀)

아주 형용할 수가 없음.

불가불념(不可不念)

마음에 새겨 두지 않으면 안될 생각.

불가사야(弗可赦也)

용서할 수 없다는 말로서 천벌을 받음.

불가사의(不可思議)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함.

불가이유(不可理唯)

함부로 이치에 어긋나는 짓을 함.

불가지해(不可知解)

알 수가 없음.

불가초서(不暇草書)

한자 초서를 쓸 때는 획과 점을 일일이 쓰지 않으나 이것마저 쓸 틈이 없을 정도로 대단히 바쁨을 말함.

불가항력(不可抗力)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

불가형언(不可形言)

형용하여 말할 수 없는 것.

불고가사(不顧家事)

집안 일을 돌보지 아니함.

불문가지(不問可知)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음.

불언가상(不言可想)

말이 없어도 능히 상상 할 수가 있음.

비옥가봉(比屋可封)

요·순 때에는 사람들이 모두 착하고 태평하여 집집마다 표창할 만하였다는 뜻.

빈천지교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가난하고 어려운 때 사귄 친구는 언제까지나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

빈천지교(貧賤之交)

사가(仕加)

벼슬의 자급을 올리는데 있어 달수가 차야만 올라가는 것을 「사가」라 하고, 나라에서 은상(恩賞)이 있어 주는 것을 「별가」라 하며, 부형의 벼슬이 자궁(資窮)인 통훈대부(通訓大夫)가 되어 친히 은전을 받지 못하므로 그 자제(子弟)에게 대신 주는 것을 「대가」라 한다.

☞ 상촌휘언(象村彙言)

사가망처(徙家忘妻)

이사할 때 자기의 아내를 잊고 두고 간다는 뜻으로 모든 사물을 잘 잊는다는 뜻.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 노래란 뜻.

곧 ① 사방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②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③ 사방으로부터 비난 받음의 비유.

[출전]《史記》〈項羽本紀〉(고사)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진평(陳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심리 작전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라는 준마가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時不利兮 不逝(시불리혜추불서)]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 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삼간초가(三間草家)

규모가 작은 집을 뜻함.

삼일유가(三日遊街)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사흘 동안 좌주와 선진자와 친척을 방문하는 일.

상가지구(喪家之狗)

상가집의 주인 잃은 개.

여위고 지칠대로 지친 수척한 사람을 비유한 말.

또는 궁상맞은 초라한 모습으로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얻어 먹을 것만 찾아 다니는 사람.

(고사)「孔子가 魯나라의 재상으로 국정개혁(國定改革)에 실패한 후 편력(遍歷)의 여행을 하였다.

공자가 鄭나라에 갔을 때「정나라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자공에게 일러 말하기를 "동문에 사람이 있는데 그의 이마는 요임금과 같고 그의 목은 고요와 같고 그의 어깨는 자산과 같다.

그러나 허리 아래로는 우왕에 미치지 못하기를 세 치요, 지친 모습은 상가의 개와 같았다."

자공이 공자에게 이실직고하니 공자가 기뻐 웃으면서 말하기를 "모습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러나 상가의 개와 같다는 말은 그렇도다.

그렇도다. "라고 대답 하였다.

(鄭人或謂子貢曰 東門有人한대"其 似堯요 其項類皐陶요 其肩類子産이라.

然自腰以下는 不及禹三寸이요 壘壘若喪家之拘라. "子貢以實告孔子하니 孔子가 欣然笑曰"形狀未也라.

而似喪家之拘는 然哉로다.

然哉로다."

)」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

서불가진신(書不可盡信)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다 믿어서는 안 된다.

석가모니(釋迦牟尼)

싯다르타.

불교의 교주.

석가모니(釋迦牟尼)는 범어(梵語) S´akya(샤캬)와 muni(무니)의 중국식(지나식) 음역으로 [샤캬족 出身의 聖人]이라는 뜻이다.

불교의 교조로 석가·석가문(釋迦文)·석존(釋尊)·세존(世尊)·석가세존(釋迦世尊)이라고도 한다.

지금부터 2천5백40년 전,현재 인도와 네팔 접경지대 성주 슈도다나왕(淨飯王)의 태자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났다.

성은 고타마(Gotama),이름은 싯다르타(悉達多·Siddhartha)였다.

어려 서부터 총명했고 사색을 즐겼다.

게다가 어떤 선인이 그의 관상을 보고 [세속(俗世)에서는 훌륭한 왕,출가(出家)하면 부다(佛陀·Buddha)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었으므로, 부왕은 그의 출가를 막기 위해 서둘러 결혼 시켜(19세) 라훌라(羅羅·Rahula)라는 아들까지 낳게 했지만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인간의 기본적 고뇌 때문에 마침내 출가한다(29세).

삭발하고 사문에 든 그는 걸식과 함께 여러 스승을 사사(師事)하면서 6년 동안 고행하고 우루빌라그라마의 보리(提樹)밑에서 길상초(吉祥草)를 깔고 앉아 명상한 지 7일만에 대오각성(大悟覺醒)하고 성도(成道)했다.

부처(佛陀)가 된 것이다.

그 후 장장 45년에 걸쳐 포교활동을 하다 80세에 열반(涅槃)에 들었다.

제자들이 왕중왕(王中王)의 예로 다비(茶毘)를 행하자 사리(舍利)가 무려 여덟 말 여덟 되나 나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가 태어난 룸비니동산,성도한 부다가야,최초로 설법(說法)한 마가다야,입적(入寂)한 쿠시나가라를 불교의 4대성지(聖地)로 삼고 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라는 뜻.

불행이 거듭 생김의 비유.

수가은사(隨駕隱士)

산 속에 숨어서 세상을 떠나 살고 있는 듯하지만, 뜻은 벼슬에 있음을 비웃는 말.

수신제가(修身齊家)

자기 몸을 닦고 집안을 다스림.

수심가지인심난지(水深可知人心難知)

물의 깊이는 알 수 있으나 사람의 속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뜻.

수왈불가(誰曰不可)

옳지 않다고 할 사람이 없음.

시불가실(時不可失)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

[고사]상서(尙書) 태서(泰誓)편은 주(周)나라 서백후의 아들인 발(發)이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정벌함에 임하여 군사들을 모아 놓고 훈시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이 소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의 명을 받았으니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큰 땅에도 제사를 지냈으며, 그대 무리들을 거느리고 하늘의 벌하심을 이루려는 것이오.

하늘은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시니,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그대로 따르시오.

그대들은 바라건대 나 한 사람을 도와 영원히 온 세상을 맑게 하시오(爾尙弼予一人, 永淸四海).

때가 되었으니 잃어서는 아니 되오(時哉弗可失)!" 기원전 222년, 서백후 문왕(文王)의 아들인 발(發)은 정식으로 제위에 올라 중국 땅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주나라 무왕(武王)인 것이다.

[時不可失(Must not lose the opportunity)]이란 '한 번 밖에 오지 않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뜻이며, [물실호기(勿失好機)]와 비슷한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부(富)와 명예는 보통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기회를 놓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의 몫이었다.

[출전]《尙書》<태서편(泰誓篇)>

시재현상불가불발(矢在弦上不可不發)

화살이 시위 위에 놓인 이상 날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뜻.

한때 원소의 모사로 조조를 비방하는 글을 썼던 진림이, 조조 앞에 포박되어 처형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즉 자신은 화살이니 쏘는 사람이 쏘는 대로 날아갈 뿐이라는 뜻이다.

아가사창(我歌査唱)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뜻으로,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도리어 책망을 함.

아유양화내구선가(我有良貨乃求善價)

내 물건이 좋아야 좋은 값을 받을 수 있다.

언감가장불감(言甘家醬不甘)

'말 단 집 장이 달지 않다'는 뜻으로, 집 안에 잔말이 많으면 살림이 잘 안 된다는 말.

여가탈입(閭家奪入)

권세있는 사람들이 여염집을 빼앗음.

여무가론(餘無可論)

의견이 대충 결정되어 왈가왈부할 여지가 없음.

연로가봉(年勞加俸)

오래 일하는 사람에게 봉급을 더 주는 것.

연조비가사(燕趙悲歌士)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와 조나라에 세상을 비관하여 슬픈 노래를 부른 사람이 많았다는 뜻으로 우국의 선비를 이르는 말.

예불가폐(禮不可廢)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나 예의는 지켜야 한다는 말.

오가소립(吾家所立)

자기가 여러 가지를 돌봐주어 출세를 시켜준 사람을 가리키는 말.

옥상가옥(屋上架屋)

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다는 말.

헛수고를 하거나 필요 없는 일을 거듭함을 뜻한다.

(고사) 동진의 유중초가 수도 建康(건강·지금의 남경)의 아름다움을 읊은 시 揚都賦(양도부)를 지었다.그는 먼저 이 시를 친척이자 재상인 유양에게 보였다 유양은 친척간의 정리 때문이었던지 턱없이 치켜세워 주었다.『양도부는 좌태충이 지은 三都賦(삼도부)와 비교해보아도 遜色(손색)이 없군』이렇게 되어 사람들이 너도 나도 유중초의 양도부를 베껴가는 바람에 나라안의 종이가 동이 날 지경이 되었다.이런 한심한 作態(작태)에 太傅(태부) 사안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歎息(탄식)했다.

『양도부란 시는 마치 「지붕 밑에 지붕을 걸쳐놓은 것(屋下架屋)」같은 시야. 삼도부를 그대로 베끼다 시피 한 건데』그 뒤 상당한 세월이 흘러 남북조시대에 나온 顔氏家訓(안씨가훈)이란 책에도 이런 대목이 보인다.

『魏晋(위진) 이래의 책들은 내용이 중복되고 남의 흉내만 내고 있어「지붕 밑에 지붕을 만들고」 평상 위에 평상을 만든 것 같다』그러니까 처음에는 지붕 밑에 지붕을 걸쳐놓은 것이었는데 어느 때부터인지「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 것(옥상가옥)」으로 바뀌어 쓰이고 있는 것이다.

옥상가옥(屋上架屋)

마루 위에 마루를 다시 까는 것과 같다는 말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

옥하가옥(屋下架屋)

독창성 없이 전 시대인의 것을 모방만 함을 경계.

(고사) 魏는 蜀과 吳를 멸하여 천하를 통일한 후 국호를 晉이라 고치고 낙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낙양에 유중(庾仲)이라는 시인이 양도(揚都-南京)의 아름다운 풍경과 융성함을 노래한 시를 지었다.

양도는 오 나라의 도읍지였는데 이미 멸망한 후지만 양자강을 앞에 두고 뒤로는 우람한 산이 있어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번화한 도시로서 강남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도시를 노래한 것으로 양도부(揚都賦)를 지었는데 그 표현이 특히 절묘하다는 평판을 들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이 시를 베끼어가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껑충 뛰었다.

그런데, 사태부(謝太傅)라는 고관이 있어 그 시를 보더니,"무얼 그런 따위 시를 가지고 떠드는가.

그런 시는 마치 지붕 밑에다 또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같이 같은 것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라며 비웃었다.

(世說)

왈가왈부(曰可曰否)

어떤 일에 대하여 옳다 틀리다 하고 말함.

왈시왈비(曰是曰非)

욕불가종(欲不可從)

사람의 욕정은 한량이 없으므로 절재하지 않으면 재화를 받는다는 뜻.

용가방(龍哥榜)

사람을 조롱하는 벽보(壁報).

조선조 연산군 때, 무뢰배들이 사람을 조롱하는 벽보를 종루(鐘樓)에 붙이고, 그를 용가(龍哥)방이라고 했었다.

☞ 연산군일기 卷47 8年壬戌 11月 甲戌

유자가교(儒疵可敎)

젊은이는 가르칠 만하다는 것으로, 열심히 공부하려는 아이를 칭찬하는 말이다.

(고사) 한(漢)나라 장량(張良)의 조상은 3대째 한(漢)나라의 재상을 지냈으나 6국이 진(秦)나라에 의해 멸망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랐다.

장량은 본래 회양(淮陽) 지방에서 예제(禮制)를 배우다가 조국인 한나라를 위해 복수하고자 가산을 정리하고 회양에서 힘을 쓰는 장사 한 사람을 사서 진시황을 죽이라고 시켰다.

때마침 진시황제가 박랑사(博浪沙)를 순시하러 왔다.

장사는 120근이나 되는 철퇴로 시황제를 공격하려다가 호위병을 치고는 붙들려 결국 장량의 지시를 받았다고 자백하였다.

그러자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고, 장량은 이름을 바꾸고 하비(下丕)로 가서 기회를 엿보기로 했다.

어느 날 장량이 하비교로 산보를 갔는데, 한 노인이 장량의 맞은 편에서 걸어오더니 일부러 신발 한 짝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고서 주워 달라고 했다.

장량은 내심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범상치 않은 노인임을 알고는 신발을 주워다가 주었다.

그러자 노인은 장량에게 발을 내밀어 신발을 신기라고 하였다.

장량은 무릎을 꿇고는 신을 신겨 주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노인은 빙그레 웃더니 말없이 가버렸다.

장량은 다리 위에서 노인의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그 노인이 다시 돌아와서 장량에게 '유자가교' 라는 말을 하고는 닷새 후 아침에 다리 위에서 자신을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훌쩍 가버렸다.

장량은 갑작스러운 노인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로부터 닷새가 지난 후 장량이 날이 밝자마자 다리 위로 나가니 노인은 벌써 나와 기다리면서 몹시 화를 냈다.

그리고는 내일 다시 나오라고 말하고 가버렸다.

그 다음날 장량은 새벽에 다리로 나왔다.

그러나 노인이 먼저 나와 기다렸다.

사흘째 되는 날에도 장량보다 먼저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장량에게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며 욕을 하곤 그에게 닷새 후에 다시 나오라고 했다.

장량은 노인이 말한 날 캄캄한 새벽에 다리 위로 갔는데 노인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가 한참 동안 기다리자 노인이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는 기뻐하며 장량에게 책 한 권을 주고는 10년 후에 제북(齊北)의 곡성산(穀城山) 아래로 와서 그를 찾으라고 하였다.

그 책은 강태공의 병법이었으며 노인은 바로 황석공(黃石公)이었다.

그 후 장량은 그 책을 공부하여 유방의 모사가 되었고, 결국 한나라를 개국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응접불가(應接不可)

응접할 겨를이 없다는 말이다.

이 성어는 본래 산수가 너무 수려하여 일일이 다 구경할 틈이 없음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오늘날에는 어떤 일이 잇따라 일어나 마음을 쓸 수 없는 경우를 뜻한다.

이 말은 <세설신어(世說新語)>"언어(言語)"편에 나온다.

진(晉)나라 때 이왕(二王)이라고 하면 서예가로 명성이 높았던 왕희지(王羲之)와 왕헌지(王獻之;字는 子敬)를 말한다.

왕헌지는 회계산(會稽山) 북쪽 지방에 위치한 산음(山陰)을 여행 하다가 그곳의 수려한 경치를 보고 이렇게 감탄의 말을 했다.

"산음의 길을 걸어 보면 산천의 경계가 서로 영발(映發)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돌릴 겨를을 주지 않는다.

만약 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그 회포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게 한다."

의기실가(宜其室家)

온 가족이 화목함.

이력가인(以力假人)

무력이나 병력 또는 지력이나 위력을 가지고 어떠한 일을 하는데 어진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는 것처럼 본심을 가장하는 일.

이몽가몽(耳夢假夢)

꿈처럼 정신이 가물가물한 모양.

이수가액(以手加額)

기뻐하며 축하한다는 말.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은 죽고 집은 폐허가 됨.

일가지언(一家之言)

學者들 가운데는 누가 보아도 깜짝 놀랄 정도로 독자적인 학문체계를 이룬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을 '一家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 말은《史記》의 太史公自序(저자인 史馬遷이 쓴 序文)에 나온다.

'略以拾遺補藝 成一家之言'(빠진 것을 모으고 보충해 간략하게 만들어 일가의 학설을 이루었다).

宮刑을 당한 치욕을 참고 空前의 傑作인《史記》를 남긴 그로서는 당연한 自負心이다.

역시 유명한 史書인《漢書》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고금의 변화에 통달해 일가를 이루었다).

따지고 보면 著者가 한 사람인 책을 읽는 것은 모두 '一家之言'을 따르는 셈이다.

각자가 一家를 이루는 一家見을 갖도록 열심히 노력하되 학문적 맹종(盲從)은 '學說의 對立'을 가져온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일무가관(一無可觀)

하나도 볼 것이 없다.

일무가취(一無可取)

하나도 취할 것이 없다.

일불가급(日不暇給)

날마다 바빠서 겨를이 없음.

일언가파(一言可破)

한 마디 말로도 곧 판단이 될 수 있음.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뜻.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기의 언행이 전후(前後) 모순(矛盾)되어 일치하지 않음.

☞한국의 민속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 가운데 하나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국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문화적 국수주의 경향은 어떤 민속학자들보다도 탈춤 연구가들, 특히 이 가운데에서도 주로 민중 시각에서 탈춤을 논의해 온 학자들에게서 한층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들은 외국의 것이나 그것과 관련된 것들이라면 무엇이나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구한말의 쇄국주의자들처럼 그들은 문학이나 문화 연구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채 오직 필사적으로 우리의 것에만 매달리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문화적 국수주의자는 마치 우물 안의 갇힌 개구리와 같이 지나치게 국수적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렵다.

자수성가(自手成家)

스스로의 힘으로 일가(一家)를 이룸.

곧,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을 이룩하거나 큰 일을 이룸.

장도가측(葬陶家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죽어서도 술을 가까이 하고 싶어서 한 소원.

(고사) 오(吳) 나라의 애주가 정천평(鄭天平)이 죽을 때 유언하기를, 장차 무덤의 흙을 파서 술병을 만들 수 있게끔, 질그릇 굽는 집 옆에 묻어달라고 하였다.

재가무일(在家無日)

바삐 돌아 다니느라고 집에 있는 날이 없음.

재가출가(在家出家)

중이 아니면서도 세속을 벗어나는 일.

재자가인(才子佳人)

재주 있는 젊은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선한 일을 쌓는 집안은 반드시 경사스런 일이 있다.

적수성가(赤手成家)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 맨손으로 가산을 이룸.

전가지보(傳家之寶)

조상 때부터 대대로 내려 오는 보물.

전가통신(錢可通神)

돈은 귀신하고도 통할 수 있다.

곧 돈의 힘은 일의 결과를 좌지우지한다는 뜻.

(고사) 당(唐)나라때 장연상(張延賞)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책도 웬만큼 읽었고 행정 능력도 있어 벼슬길은 순탄했다.

그가 하남(河南) 부윤(府尹)으로 있을 때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커다란 의혹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데 황제의 친척을 비롯해서 전직 고관과 지방 유지들이 연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장연상은 사건이 사건인 만큼 혐의자를 모두 잡아들이도록 명령하려 하자 누군가가 말렸다.

그러나 장연상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임금의 녹(綠)을 먹는 자는 임금의 근심을 감당해야 한다(食君之綠 擔君之憂·식군지록 담군지우)는 말이 있소.

황제의 친척이니 거물급 소물급 할 것 없이 모두 엄하게 다스릴 것이오."

명령이 내려진 다음날 부윤의 책상위에 쪽지 한 장이 날아들었다.

'삼만금을 바치오니 더 이상 이 사건을 추궁치 말아달다'는 내용이었다.

장연상은 서슴없이 쪽지를 마룻바닥에 팽개쳤다.

그 다음날 또 장연상의 책상위에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는데 '십만금'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돈을 은밀히 전해 받은 장연상은 사건을 흐지부지 끝내 버렸다.

뒷날 어떤 사람의 추궁에 그는 말했다.

"십만금은 神하고도 통할 수 있는(錢可通神) 액수인데 세상에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받아 들이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나를 죽였을 것이네."

장연상은 너무나 자신감이 넘치게 말을 했다.

본래 이 성어는 유전능사귀추마(有錢能使鬼推磨)와 통한다.

돈만 있으면 귀신을 불러서라도 능히 연자맷돌을 돌리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뇌물에 대한 차원 높은 풍자다.

[출전]《唐書》

전거가감(前車可鑑)

앞 수레는 뒤 수레의 거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본래 앞 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뒤 수레가경계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말로, 전인(前人)의 실패를 보고 후인(後人)은 이를 경계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사) 한나라 문제(文帝) 때에 가의(賈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총명하고 문학적 재능이 탁월한 작가로서 약관의 나이에 문제의 부름을 받아 박사가 되었다.

그 당시는 안으로는 제왕(諸王)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고, 밖으로는 흉노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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