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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족과 은나라

작성자
Lv.1 휘수(輝手)
작성
03.12.01 14:13
조회
1,587

은왕조는 동이족

고대 은나라에 대하여

은나라를 건국한 탕왕湯王의 시조인 [설]이 순임금(제순유우)과 하나라의 우禹 임금때 벼슬을 하고 상商이라는 곳의 제후로 봉해진 가계 내력과 도읍의 이름을 따라 상商나라 라고도 하며, 고대 은나라를 포함하여 현재의 중국 땅에 있던 옛 중원 일부의 역사는 삼황(태호복희. 염제신농.황제헌원),  오제(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도당. 제순유우), 하夏·은殷·주周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일설에는 은나라 이전의 삼황오제와 하나라를 전설적인 왕조로 취급하여 신화 정도로만 보는 견해도 있으나 동이족의 뿌리를 찾아보면 이들의 역사는 모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주나라까지의 중원 왕조의 흐름을 서술식으로 체계화 하면 다음과 같다(중원의 왕조는 하나라 이전까지는 세습 왕조가 아니라 덕있는 사람이 대통을 이어 받았다).

①배달국倍達國의 5대 환웅 태우의太虞儀(즉위 BC 3512)는 1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다의발多儀發은 대통을 이어 6대 환웅이 되고 그중 막내인 태호복희는 중원으로 진출, 현 하남성의 진陳에 도읍하여 문명을 개척하였다.

②배달국 8대 환웅 안부련安夫連(즉위 BC 3240)의 신하로서 소전少典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강수姜水(섬서성 기산현岐山縣)에서 군軍을 감독하던 직책에 있었다. 소전은 웅씨熊氏족의 지류로서 배달국에서 대대로 우가牛加의 직책으로 주곡主穀을 관장하던 고시씨의 먼 후손이라고 한다. 이 소전의 아들이 염제신농이며 중원의 남방으로 진출하여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게 된다.

③염제신농의 아버지인 소전의 후손 지파중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공손의 후손중에 황제헌원黃帝軒轅(BC 2692~2592)이 나왔다. 황제헌원은 배달국의 14대 자오지慈烏支 환웅(치우천왕蚩尤天王 이라고도 함)과의 수차례에 걸쳐 전쟁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뿌리를 캐보면 결국 같은 동족간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④삼황三皇이후의 오제五帝는 그 근원이 모두 삼황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다음과 같다.

   ▲ 소호금천 : BC 2598 ~ BC 2514

   ▲ 전욱고양 : BC 2513 ~ BC 2436 ; 황제헌원의 손자

   ▲ 제곡고신 : BC 2435 ~ BC 2365 ; 황제훤원의 증손자

   ▲ 제요도당 : BC 2357 ~ BC 2258 ; 요임금이라고도 함.  요임금 25년에 단군 왕검 조선 건국.

   ▲ 제순유우 : BC 2255 ~ BC 2208 ; 순임금이라고도 함.

⑤순임금의 뒤를 이어 순임금때 치수에 공이 큰 우禹가 제위를 이어 받아 하夏나라를 세웠다. 이때부터 하나라(BC 2183 ~ BC 1752)는 왕조를 세습하기 시작하여 17대에 걸쳐 약 400여년 존속하였다.

⑥하나라의 마지막 왕은 폭군으로 이름 높은 걸桀인데, 걸왕의 폭정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인물이 성탕成湯이라는 제후였다. 성탕의 조상은 [설]이며 [설]은 황제헌원의 증손자인 [제곡고신]의 아들이다. [설]은 순임금과 하나라 우임금때 상商이라는 곳의 제후로 봉해졌고 그의 후손인 성탕成湯이 걸왕을 내몰고 단군조선 13대 흘달屹達의 조력을 받아 걸왕을 축출하고 은殷(商)나라를 건국하였다. 은나라는 BC 1600년경에 창건하여 BC 1050년까지 약 600여년간 존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實證 한단고기]가 인용한 <단군세기>나 <규원사화>에 의하면 13대 단군 갑오 16년(BC 1767년)에 은나라 탕왕湯王의 하나라 정벌 기록이 있어 건국연대 및 멸망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⑦오제五帝중 제곡고신의 여러 부인들중 강원姜嫄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이 부인의 아들이 후직后稷이며, 후직의 후손들이 중원의 서쪽으로 진출하여 융적戎狄(견이를 일컫는 말이며 서쪽에 살았다고 하여 서이西夷라고도 함)과 섞여 살았다고 한다. 후직의 후손중에 은나라 말기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있었으며 고공단보의 손자가 서백 창이고, 서백 창의 아들이 단군조선의 조력으로 은나라의 마지막 왕 폭군 주왕紂王을 몰아내고 주周나라를 건국한 무왕武王이다.

▒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중원에 왕조를 세웠던 삼황오제나 하.은.주 모두 근본은 동이족이며 환국桓國을 계승한 환웅시대의 배달국이 그 뿌리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주나라 무왕 이후 중원의 동이족이 어떻게  잔존하여 분포되어 왔는지, 지나족(차이나China 즉, 화족華族)과 동이족東夷族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이며 인체상의 어떤 요소로 판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본인도 깊은 지식이 없어 고대사와 종족분포에 전문적인 역량이 높은 분들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더구나 역사 이래 동이족들중 상당수가 저 넓은 대륙에서 오랜 기간동안 여러 경로를 거쳐서 지속적으로 혼혈이 되어 왔고 문화적으로 흡수되어 왔다면 무슨 근거로 민족을 구별해 낼 수 있겠는가. 쓸데 없는 고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요즈음 북한을 탈출하는 조선족 여인들 중에는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중국인과 결혼하거나 몸을 파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 참으로 마음이 착잡할 뿐이다.

은왕조 연표

왕대

         왕명

왕통

서력

              비고

1대

성탕(成湯)帝

태조

BC 1600

태정, 외병, 중임 3명의 아들을 둠

2대

외병제(外丙帝)

태자 태정의 동생

  

태정 병사

3대

중임제(中壬帝)

외병제의 동생

  

외병제가 일찍 세상을 뜨자 대통을 이어 받음

4대

태갑제(太甲帝)

태정의 아들

  

탕왕의 직계 장손으로서 태종(太宗)이라고도 함.

5대

옥정제(沃丁帝)

태자

  

  

6대

태경제(太庚帝)

옥정제의 동생

  

  

7대

소갑제(小甲帝)

태자

  

  

8대

옹기제(雍己帝)

소갑제의 동생

  

  

9대

태무제(太戊帝)

옹기제의 동생

  

중종(中宗)이라고도 함

10대

중정제(中丁帝)

태자

  

  

11대

외임제(外壬帝)

중정제의 동생

  

  

12대

하단갑제(河亶甲帝)

외임제의 동생

  

  

13대

조을제(祖乙帝)

태자

  

  

14대

조신제(祖辛帝)

태자

  

  

15대

옥갑제(沃甲帝)

조신제의 동생

  

  

16대

조정제(祖丁帝)

조신제의 아들

  

  

17대

남경제(南庚帝)

옥갑제의 아들

  

조정제의 사촌동생

18대

양갑제(陽甲帝)

조정제의 아들

  

  

19대

반경제(盤庚帝)

양갑제의 동생

  

  

20대

소신제(小辛帝)

반경제의 동생

  

  

21대

소을제(小乙帝)

소신제의 동생

  

  

22대

무정제(武丁帝)

태자

  

고종(高宗)이라고도 함

23대

조기제(祖己帝)

태자

  

  

24대

조경제(祖庚帝)

조기제의 동생

  

  

25대

갑제(甲帝)

조경제의 동생

  

  

26대

늠신제(凜辛帝)

태자

  

  

27대

경정제(庚丁帝)

늠신제의 동생

  

  

28대

무을제(武乙帝)

태자

  

  

29대

태정제(太丁帝)

태자

  

  

30대

을제(乙帝)

태자

  

☞비간(比干) : 태정제의 둘째                       아들

31대

주제(紂帝)

태자

BC 1046

을제의 둘째 아들. 紂王으로 낮추어 불려짐

은나라를 건국한 성탕의 뿌리

성탕成湯의 시조는 [설]이라고 한다. 은나라의 시조인 설의 어머니는 간적이다. 그녀는 유융씨 부족의 딸이며 제곡고신(오제五帝중의 한사람)의 둘째 부인이었다. 간적 등 세 사람이 함께 목욕을 갔다가 제비가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이를 받아 삼켜 잉태하여 낳은 아이가 바로 설이다. 설은 장성하여 하나라 우의 치수산업을 도와서 공을 세웠다. 순이 설에게 "백관이 화친하지 않고 오품(五品)이 화목하지 못하니, 그대가 사도를 맡아서 오교(五敎)를 정중히 전파하고, 백성들을 너그럽게 감화시켜주시오"라고 명하였다. 순은 설에게 상(商)을 봉지로 내리고 자씨(子氏)라는 성을 하사하였다. 설은 요, 순, 우 시기에 등용되어 백관을 위해서 일했으므로, 그의 공적은 백관들 사이에 칭송되었고, 백관들은 안정을 얻게 되었다.

배달국으로부터[설]까지의 계보

배달국의 고시씨高矢氏 --->소전少典(염제신농의 아버지이며 배달국 고시씨의 후손)  --->  공손씨公孫氏(소전의 후손)  ---> 황제헌원(공손씨의 후손) --->  전욱고양(五帝중 한사람. 황제헌원의 손자) ---> 제곡고신(오제五帝중의한사람.황제헌원의증손자) ---> 설(제곡고신의아들)

[설]에서 탕왕까지의 계보

설 ---> 소명(昭明) ---> 상토(相土) ---> 창약(昌若) ---> 조어(曹어) ---> 명(冥) ---> 진(振) ---> 미(微) ---> 보정(報丁) ---> 보을(報乙) ---> 보병(報丙) ---> 주임(主壬) ---> 주계(主癸) ---> 성탕(成湯)

은왕조 계보 세부 설명

1대 성탕(成湯)

    하나라의 걸왕이 포악한 정치를 하며 주색에 빠져 지내자, 제후국인 곤오씨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탕이 군대를 일으키고 제후들을 인솔하니 이윤(탕의 신하)도 함께 따라나갔고, 탕은 직접 도끼를 들고 곤오를 정벌하고 나서 걸왕까지 정벌하고자 하였다. 탕은 탕서(湯誓)를 지었는데, 그 때 탕이 "나는 무용(武勇)이 뛰어나다"라고 하였으므로, 그를 무왕(武王)이라고 칭했다.걸왕이 유융의 허(虛)에서 패하여 명조로 달아나자 하군이 지리멸렬해졌다. 탕이 삼종(당시 걸왕에게 충성하던 제후국)을 정벌하여 많은 보물들을 획득하자 탕의 신하인 의백과 중백이 보전(寶典)편을 지었다. 탕이 하를 정벌한 다음, 하의 신사(神社)를 옮기려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게 되자 하사(夏社)편을 지었다. 이윤이 바른 정치를 공포하자 제후들이 모두 복종하였고, 드디어 탕이 천자의 지위에 올라 전국을 평정하였다.탕이 역법을 개정하고, 복색을 바꾸어 백색을 숭상하였으며 조회를 낮에 하기로 결정하였다. 탕왕이 걸왕을 몰아내고 [은왕조]를 연  것은 고조선 13대  단군 [흘달] 때 였다.

▒ 2대 외병제(外丙帝)

    탕이 붕어했을 때 태자(太子) 태정(太丁)이 즉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태정의 동생인 외병이 즉위하니, 이 이가 바로 외병제이다.

▒ 3대 중임제(中壬帝)

    외병제가 즉위한 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외병제의 동생 중임이 즉위하여 중임제가 되었다.

▒ 4대 태갑제(太甲帝), 태종(太宗)

    중임제가 즉위한 지 4년 만에 붕어하자 이윤(탕의 신하)은 태정의 아들 태갑을 즉위 시켰다. 태갑은 성탕의 직계 장손으로 태갑제가 되었다. 태갑제가 즉위한 지 3년이 되니 포악해져 탕의 법령을 지키지 않고 도덕을 문란하게 하자, 이윤이 그를 동궁(桐宮)으로 내쫒고 3년 동안 섭정하면서 제후들의 조회를 받았다. 태갑제가 3년 동안 동궁에 머물면서 자신의 과오를 회개하고 훌륭한 인물이 되자, 이윤은 태갑제를 영접하여 그에게 정권을 되돌려주었다. 태갑제가 덕을 수양하니 제후들이 모두 은에 복종하게 되었고, 백성들도 평안하게 되었다. 이에 이윤이 태갑제의 공적을 칭송하기 위해서 태갑훈 3편을 지었고, 태갑제를 기리어 태종(太宗)이라고 칭했다.

▒ 5대 옥정제(沃丁帝)

    태종이 붕어하자 아들 옥정이 즉위하였다.

▒ 6대 태경제(太庚帝)

    옥정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태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태경제이다.

▒ 7대 소갑제(小甲帝)

    태경제가 붕어하자 아들 소갑이 즉위하였다.

▒ 8대 옹기제(雍己帝)

    소갑제가 붕어하자 동생 옹기가 즉우하니, 그가 바로 옹기제이다. 은 왕조의 국세가 쇠해지자 제후들 가운데 조회에 참석하지 않는 이가 생겼다.

▒ 9대 태무제(太戊帝), 중종(中宗)

    옹기제가 붕어하고 동생 태무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태무제이다. 태무제는 즉위하여 이척을 재상으로 삼았다. 박에서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자라기 시작하더니 하룻밤 사이에 한아름이 넘게커지는 불길한 일이 일어나서, 태무제가 두려워서 이척에게 그 영문을 물어보았다. 이척이 대답하기를 "신이 듣자니 요사스러움도 덕행을 이기지 못한다고 하옵니다. 임금께서 행하신 정치에 잘못은 없었는지요? 임금께서는 덕행의 수양에 힘쓰십시오" 라고 아뢰었다. 태무제가 이척의 말대로 하자 불길한 징조인 뽕나무가 말라서 죽었다. 이척은 무함에게 모든 공을 돌려서 그럴 칭찬하였다. 무함은 왕가의 사무를 잘 처리하였으며 함애와 태무를 지었다. 태무제가 태묘(太廟)에서 이척을 칭송하면서 그를 신하 이상으로 대우하려고 하자 이척이 사양하고 원명을 지었다. 태무제의 대에 와서 은나라가 다시 흥하게 되어 제후들이 은나라에 복종하게 되었기에 태무제를 중종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 10대 중정제(中丁帝)

    중종이 붕어하자 아들 중정이 즉위하였다. 중정제는 오로 천도하였다. 중정제 이후로 적자계승제가 폐지되고 형제와 형제의 아들로 제위를 계승하니, 제위계승 문제로 서로 다투게 되어 이후 구세(九世)동안 혼란이 계속되었다. 이에 제후들이 조회하러 오지 않게 되었다.

▒ 11대 외임제(外壬帝)

    중정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외임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외임제이다.

▒ 12대 하단갑제(河亶甲帝)

    외임제가 죽자 동생 하단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하단갑제이다. 그는 상(相)으로 천도하였다. 하단갑제 시기에 은의 정치는 다시 쇠락해졌다.

▒ 13대 조을제(祖乙帝)

    하단갑제가 붕어하자 아들 조을이 즉위했는데, 조을제가 즉위하자 은 왕조는 다시 부흥하였다. 형(刑)으로 천도하였다.

▒ 14대 조신제(祖辛帝)

    조을제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조신이 즉위하였다.

▒ 15대 옥갑제(沃甲帝)

    조신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 옥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옥갑제이다.

▒ 16대 조정제(祖丁帝)

    옥갑제가 붕어하자 옥갑의 형 조신의 아들이 조정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조정제이다.

▒ 17대 남경제(南庚帝)

    조정제가 세상을 떠나자 옥갑제의 아들인 사촌동생 남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남경제이다.

▒ 18대 양갑제(陽甲帝)

    남경제가 붕어하자 조정제의 아들인 양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양갑제이다. 양갑제 때에 이르러 은나라가 다시 쇠퇴하였다.

▒ 19대 반경제(盤庚帝)

    양갑제가 붕어하자 동생인 반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반경제이다. 반경제 시기에 은 왕조는 이미 하북에 도읍했는데, 반경제는 다시 하남으로 천도하여 성탕의 옛 도읍에 거주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은 왕조는 이미 다섯 처례나 천도하면서 정해진 거처가 없었기에 은의 백성들은 모두 걱정하고 원망하며 또다시이동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반경제가 제후와 대신들을 타일렀다. "예전 고후이셨던 성탕과 그대들의 선조들께서 함께 힘을 모아 천하를 평정하셨는데, 그분들이 제정한 법도는 따를 수 있는 것이었소. 그런데 지금 선왕의 법도를 저버리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덕정을 이룰 수 있겠소?" 이에 하남으로 옮기어 박을 정돈하고 탕의 법령을 시행하니 백성들이 편안하게 되었고, 은 왕조의 국운이 다시 흥하게 되었다. 제후들이 모두 입조하게 된 것은 반경제가 성탕의 덕정을 따랏기 때문이었다.

▒ 20대 소신제(小辛帝)

    반경제가 붕어하자 동생 소신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소신제이다. 그러나 소신제가 즉위한 후 은나라가 다시 쇠락해지자 백성들은 반경을 사모하며 반경 3편을 지었다.

▒ 21대 소을제(小乙帝)

    소신제가 세상을 떠나자 동생인 소을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소을제이다.

▒ 22대 무정제(武丁帝), 고종(高宗)

    소을제가 붕어하자 아들 무정이 즉위했는데, 무정제는 부열을 등용하고, 정사를 바로잡으며 은덕을 베푸니 천하의 백성들이 모두 즐거워 하고, 은나라 국운이 다시 흥하게 되었다.

▒ 23대 조기제(祖己帝)

    무정제가 붕어하자 아들 조기가 즉위하였다. 조기는 무정제가 꿩이 정(鼎)의 손잡이에 날아들어 울었던 일을 계기로 삼아 덕정을 베푼 일을 기리기 위하여 그를 고종이라고 칭하고 고종융일과 고종지훈을 지었다.

▒ 24대 조경제(祖庚帝)

    조기제가 붕어하자 동생 조경이 즉위하였다.

▒ 25대 갑제(甲帝)

    조경제가 붕어하여 동생 조갑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갑제이다. 갑제는 음란한 행동을 일삼았으므로 은왕조가 다시 쇠하게 되었다.

▒ 26대 늠신제(凜辛帝)

    갑제가 세상을 떠나니 아들 늠신이 즉위하였다.

▒ 27대 경정제(庚丁帝)

    늠신제가 붕어하자 동생 경정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경정제이다.

▒ 28대 무을제(武乙帝)

    경정제가 죽자 아들 무을이 즉위했는데, 이때 은은 다시 박을 떠나서 하북으로 천도하였다. 무을제는 무도하여 우상을 만들고 이를 천신(天神)이라고 불렀다. 그는 우상과 도박을 하면서 옆 사람에게 심판을 보게 하고는 천신이 지면 천신을 모욕하였다. 또한 가죽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 피를 가득 채우고 높이 매달아 활로 쏘고서 이를 사천(射天)이라고 명명하였다. 무을제는 황하와 위수 사이를 수렵을 갔다가 갑자기 천둥이 치자 그 소리에 놀라서 죽고 말았다.

▒ 29대 태정제(太丁帝)

    무을제가 죽자 아들 태정이 즉위하였다.

▒ 30대 을제(乙帝)

    태정제가 붕어하자 아들 을이 즉위하였다. 을제가 즉위하자 은 왕조는 더욱 쇠퇴해졌다.

▒ 31대 신제(辛帝), 주제(紂帝)

    을제의 큰아들은 계(啓)였으나, 계의 모친이 정후(正后)가 아니었기 때문에 태자가 되지 못했다. 작은 아들은 이름이 신이었 는데, 그의 모친이 을제의 정후였기 때문에 그가 태자가 되었다. 을제가 붕어하자 아들 신이 즉위하였으니, 그가 바로 신제이고, 세상에서는 그를 '주紂'라고 부른다.

   주제는 타고난 바탕이 총명하고 말재간이 뛰었났을 뿐만 아니라 일처리가 신속하며, 힘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서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지혜는 신하의 간언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으며, 말재주는 자신의 허물을 교묘하게 감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신하들에게 과시하여 천하에 그의 명성을 드높이려고 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 못하다가 여겼다. 술과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했으며, 여자를 좋아하였다. 특히 달기를 총해하여 그녀의 말이면 무엇이든 들어주었다. 그는 사연에게 음탕한 악곡을 작곡하게 하고, 북리(기녀원)에서 추는 것 같은 저속한 춤과 음탕하고 퇴폐적인 가락을 새로 만들도록 하였다.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여 녹대(조가성에 쌓은 높은 단)를 돈으로 채우고 거교(지명)를 곡식으로 채우게 하였다. 게다가 여기 저기서 개와 말, 기이한 애완무을 수집하여 궁실을 가득 메웠다. 사구(지명)의 원대를 크게 확장하여 여러가지 야수와 새들을 잡아다가 이곳에 풀어놓았다. 주紂는 귀신도 우습게 알았다. 또한 사구에 수많은 악공들과 광대들을 불러들이고 술로 연못을 만들고,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처럼 고기를 매달아 놓고서 벌거벗은 남녀들이 그안에서 서로 쫓아다니게 하면서 밤이새도록 술을 마시며 놓았다.

   주가 포악해지자 제후들이 그를 떠났고, 주(周)의 무왕(武王)에 의해 정벌당하고, 스스로 불 속으로 뒤어들어 자살하였다. 무왕은 달기를 처형하고, 주紂에 의해 갇힌 기자箕子를 풀어줬으며 주의 아들 녹보무경에게 봉토를 나누어주어 주어 은나라의 제사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이에 주나라의 무왕이 천자가 되었고, 후세 사람들은 군주를 제(帝)라고 부르지 않고 왕(王)으로 낮추어 불렀다.

은왕조가 동이족이었다는 고증및 사례

중국의 문헌에서 찾은 동이족에 대한 고증

▒ 중국민족의 조상은 바로 동이족이다. <중국 고사변>

▒ 삼황오제의 8대 임금들은 숙신(조선의 옛이름)에서 나왔다. <산해경>

▒ 순임금은 동이족이다. <맹자(孟子) 8편>

    또 순임금의 선조인 황제도 동이족이 되는 것이다.

▒ 태호복희의 성은 風이며, 고대 동이족이다. <'98년판 중국상해출판사, 역대제왕록>

▒ 은나라는 이(동이족)의 나라이고, 주나라는 화(華 : 중국 漢족)의 나라이다. <사마천의 사기>

▒ 은나라는 동이족이다. <고사변, 현재 홍콩대학의 임혜상교수, 대만대학의 서량지교수>

▒ 중국 고대사는 모두 동이족의 역사다. <중국 북경대 고고학과 엄문명 주임고수 증언>

이일봉님의 [실증 한단고기]를 통한 인용

고대사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치우천왕蚩尤天王과 황제헌원黃帝軒轅간의 [탁록의 싸움]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혹자는 치우천왕이 승리했다고 하고 혹자는 황제헌원이 승리했다고한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누가 승리했느냐가 아니라 둘다 동이족이었고 치우와 헌원의 싸움도 결국 같은 동이족 간의 전쟁이었다는 사실이다. 현재 분단되어 있는 한반도의 정세를 보라. 남북이 서로 대치하여 서로가 정통임을 주장하고 있는사실을 감안한다면 배달국의 14대 치우천왕과 배달국 지류의 후손인 황제 헌원간의 오랜 싸움도 동족간의 주권 다툼이었음을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은왕조가 의심할 바 없는  동이족이었음을 이일봉님의 저서 [實證한단고기]를 통해 부분적으로 인용해 본다.

▒ 환웅이 신시에 도읍하고 배달국을 세울 무렵, 중국의 시조라 일컫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역사도 시작되었다. 삼황이란 처음 중원의 일부를 차지하고 나라를 세운 세명의 제왕을 말하며, 오제란 그 뒤에 일어난 다섯 명의 제왕을 가리킨다. 그런데 뒤에 일어난 오제는 삼황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삼황의 뿌리만 밝히면 중국의 시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 있다.

▒ 삼황은 태호복희太호伏羲. 염제신농炎帝神農. 황제헌원黃帝軒轅을 말하고, 오제는 소호금천少호金天. 전욱고양(전頊高陽). 제곡고신帝곡高辛. 제요도당帝堯陶唐(요임금). 제순유우帝舜有虞(순임금) 등을 말하는데, 그마지막 순임금 시대 이후에 차례로 일어난 왕조가 하夏, 은殷, 주周이다.

▒ 중국인들은 이들 삼황오제를 자신들의 시조라 하여 뒤에 일어난 모든 왕조의 뿌리를 이들에게서 찾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삼황오제 가운데 대부분이 동이족이며, 이 사실은 중국의 일부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고사변古史辯>은 전7권으로 된 방대한 문헌으로, 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책이다. 바로 이 책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호, 제준帝俊, 제곡帝곡, 제순帝舜, 소호少호, 그리고 설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如太호之卽帝俊帝곡帝舜少호之卽설 近人기得明證

▒ 삼황오제 시대가 끝나고 우禹가 세운 하夏나라도 멸망한 뒤 들어선 나라가 은殷이다. 일명 상商나라라고도 하는데 은나라는 저 유명한 갑골문甲骨文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사변>은 고대 중국의 문헌과 근래에 발굴된 유물등에 근거하여 은나라가 동이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 특히 은나라는 그 시조가 알에서 깨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를 갖고 있는데, 고구려.신라.가야의 예에서 보듯이 난생설화는 동이족의 공통된 특징이다.  중국의 정사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사마천의 <史記>도 삼황오제는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제黃帝로부터 순임금.우禹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일한 성姓이며, 그들이 세운 나라의 호칭만 달랐을 뿐이다.』   自黃帝至舜禹 皆同姓而其國號

▒ 이와같은 기록들을 종합하면 결국 고대 동이족들이 중원으로 들어가 큰 세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역사도 시작되었다는 말이 된다. 당시 환국과 배달국, 그리고 그 뒤의 단군조선에서 갈려져 나간 구환족九桓族, 즉 구이九夷들은 중원 대륙의 대부분을 활동무대로 하였는데, 이와 관련하여 중국의 학자 서량지徐亮之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요녕성)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산동성)가 그 중심지역이다.』

▒ 중국대륙의 대부분을 동이족이 차지하고 살았으며 중국인들이 시조인 삼황오제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은 중국의 학자들 스스로 수많은 자료와 문헌, 유물 등을 검토한 끝에 내린 결론일 것이며, 저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자신들의 뿌리를 뒤엎는 혁명적인 주장을 할 리는 만무하다.

▒ 결국 고대 중국의 역사는 곧 동이족의 여러 지류가 중원으로 흘러들어가 서로 얽히고 설키는 과정에서 성립된 왕조들의 역사에 지나지 않으며, 지금도 넓은 대륙에 산재한 56개의 소수민족은 그 잔영임에 틀림없다.

▒ 수많은 중국의 사서들이 고조선의 실체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동이족을 한낱 오랑캐로 비하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저들의 열등의식을 감추기 위한 발버둥에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식민사관.반도사관.사대사관.을 계승하고 있는 한국의 사학자들이다. 남의 것을 떠받들기 좋아하는 이들이 역사의 전부인양 착각하고 있는 중국의 여러사서에는 비록 왜곡된 형태로나마 엄연히 동이족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음에도, 환단桓檀의 역사는 물론 그 이후 고조선의 역사조차 철저히 무시되어 고대 동이족의 역사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서공중에 붕 떠있는 실정이다. 하다 못해 고구려의 역사만 제대로 파고 들어가 보아도 한국 사학계의역사 인식이 어느정도로 한심한 수준인가를 알 수 있다.

▒ 현조玄鳥의 알에서 태어난 [설]의 후손인 성탕, 즉 하나라의 폭군 걸왕을 몰아내고 은나라를 세운 탕왕은 성씨를 자子라고 하는데, 자子는 12간지 중에서 북방北方을 의미하고 북방은 검정색을 의미하니 이또한 현조玄鳥와 동일한 의미이다. <고사변古史辯>에서 중국의 학자 양관楊寬은 '현조는 은나라 사람과 동일한 조상신이다'라고 하였고또 같은 책 상편에서는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뿌리가 같다'라고 하였다.

▒ 거북의 등뼈에 새겨진 은나라 시대의 갑골문甲骨文 중에는 단군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녹도문鹿圖文과 유사한 글자가 상당수 있어서 당시 은나라가 동이족의 문화권 내에 있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특히 발견된 갑골문에는 주변의 다른 나라를 길방吉方, 토방土方, 인방人方, 귀방鬼方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가운데 인방은 조선을 가리키는 명칭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 발행한 [역사지도집]에도 고조선의 핵심 강역이었던 산동성에 인방人方을 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갑골문은 은나라가 귀방鬼方을 정벌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후한서>뿐만 아니라 <단군세기>에도 기록되어  있어 두 문화 사이의 밀접한 관련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은나라에서 사용한 갑골문자는 후에 漢字의 모태가 되었기 때문에 한자 역시 동이족에 의해서 만들어진 문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갑골문을 연구한 중국의 학자들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는 사실이다.

三皇五帝는 모두 동이족이다 !

삼황三皇이 동이족이었음을 이일봉님의 [實證한단고기]내용을 요약하여 아래에 수록한다. 삼황이후에 등장하는 오제五帝는 그 근원을 모두 삼황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생략한다.

▒ 태호복희

▣배달국 5대 태우의太虞儀환웅은 아들을 12명 두었는데 장자는 다의발多儀發환웅(6대 환웅)이며 태호복희는 막내     아들로 태어나 배달국에서 우사雨師라는 관직에 있다가 중원으로 들어 갔다. 우사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역易을 만     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환역桓易 이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를 복희팔괘伏羲八卦 혹은 선천팔괘先天八卦라 한다.     결국 고대 동양의 음양오행설은 환단의 문화에서 발생한 것이다.

▣복희의 성은 풍風씨이다. 이것은 당시 동이족의 아홉갈래인 견이, 방이, 적이, 백이, 우이, 황이, 현이, 양이, 풍이風     夷중 풍족風族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복희의 탄생에 관해서 <사기>와 <중국고대신화>는 다음과같이 말하고     있다.

▣복희의 어머니 화서씨華胥氏가 어느 날 동쪽에 있는 울창한 숲속으로 놀러 가게 되었다. 그녀는 뇌택雷澤이라는 연     못가에서 노닐다가 우연히 대인大人의 발자국을 밟게 되었는데, 그후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나면서 아이를갖게 되었     으니 이가 곧 복희이다.

▣여기서 뇌택이라는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뇌雷는 팔괘중에서 진괘震卦를 말하며 진괘는 팔괘중 동방과 동     북방에 배치된 괘이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은 복희가 배달국에서 출생했음을 강력하게 암시하고 있다. 뇌택에서 대     인大人의 발자국을 밟고 난뒤 복희를 낳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大人은 환웅을 의미한다.

▣복희에게는 부인 혹은 누이동생이라고 하는 여와女와가 있었다. 여와는 황토를 반죽하여 인간을 만들었다고 전     하는데, 이름이나 행적이 이스라엘의 민족신인 여호와와 매우 유사하다. 복희는 동방을 상징하는 나무(木)의 덕     으로 제왕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동방의 제왕이라고 한다.

▒ 염제신농炎帝神農

▣염제신농의 아버지는 소전少典이라고 하며 배달국의 8대 안부련 환웅의 명으로 강수姜水라는 곳에서 군사를 감     독하는 직책에 있었다. 신농의 아버지 소전은 소호금천(5제중의 한사람)과 함께 고시씨(고시례)의 방계 지류이다.

▣고시씨는 배달국에서 대대로 우가牛加의 직책에 있으면서 농사를 관장하였다. 신농은 조상인 고시씨로부터 내려     온 농사와 관련된 집안의 내력으로 인해 농사에 능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며, 이러한 신농이 아버지 소전을 따라     중원으로 들어가 농사를 가르치고 의약을 만들어 의농醫農의 시조로 불리게 되었다.

▣<사기> 삼황본기三皇本紀에『염제炎帝는 인신우수人神牛首의 형상으로 강수姜水근처에서 성장했으므로 강씨     라 했다.』는 기록에서 신농이 소의 머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뿌리가 배달국의 우가牛加, 즉 고시씨에 있음     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 황제헌원黃帝軒轅

▣황제黃帝는 염제신농의 아버지인 소전少典의 자손이고 성은 공손公孫이며 이름은 헌원軒轅이다.즉,소전은 배달    국에서 갈려져 나간 사람으로서 염제신농의 아버지이고, 그러한 소전에서 다시 갈라져 나간 후손중의 한 사람이 공    손이며, 그 공손씨의 후손이 바로 황제헌원이다.

▣황제헌원과 배달국의 14대 환웅인 치우천왕간에는 수차례의 전쟁이 있었으며 <사기>를 비롯한 중국의 문헌에는 황     제헌원이 치우천왕을 죽이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이 자신들의 뿌리와 관련하여  황제헌     원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어서이며 이는 왜곡된 주장이다. 사실은 전쟁에서 패하여 치우천왕에게 귀의한 뒤 청구     국(배달국 14대 환웅인 치우천왕에 이르러 중원을 개척하며 옮겨와 나라이름을 청구국이라 함) 고유의 천부인 3개     에서 유래한 신선도의 길을 걸었다. 이로부터 헌원에서 노자로 이어지는 도교의 근원이 배달국에서 유래되었다.

▣<사기>는 헌원의 호가 유웅씨有熊氏라 하여 그가 웅씨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이는 그의 먼 조상인    소전이 배달국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헌원이 자신의 군대를 '운사雲師'라고 부른 것은 그가 배달국    의 후손임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그리고 그를 '황제黃帝'라 일걷는 것은 그가 오행五行에서 중앙에 해당하    는 흙(土)의 기운으로 제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제五帝중 전욱고양(BC 2513~2436)은 황제헌원의 손자이며, 제곡고신(BC 2435~2365)은 증손자이다. 제곡고    신의 여러 부인중에 간적簡狄이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간적이 [설]을 낳고 설은 순.우 임금때 벼슬을 하고 상商이라    는 곳의 제후로 봉해졌다.[설]의 후손인 성탕成湯은 하나라 말기에 폭군 걸왕을 몰아내고 상商(殷)나라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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