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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殷)왕조

작성자
Personacon 검우(劒友)
작성
03.01.26 12:26
조회
1,176

◑ 은(殷)왕조

중국 고대의 왕조(?~BC 1100?).

수도의 이름을 따라 상(商)이라고도 한다. 하(夏)·은(殷)·주(周) 3대의 왕조가 잇달아 중국 본토를 지배하였다고 하나, 하왕조는 고전(古典)에만 기록되어 있을 뿐, 전설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이에 대하여 은왕조는 20세기에 들어서 그 수도에 해당하는 은허(殷墟)의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서, 적어도 그 후기에는 당시의 문화세계였던 화북(華北)에 군림하였던 실재의 왕조였음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은나라는 중국 최고(最古)의 역사적 왕조라고 할 수가 있다.

<성립과 계보>

전설에 따르면 하왕조는 중국 전토를 휩쓸었던 대홍수를 잘 다스렸고, 전국을 9개 주(州)로 나누어 지방 통치 조직을 완성한 우(禹)의 자손을 왕으로 섬겼다. 그로부터 17대째가 되는 걸왕(桀王)은 전제정치로 인하여 중국 백성의 지지를 잃었다. 은왕조의 개조(開祖)인 탕왕(湯王:天乙)은 백성의 요망에 따라 걸왕을 쳐서 멸하고 은왕조를 창설하였다고 한다. 이 탕왕으로부터 29대의 왕이 잇달아 중국을 통치하였다. 이 왕조의 계도(系圖)는 한대(漢代)에 사마 천(司馬遷)이 고대의 계보에 따라 <사기(史記)-은보기(殷本紀)> 속에 기술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허난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 샤오툰촌[小屯村]의 은허, 즉 은나라 수도의 유적으로 알려진 장소에서 갑골문자를 새겨 놓은 귀갑(龜甲)과 우골(牛骨)이 다량 발견되었다. 최근 학자들의 연구에 따라 갑골문자는 은왕조의 점술사가 은나라 선조의 제사를 점쳤던 것이었으며, 여기에 나타나는 여러 왕의 이름과 그 세계(世系)는 <사기>에 전하는 은왕조의 계보와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문화>

은왕조는 개조인 탕왕 이래로 여러 차례 도읍을 옮겼으나 20대의 왕 반경(盤庚)이 은허로 옮긴 이후 31대의 주왕(紂王:帝辛)이 주나라 무왕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은허에 정주하였다. 최근 고고학적 발굴이 진전됨에 따라 각지에서 은대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고고학자는 전기·중기·후기로 구분한다. 전기의 유적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허난성 얼리터우[二里頭]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이보다 앞선 허난성 신석기시대 룽산문화[龍山文化]의 영향을 받아, 은대의 최전기(最前期) 문화를 대표하고 있다. 이 유적들은 허난성 중부에서 산시성[陝西省]에 이르는 황허강[黃河] 연변의 황토지대에 분포되어 있다. 중기의 유적 분포지역은 이보다 확대되어 있으며 그 대표는 허난성 정저우[鄭州]의 유적이다. 후기에 이르면 서쪽은 산시성 치산현[岐山縣]에서 동쪽은 산둥성[山東省]의 지난[濟南], 북쪽은 허베이성[河北省]·산시성[山西省]에서 화이허강[淮河] 유역에 걸치는 화북평원의 거의 전부와 양쯔강[揚子江] 중류에까지 확대되었다. 요컨대 은허시대의 은문화는 이 광대한 지역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은왕조는 약 1,700 m의 토벽으로 둘러싸인 정저우를 중심으로 하여 대도시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성문 밖에서는 청동기·도기(陶器)·골기(骨器)를 만드는 장인의 공장과 주거가 발굴되었다. 반경이 은허로 천도한 이후, 귀갑과 우골에 새겨진 점복문(占卜文), 즉 갑골문자의 기사(記事)와 궁전·묘능의 유적과 유물에 의하여 여러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은의 여러 왕은 타이항산맥[太行山脈]에서 동방으로 흘러가는 위안허강[洹河]의 굴곡진 지점에, 하안(河岸)의 단애(斷崖)를 북·동쪽으로 업고, 서쪽으로는 도랑을 파서 북서의 유목민에 대비하는 견고한 성을 쌓았다. 샤오툰촌 북쪽의 대지 중앙에는 토단(土壇)을 쌓아 올려, 위에 종묘(宗廟)·궁전을 건축하였다. 제왕이 죽으면 그 시체는 위안허강의 북안 허우자좡[侯家莊]의 지하 13 m에 200 m2 이상의 큰 널방[墓室]을 만들고, 생전에 애용했던 거대하고 정교한 청동기를 비롯하여, 옥기(玉器)·석기 등을 껴묻거리[副葬品]로 함께 매장하였다. 호화로운 청동기는 고대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예술품이지만, 그보다도 이 널방의 안팎으로 산재해 있는 다수의 인골군(人骨群)이 고고학자를 놀라게 하였다. 이들은 소수의 시종(侍從)·시녀는 있지만 대부분은 병사(兵士)로서, 왕에게 순사(殉死)한 것이며, 그 수는 한 왕묘에 500명에서 1,000명에 달하였다. 은의 왕은 점복(占卜)으로 신의(神意)를 받아서 백성을 통치하는 종교적인 원수(元首)였다. 또한 이민족을 정복하여, 그들을 노예나 병사로 삼았던 것 같다. 이민족 가운데 북서의 고방(苦方)·토방(土方)이라 불렸던 유목민이, 은허로 옮긴 당초의 무정왕시대(武丁王時代)의 강적이었다. 그리고 서경(西境)의 산시성에 있던 주(周)민족은 제후(諸侯)로서 은왕조에 복속되어 있었다.

<멸망>

은왕조도 말기의 무을(武乙)·주왕의 시대에 이르자, 신의 은총을 받은 나머지 방자해져서 자신이 신과 똑같은 절대자라고 믿고 혹독한 전제군주로서 제후·백관·인민들에 대하여 잔혹한 압정을 가하였다. 또한 동남아시아와의 무역을 활발히 하기 위하여, 화이허강 유역의 인방(人方)이라고 하는 동이민족(東夷民族)의 국가를 정복하였다. 주왕이 전쟁에 국력을 다 써버린 틈을 타서 서방의 산시성에서 실력을 길러, 이 지방 제후의 인망을 얻고 있던 주나라의 문왕(文王)이 동진하여 화북평원으로 내려왔다. 문왕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더욱 동진하여 은나라 주왕의 대군을 목야(牧野)의 싸움에서 무찌르고 은의 수도에 입성하여, 주왕을 죽이고 은왕조에 대신하여 주왕조를 일으켰다. 무왕은 은의 왕족인 무경(武庚)을 위(衛)에 봉하여 뒤를 잇도록 하였으나, 무왕이 죽은 뒤 반란을 일으켜 성왕에게 멸망당하였다. 중국 최고(最古)의 역사적 왕조인 은왕조는 주술(呪術)이 문화의 기조를 이루었으며, 그 결과로 죽은 왕에게 1,000명의 군인을 희생시키는 등 불합리한 체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은의 문화를 받으면서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주 민족에게 패하였다

[출처:마천루]


Comment ' 6

  • 작성자
    Lv.1 波旬
    작성일
    03.03.09 13:30
    No. 1

    은왕조가 우리 민족과 같은 뿌리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듯 합니다.
    그게 사실인지요? 답글 좀 올려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미르나가
    작성일
    03.04.28 17:31
    No. 2

    같은 뿌리라기보다는 우리민족이 중국민족을 점령했다는 설이죠.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미르나가
    작성일
    03.04.28 17:33
    No. 3

    퇴마록에서 보신듯한데...솔직히 믿을만하지는 않습니다.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74 소닉
    작성일
    03.10.01 07:13
    No. 4

    음-_- 상나라 걸왕과 은나라주왕 역사상 가장유명한 폭군이져-_-
    그리고 그 유명한 미녀인 매희와 달기 이둘때문에 나라를망쳤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소닉
    작성일
    03.10.13 09:38
    No. 5

    아 또 은왕조하면 명재상 이윤이 생각나는군요 ㅋ은왕조를 세우는데 혁혁한공을세우고 후에 실정한 왕을 구금한후 정치를 바로잡은후 잘못을 뉘우친 왕을 다시 재위에올린하 훌륭히 보필해 태평성세를 이룩한고사는
    유명하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무림소녀
    작성일
    05.07.28 19:26
    No. 6

    역시 윗분말씀과 같이 걸왕과 주왕은 역사상 가장 폭군으로 유명한 사람이죠... 만화인가? 그시대때...아! 선계전봉신연의 군요..그걸보면 더 공감이 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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