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재미난 글이 왜 이리 인지도도 낮고 선작수도 적나 해서 추천글을 적습니다.
<금으로 쌓은 성> 은 중세를 배경으로 봉건 영주들이 이권과 영토를 놓고 벌이는 싸움과 그 가신, 가족, 피고용된 용병 등이 살아가는 장면을 그린 소설입니다.
일단 카테고리는 판타지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판타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파짐 지방의 영주인 페리앙의 페리노어(이하 페리)는 아스크 지방의 엘리자베스(이하 베스)에게 반해 어린 아들 자팡에게 영주대리직을 맡기고 베스를 도와 아스크 가문이 혼란한 틈을 타 반기를 든 영지의 다른 영주들을 제압해 아스크 지방을 평정합니다.
이후 여유가 생기자 자신과 베스 사이의 아들 자니그를 데리고 자신의 고향이자 근거지인 파짐을 방문하게 됩니다. 이때 동행하게 된 아스크 가의 가신들은 자니그를 페리의 뒤를 이은 페리앙의 영주로 옹위해 아스크의 동맹으로 만들자고 페리에게 말하여 페리에게 시간을 두고 관찰하여 둘 중 누구를 영주로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겠다는 언질을 얻어내지만 페리앙의 성에 도착한 뒤 자팡의 재능을 깨닫고 바로 자신의 도착을 환영하는 연회 자리에서 그냥 즉석에서 자팡에게 영주직을 줘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주직을 계승하게 된 자팡은 권위가 없었을 때 자신을 괴롭혔던 눈엣가시같은 영주들을 쓸어버리려 거병하는데...
이 소설의 무엇보다도 큰 장점은 진짜 중세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가질법한 성격과 가치관을 지닌 캐릭터들이 각자의 목적을 지니고 살아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중세시대 가치관이 어떤 것인지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소설 도중에 나오는 장면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조연급 기사가 자신의 위독한 형과 같이 어느 영지에 들려 영주의 환대를 받고 영주는 기사를 옭아매어 힘을 빌릴 속셈으로 겨울동안 기사에게 자신의 성에 머물 것을 제안하는데, 기사는 이를 부담스럽게 여겨 거절하고 여관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여관에 근접했을 때에 치료가 고통스러워 지르는 형의 비명소리를 듣고 뛰어가다 갑자기 어떤 수사가 이를 악마의 소행이라(...) 여겨 경비병을 대동해 형을 죽이려 합니다. 기사가 여관에 난입하려는 경비병에게 무슨 짓이냐 따져묻자 수사가 저 비명소리는 악마의 소행이며 기사의 형이 악마가 아님을 증명하려면 묶어서 강물에 던져놓고 하루를 기다려서 건져봐야(...) 한다고 합니다. 악마는 하루동안 숨을 쉬지 않아도 상관 없으니까 건져서 살아있으면 악마다 이거죠. 빡친 기사는 이에 자신들이 영주의 귀빈임을 밝히고, 수사는 겁먹은 경비병에 의해 즉석에서 모가지가 달아나고(...) 맙니다. 그리고 소동이 끝나고 방에 들어간 기사는 형을 고통스럽게 했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의사의 골통을 박살내 죽입니다.
중세시대의 가치관을 섬뜩할 정도로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당시 널리 퍼져 있었던 인명 경시 사상이 수사나 의사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는 장면으로 잘 표현되어 있고, 수사가 주장한 악마 판별법은 중세 초기 실제로 자주 시행되었던 시련 재판 중 물의 재판과 매우 흡사합니다.
이런 리얼한 중세 가치관을 지닌 주연급, 조연급, 심지어 엑스트라급 인물들마저 각자의 사연을 지니고 단순한 수동적 병풍이 아닌, 자신의 확고한 성격을 지닌 인물로서 움직입니다.
묘하게 현대적이거나 인성이 파괴된 듯한 가치관을 지닌 캐릭터들이 수많은 수동적 조연&엑스트라들을 병풍으로 두르고 지맘대로 종횡무진하는 소설에 질렸을 분들께는 가뭄에 단비가 될 수 있는 소설입니다.
대사가 적은 단편적인 설명문 방식의 전개인데다 많은 것을 상황을 보고 유추해내야 하는 불친절함, 심지어 당시 같은 이름을 자주 쓰는(헨리 1세 2세 3세 4세.. 등등등을 생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여기서는 주인공인 젊은 자팡과 주인공이 처음 쳐들어간 성의 성주 늙은 자팡이 특히 헷갈립니다.) 방식까지 차용되는 조금 쓸데없다 싶을 정도의 리얼리즘 등이 읽기 시작할 무렵 소설에 몰입하는 데에 방해되기는 하지만 이러한 특유의 문체에 적응만 하신다면 인물 하나하나가 생동감있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성격이 판타지인 주연들이 판타지를 하는 판타지에 질리신 분께 레알 중세물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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