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당연한 겁니다.
모든 생산물이 돈 값을 할 수는 없는 겁니다.
세상이 그래요.
그런데 내 기준에서 영화가 돈 값을 못했다고 해서
영화관에서 표값 환불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들리는 소문에는 있다고는 합니다만...)
없어요. 그게 창피한 일이고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아니까요.
사람들은 영화 같이 규모가 커다란 생산물에만 노력이 들어가고 자금이 투입 된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생각입니다. 소설에도 그만큼의 노력이 들어갑니다.
자료 수집 할 때 누가 대신 안해주고 글도 기계가 대필해서 써주는 게 아닙니다.
소설에도 영화 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거죠.
물론 당연한 이야기지만 같은 노력을 기울여도(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있죠.) 정말 이건
안 되겠다 싶은 완성도의 소설들도 있기는 합니다.
헌데 그게 당연한 겁니다.
모두가 똑같이 노력을 기울여 똑같이 좋은 글을 쓴다면 작품을 고르는 평론가도 없고
좋은 작품을 찾으려는 독자들의 노력도 없겠죠.
좋은 작품을 찾아서 얻는 성공과 실패는 온전히 독자 본인의 책임 입니다.
선택은 자신이 한 거고 거기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실패가 이어진다고 모든 소설에 실패한 소설들과 같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불합리 한 겁니다.
세상에는 명백히 좋은 소설도 있고 좋지 못한 소설도 있으니까요.
저는 문피아의 속사정을 모릅니다.
그냥 외부인이나 다름없죠.
그래도 저는 문피아가 편당 100원 먹인 게 잘 한 일이라 생각해요.
누가 제대로된 기준을 고수하지 않으면 평생 그 기준은 바닥을 길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최저 임금과 마찬가지 입니다.
최저 임금은 어디까지나 최저임금 일 뿐인데 모든 사람들이 최고 임금 처럼 인식하고 있죠.
누구나 자기 이익을 생각해서 최저 임금을 최저 임금 답게 만드는 일을 안 합니다.
최저 임금은 4600원이지만 우리는 5000원을 줄 테니 그 만큼 일을 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없다는 거죠.
대여점의 대여료 800원은 최저 임금 입니다. 아니 최저 임금만도 못하죠.
대여가 아닌 판매를 기조로 세운 문피아에 대여점 대여료를 판매 기준으로 삼아라는 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생각해보세요.
누가 옆에서 이건 재미 없는 영화다 하는데 거기에 9000원 지불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편당 100원이 아깝습니까?
그럼 본인에게 되물어 보십시오. 그 동안 작품을 고르는데 신중하지 않았다는 말이니까요.
그냥 어디 바닥에 떨어져 있는 껌딱지 줍는 것처럼 소설을 집어 왔다는 반증 입니다.
소설을 읽고 실망하고 싶지 않다면 신중하게 고르십시오. 돈 버렸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면 신중하게 선택하면 됩니다.
무료에서 했던 것처럼이 아니라 서점에서 책 고르던 것 처럼 하시면 된다는 말이죠.
좋은 글을 보는 눈이 있고 선택 할 수 있는 손가락이 있는데 왜 후회 할 선택을 합니까?
장르 소설 모두가 쓰레기 같다 라는 변명은 집어 치우십시오.
본인도 책을 계속 읽는다면 알고 있는 겁니다. 장르 소설 중에는 좋지 못한 글도 있지만 정말 좋은 소설도 있었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계속 소설을 읽는 거 아닙니까?
언젠가 또 그때와 같은 감동을 느끼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 감동에 100원의 가치도 없다고 느낀다면 제가 더 이상 할 말은 없죠.
덧- 제 말이 이상주의이기는 합니다. 장르 소설이 한국에서 쓰여진지 몇 십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편견이 존재하고 장르 소설을 심심 할 때 피는 담배 한 개피 정도 인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니까요. 그런데 담배 필 때도 자기 취향을 신경 쓰는데 왜 소설 고를 때 그걸 안 합니까? 그 정도의 노력만 기울여도 실패 확률은 엄청나게 줄어들 겁니다. 거기다 플래티넘에는 초반부를 읽어 볼 수 있게 무료 공개한 소설들도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독자에게 고를 수 있도록 밑밥을 다 깔아줬는데 그걸 활용을 못하면 그걸 쓴 작가의 책임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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