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임이 있습니다.
연민과 도덕이라는 감정이 없는 요정과 6명의 요정신들이 제국을 지배하고 인간과 늑대인간들은 요정들의 노예로 살아가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인간들에게도 신이 나타나 거대한 전쟁이 일어났고 요정들의 제국은 무너지고 6명의 요정신들도 모두 죽거나, 봉인되거나, 배신했습니다.
요정들은 몰락했지만 여전히 인간보다 오래살며 강력한 마력을 가진 종족이었고 때때로 인간들을 위협할 수 있는 음모들을 꾸몄지만, 그 때마다 무예와 살육의 신, 아즈리온이 화신을 내려보내 요정들을 모조리 쳐 죽였습니다.
그렇게 전쟁 이후 10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요정들은 또 다시 그들의 잠든 신을 깨웠고 플레이어는 아즈리온의 화신이 되어 요정들의 계획과 음모를 쳐부수고 요정신을 물리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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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게임의 주인공, 무예의 신의 아바타에 빙의하게 되는 게임빙의 소설에서 주인공의 모험과 전투, 성장, 액션, 우정, 동료애, 로맨스를 전부 빼거나 극단적으로 줄여버린 소설을 상상해보세요.
누구나 이런 의문이 생길겁니다. 그럼 무슨 내용이 남죠? 대체 그런 소설을 무슨 재미로 보죠?
‘계약직 신으로 살아가는 법’이 바로 그런 소설이고, 심지어 이 소설은 꽤 재밌습니다.
주인공이 플레이하던 게임과 그가 빙의한 세계 사이에서 가장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인물들이었습니다. 게임속의 NPC들은 그저 주어진 대사와 행동을 하는 존재들이지만 현실의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과 성격, 사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 소설은 이 차이점을 조명하는 것에 거의 모든 내용을 할애합니다.
소설이 활자 대부분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 조연들. 신과 영웅, 각 종족의 지배자들, 혹은 평범한 시민들, 세계관과 종족의 비밀등을 풀어내는 것에 쓰이고 있어요.
이런 소설을 무슨 장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네요..
게임빙의물의 탈을 쓰고 있는 판타지 배경의 드라마라고 해야 할까.
다음 내용을 기대하게 만들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방식으로 재미를 주는 일반적인 장르소설이 전혀 아닙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고 예상할 수도 없었던 TMI를 끊임없이 던져 주면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내야하는 소설입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 인물들 하나 하나가 각각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봐야 할까요. 수 많은 주인공들과 그들 각각의 단편집을 하나로 엮여낸 소설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특별한 악당도 없고 선역도 없이 모든 인물이 각자 주인공이고 하나같이 슬프거나 행복하거나 매력적인 과거와 사연, 비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가 점차 풀어지며 다른 이야기들과 얽히고 그 중에 각 종족과 신들, 세계가 가지고 있던 비밀들이 밝혀지는 과정이 너무 좋았습니다.
인물들 하나하나도 매력적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세계관 자체도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요정과 인간. 각 종족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해야할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커다란 주제의식이 있다고 해야할까? 무엇이 도덕이고 윤리인지, 뭐가 좋은 것이고 나쁜 것인지 애초에 선악이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만들더군요.
누군가에 대해 가졌던 나쁜 인상이 다른 관점에서 그를 다시 보게 하면서 바뀌게 되는 과정이라던가.. 뭐라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보면서 참 머리아프기도 했지만 재밌었습니다.
그 외의 장점을 더 적자면
소설 자체의 분위기전달력? 특히 마지막 챕터부터 엔딩까지는 그냥 텍스트일 뿐인데도 화면 속 세상이 그 너머로 전달되는 것 같았어요, 잘 쌓아진 이야기의 힘이라 해야할지.. 어벤져스같은 대규모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아이맥스로 보는 것 같은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장들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가끔씩 나오는 비유들이 아주 소름이 돋더라구요. 개인적으로 새와 바람에 대한 비유가 아주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점들을 적어볼게요.
확실히 대중성은 떨어지지 않나 싶어요.
사실상 주인공이 없는 장르소설이라.. 이런 소설을 완결까지 다 적어낸 작가님이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완결까지 읽은 저조차도 어떻게 이걸 끝까지 한 번에 다읽었지 라는 생각이 들정도니까요.
어떻게 생각하면 엄청난 수작, 혹은 대작이고
어떻게 생각하면 자기가 만든 세계를 너무 사랑한 작가가 자기 만족으로 써내린 소설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모르겠네요.
그리고 주인공의 매력이 좀 떨어지는 듯 합니다.
애초에 주인공의 활약같은 걸 신경쓰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이 매력적이기 힘든 소설이죠.
결론적으론 이런 주인공이라서 오히려 소설에 딱 맞는 한 조각이 되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다른 인물들에 비해 매력이 적은 것도 사실이에요.
작품 중, 후반부로 갈 수록 주인공의 비중 자체도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상관없는데
문제는 초반부죠. 가장 주인공 비중이 높은 챕터들인데 다른 게임 빙의 소설과는 어딘가 한참 다른 이상한 주인공, 게임과 현실의 차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피를 보는 일에 대해서 계속해서 고뇌하고 어려워하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좀 답답한 생각이 들어요.
저도 이 부분에선 대체 왜 그러나 싶기도 했고..
전반적으로 허들이 높은 소설이지만 특히 초반부가 하필 작품의 매력도 크게 느껴지지 않을 시기에 주인공까지 확실한 캐리가 안되니까 진입장벽이 더 높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많이 아쉬워요. 이렇게 까지 구매수가 적을 소설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앞 부분에서 유독 많이 떨어져나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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