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칭은 생략합니다.
마음이 심난하다. 정신이 한없이 산만해지기만 하고, 도무지 어떤 일에도 집중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럴 때면 나는 흔히 책장 가득 꽂혀 있는 무협 소설들을 꺼내 보곤 한다.
가끔은 몸이 아플 때도 꺼내 보곤 한다. 그러면 아픔이 어느 정도 가시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꺼내 보는 책은 단연 장경의 “천산검로” 이다.
" 수 불능 오여지도 " - 누가 감히 나의 칼을 더럽힐 수 있겠는가? - 라고 외치는 독안귀의 외침이 잊혀지지 않고, 늑유온의 아픔이 잊혀지지 않는다.
다음으로 많이 보는 책은 역시 장경의 “빙하탄”이다.
쾌 알려진 모 작가는 주인공의 고통과 불행이 들어있는 글은 읽지도, 쓰지도 않고 먼치킨류의 글만 읽고 쓴다고 항변을 하지만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주인공의 아픔을, 고통을, 인내를 향수 할 수 있는 “천산검로“ 같은 작품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내가 무협을 계속 읽고, 사랑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사실 장경의 글들은 무수히 읽기를 반복하고 있다.
가끔은 임준욱의 작품들(농품답정록, 촌검무인 등)도 읽는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가족 생각이 절로 나며, 쳐졌던 어깨에 불끈 힘이 솟는다.
또 어떤 때는 송진용의 글들을 읽는다. (몽검마도, 비정소옥, 풍운제일보)
메말랐던 감정을 촉촉이 적셔주며 가슴속을 격류로 흐르게 한다.
금강의 글들(발해의 혼, 위대한 후예, 풍운고월조천하, 제왕천하)도 읽곤 한다. 무협 소설을 읽는 맛을 다시금 알게 해준다.
조철산, 운곡, 춘야연, 한수오, 좌백, 용대운, 설봉, 고명윤, 무악 등등. 이들이야말로 내가 무협을 여전히 일상생활의 하나로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이유이다.
신진작가들이 이 글을 본다면 섭섭한 마음이 들겠지만 90년대 후반 도서출판 뫼로 등단한 일련의 작가들, 2000년 이후 송진용, 임준욱, 운곡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신간을 손꼽아 기다리는 작가는 한 명도 없다. (최근에 사라전종횡기의 수담옥 이라는 작가를 눈여겨보고 있다.)
고무림에서 자주 회자되곤 하는 백준(건곤권, 초일), 월인(사마쌍협), 김석진(삼류무사), 박신호(산동악가), 이우형(유수행), 초우(호위무사) 등등. 대부분의 무협소설을 읽어보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오지 않았다. 물론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단지 읽을 때의 재미 뿐, 다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일지는 않는 글들이다.
무언가 하나가 빠진 느낌. “진정성“이라고 한다면 이들 신진작가들을 너무 무시하는 표현일까?
얼마전에 “임준욱과 이우형”을 비교하는 글을 보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우형의 글은 나에게는 유치하게 느껴졌다. 십대의 감성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30을 향해 달리는 내게는 그랬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문화의 주류는 십대로 넘어갔고, 문화계 전반이 가벼움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일반적이다.
대표적으로 영화계가 그렇고 무협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장경제에서 주소비층인 십대의 코드를 무시할 수 없겠지만 요즘의 무협계는 조금 심한 감이 없지 않다.
상업성을 무시하자는 말이 절대 아니다.
단지 유행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았으면 한다.
신진작가들이 소재를 선택하고 글 쓰는 능력은 과거 90년대 후반 작가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글들도 조만간 내 책장을 채울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써놓고 보니 내가 무협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니라 신진작가들을 폄하하는 글이 주를 이루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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