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이영도
작품명 : 눈물을 마시는 새
출판사 : 황금가지
그녀는 언제나 씩씩하게 달린다.
툭하면 넘어지고, 부딪쳐서 보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만들지만, 그
녀는 매번 벌떡 일어나서 또다시 씩씩하게 달린다. 그녀의 무릎과 팔
꿈치가 무사하다는 건 거의 불가사의로 통한다.
그녀는 아무리 달려도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가만히 머물러 있는
걸 피곤해한다. 그래서 그녀는 방안에서도 방 이쪽에서 저쪽까지를
끊임없이 오가며 달려대기 일쑤다. 보는 사람 정신 사납든 말든.
그녀는 뭔가를 성가셔하지도 않고, 당연히 게으르지도 않으며, 모
든 대화의 끝에 상대의 명칭을 정확히 불러줌으로써 상대방의 정신
을 또렷이 일깨워준다.
그녀에게 해야 할 일은 아무 의심도 없이 할 일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애초부터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대화조차 달리듯이 한다.
원인과 과정을 무시하고 그녀만의 '오묘한' 결론을 거침없이, 그리
고 경쾌하게 내뱉는다.
위기의 순간, 나가의 대호수자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번쩍 들어올
렸을 때 그녀가 외쳤던
"엄마한테 물어봐야 돼요!"
라는 말은 그녀 특유의 비약적인 대화법의 절정이다.
대수호자가 그랬듯이 나 역시 그 대목에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
어버리고 말았다.
또한 그녀는 모든 세상을 그녀만의 독특하고도 사랑스러운 시선으
로 이해한다.
"......반사적으로 당신을 죽일 겁니다. 몸 속의 물을 모조리 끓어오
르게 할 수도 있어요. 뇌 속의 물만 끓여도 충분하지."
이렇게 으르렁대는 적군의 대장군 갈로텍의 위협에 그녀는 반색하
며 이런 질문을 한다.
"목욕물도 끓일 수 있으십니까? 대장군 님?"
"......예?"
"저는 땀을 많이 흘립니다. 찬물로 씻어도 상관은 없지만......"
푸하하.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인. 데오늬 달비.
나에게 '눈물을 마시는 새'는 데오늬 달비라는 여인을 만나게 해
준 소설로 기억된다.
천년의 세월을 이겨내며 신마저도 몸 속에 가두어버린 케이건 드
라카의 음울한 카리스마도 아니고, 친숙한 도깨비 비형도 아니고, 무
릇 남자라면 이래야 해! 싶은 티나한도 아니다.
나는 오직 데오늬 달비 때문에 '눈물을 마시는 새'가 좋았다.
또한 느닷없이 막을 내린 소설의 결말이 아쉬운 것 역시, 오로지
데오늬 달비 때문이다.
도대체 그녀가 어떤 남자를 만나서 어떤 사랑을 하게 될지, 나는
너무나 궁금하다.
'드래곤 라자'로부터 시작하여 '퓨처 워커', '폴라리스 랩소디'로 나
를 매혹시켰던 '깊이 있는 재치의 이야기꾼'인 이영도는 '눈물을 마시
는 새'로 드디어 나를 감탄시켰다.
확실히 '눈물을 마시는 새'는 그의 모든 작품들 중 최강이다.
어쩌면 조만간 나올 '피를 마시는 새'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최강이다.
중세유럽을 어설프게 답습한 기존 환타지의 남루한 설정을 과감히
벗어 던졌으며, 우연과 유아적 욕구로 치닫는 스토리 패턴에 쿵! 견
고한 벽을 내려꽂았다.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상상한 아이템으로 무
장하였으며 그 낯선 상상력을 '설명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냄'으로
써 어느새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해주었다.
철학적 깊이라든가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은 제쳐두기로 한다.
나는 소설에서 그런 건 읽지 않는다.
그런 걸 읽으려면 굳이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그런 건 그저 '적당히'만 있으면 된다. (물론 어디까지의 적당히 인
가는 각자 다르겠지만)
소설은 오로지 소설(小說), 한 편의 이야기로 읽는 게 재미있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한 편의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이며, 장중한
배경음을 동반한 신세계로의 여행이며, 그 여행의 끝에서도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여운의 제왕이다.
장장 이천 폐이지가 넘는,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장구한 여행을
끝마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후우...아주 긴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다.
과도하게 즐거웠던 여행이 이제 끝나버렸다는 아쉬움인지, 그 즐
거움이 너무나 컸기에 감당하기 힘들다는 의미였는지...아마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데오늬 달비'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이제 끝! 하고
막 너머로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말했다.
'어디에도 없는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나늬'라고.
데오늬 달비는 나늬다.
나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서 데오늬 달비라는 사랑스러운 여인을
만났다.
그녀를 만난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렇다는 건, 나늬를 받은 인간은 행복하다는 의미겠지.
그래서......
문득 떠올라버린 작가에 대한 상상 하나.
그는 결혼을 했을까?
애인이 있을까?
어쩐지 그는 노총각일 것 같다.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은 나늬다' 라는 선언은 외로운 노총각의 열
망이 탄생시킨 결론이 아닐까? 히히.
어쩌면 작가는 '에헴! 그건 아주 진지하고도 심각한 주제를 담은
소설이란 말야' 라고 투덜거릴 지도 모르겠다.
뭐 상관없다.
쓰는 건 작가의 영역이고, 읽는 건 독자의 영역이니까.
그 사이의 공통분모는 굳이 찾고 싶지 않다.
나는 이렇게 내 멋대로 소설을 즐긴다.
그걸로 충분하다.
단지, 즐길 소설을 써준 것에 대해서 무지막지하게 고마워하는 마
음 정도는 가진다.
어서 빨리 '피를 마시는 새'를 읽고 싶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