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강한성
작품명 : 개천에서 용났다
출판사 : 파피루스
일단 제목 센스는 정말 없습니다. 책 표지 말미에 60억분의 1을 쓴 글쓴이의 추천사가 없었다면 안 봤을 겁니다. 그러나 60억분의 1을 현재까지 괜찮게 읽고 있는 고로 이 또한 그 정도의 재미만 있다면 큰 손해는 아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군요.
현대판타지라고 요즘 들어 나오는 이야기들을 저는 무협의 외연을 확장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판타지의 본령은 역시 모험이고 무협은 활극에 있듯이 60억분의 1이나 개천에서 용났다나 주인공 모두 판타지에 기연을 두고 있지만 그들이 세상에서 펼치는 모습은 임협의 모습 바로 그것입니다.
개천에서 용났다는 60억분의 1에 비해 주인공이 기연을 얻는 순간이 지극히 순간적입니다. 그저 어느 순간, 아니 찰나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짧은 순간에 주인공은 전생의 기억(판타지 세계의 대마도사라는 설정입니다만 저는 그냥 웃으면서 넘어 갔습니다)을 토대로 자신이 당한 불운을 극복하고 맙니다.
아무튼 60억분의 1 글쓴이의 추천사 때문인진 몰라도 이 글은 묘하게도 60억분의 1과 비교하면서 읽게 되더군요. 그리고 비슷하지만 다른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단 이 책은 60억분의 1에 비해 주인공이 어떤 소명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장남이란 점에선 같지만 이쪽은 강원도 산골 출신이라 택배업 대신 비닐 하우스를 설치한다는게 다르더군요. 저도 일전에 텔레비전에서 비닐 하우스 설치를 취재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기억컨대 생활의 달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젊은 청년이 나오는데 대학 복학 하기 위해 돈을 마련하려고 시작하다 나중엔 정착 비슷하게까지 된 사연이 소개됩니다. 알고보니 하우스 뼈대 위에서 달리면서 비닐천막을 씌우는데 이게 능력자 정도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이더라구요. 버는 돈도 쏠쏠하고 말이죠.
주인공은 지방대 법대 출신으로 사시합격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의 허술함은 본편을 위한 예고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종종 이러한 예를 요즘 책을 빌리면서 느끼곤 하는데요. 주인공의 얼토당토 않은 능력이 본편 이야기를 위해 필요한 가벼운 치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났다의 주인공 김태국은(놀랍게도 여동생 이름이 태희랍니다 쿨럭) 사법고시 이후 연수원에서 놀라울 만한 성적으로 졸업해 꿈에도 그리던 검사가 됩니다. 그리고 검찰 조직을 뒤흔드는 일에 알게 모르게 휘말리게 되죠.
따라서 개천에서 용났다는 김태국이 검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셈입니다. 그 전의 설정적 장치랄까 그런 건 양념에 불과한 것이구요. 한편으로는 이러한 이원호식 활극은 오랜 동안 침묵한 바가 있었기에 60억분의 1과 같이 부활을 시도하는 점은 꽤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장르는 현실을 잊고 살았습니다. 저는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비록 대중소설로 치부되곤 있어도 우리가 갖고 있는 장르적 특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않나 생각하곤 했습니다. 외려 가까운 쪽은 이원호의 밤의 대통령일 거라고 보았었죠. 장르적 특성이랄까 독자가 무엇을 원하고 응해야 할 지를 안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 점에서 김태국이 과연 미운 털이 박혀 가며 검찰 내부에서 얼마나 조직 생활을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이왕이면 조직 생활을 오래해서 사회적으로 이미 잘 알려진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재편집되어 주인공이 해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꽤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소재 삼아 쓸 수 있을 테니까 주인공의 검사로서의 활약상도 그만큼 오래 볼 수 있게 되는 셈이죠. 특히, 정치, 경제, 조직폭력 등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60억분의 1의 주인공도 그렇고 후아유의 주인공도 그렇고 몇 년전 일이긴 하지만 법률외 상담소 주인공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국 치외법권, 제도권의 바깥에서 사회 정화를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는데 한번쯤은 제도권 내에서 그런 일을 하는 주인공이 있어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21세기 무인이 경찰이었다면 지금은 검사라는 것이죠. 그러나 무엇보다 이런 현대물의 재미는 역시 통쾌, 상쾌에 있기 때문에 다분히 이야기 전개나 결과에 있어 상업적이란 점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좀 더 좋은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면에서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개천에서 용났다는 많은 허점을 안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앞으로 주인공이 활약해 줄 범죄 사건을 위해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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