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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1)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
05.03.27 12:56
조회
1,081

1

하승남, 이재학, 천제황, 황재, 황원철, 장윤식, 황성, 황풍, 최봉학, 우호, 등등의 만화가에 의해 펼쳐지던 무림의 세계에 깊숙이 빠져있던 중학교시절… 도대체 몇백 아니 몇천 권을 읽었을지 스스로도 짐작이 안 되는 엄청난 몰입의 시간들이었다. 그러던 중 언제부터인가 대본소용 무협만화들이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덩달아 나의 머리 속 무협창고에도 일대 위기감이 전해져오기 시작했다. 아아… 땀과 흥분으로 젖은 나만의 강호가 공급부족이라는 복병(伏兵)으로 말미암아 건조하고 허무하게 말라비틀어져야 한단 말인가?

느껴보고 싶은 강호의 세계에 이제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데 읽을 수 있는 작품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아쉬움은 한동안 무협에 관심을 끊게된 요인을 만들게되었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가 세로형 박스무협을 읽는 것을 보게되었다.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전에도 보기는 수없이 본 것들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나와는 안 맞을 것 같았고(무슨 古書를 보는 느낌인지라…어린 마음에^^;) 화려한 그림들로 보던 것을 글씨 몇 자로 보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싶은 생각에 일견 터부시하던 것도 사실이었다.

몇 달 동안 쓸만한 신간무협만화 한편 제대로 보지 못하자 나의 관심은 새로운 대안을 쫓아 어쩔 수 없이 박스본 무협으로 가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이름들이 가득했고 만산홍엽(滿山紅葉)을 연상시키는 알록달록한 표지의 색상들이 동공을 어지럽게 했다. 거기에 세로로 쓰여진 글자들은 과연 내가 이것들을 한편이라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하는 약간의 두려움(?)도 안겨주었었다.

어떤 작품을 읽어야할지도 몰라 대여점 아주머니가 슬며시 권해준 '일인제국(一人帝國, 내가위, 모두위 作)'을 처음으로 손에 잡아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쉽게쉽게 읽혔고 재미도 상당히 있었다. 만화책과는 차별화 되는 뭔가 새로운 재미도 느껴졌었고 말이었다. 일인제국을 재미있게 읽고 마지막장을 덮었을 때의 그 느낌…'만화책만 읽던 내가 드디어 六권 짜리 장편소설을 읽었구나…' -_-;쿨럭... 뿌듯함을 동반한 엄청난(?) 감동이 전신에 부들부들 휘몰아쳐 왔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만화를 등한시하고 박스본 무협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거의 일년정도를 말이다.

2

무협만화를 통해 무협을 배워서일까? 박스본 무협지들을 쌓아놓고 읽으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전에 읽었던 무협만화들과 어우러져 머리 속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왜 이것은 이럴까…? 이것은 꼭 이랬어야만 될까?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별의별 생각들을 다했었다. 그중 유독 내 자신을 힘들게 했던 생각… 바로 대부분의 박스무협들이 가지고 있는 지나칠 정도의 과장성이었다.

무협만화에 빠져있던 시절, 누구보다도 좋아한 만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이재학님이셨다. 현재는 그분이 돌아가신 상태에서 그분의 이름을 빌린 화끈한 액션위주의 작품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 형편이지만 생전에 그분이 그리셨던 작품들은 상당히 현실적이고(다른 작품들에 비교해서…) 실사 적인 액션이 돋보였었다. 특히 '촉산객' '검신검귀' '대룡'등으로 이어지는 장편시리즈 물 들은 몇 년 동안 두고두고 내 눈길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었다.

이재학님의 작품과 비교해 박스무협들은(물론 재미있으니까 읽었던 것이지만…)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그 내용이나 액션이 과장스러웠었다. 몇 백년 전의 전설에서부터 장풍(掌風)한방에 수십 명의 무사들을 해치워버리는, 아니 아예 떡을 만들어버리는 액션에는 어린 나이에도 쉼 없이 고개가 왔다 갔다 했었다. 아니 아무리 졸개들이라지만 명색이 평생을 무인(武人)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이거늘 무슨 허수아비보다도 못한 신위를 보여주다니… 분명히 한 방면에 뛰어난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별 비중 없는 이들을 엑스트라보다도 못한 가치로 치부해버리는 전개에는 적잖은 불만이 쌓여갔다.

하지만 역시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박스무협에 대한 열정은 쉬이 식지 않았다. 지금처럼 PC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오락실이나 만화책밖에 여가를 즐길게 없는 불쌍한 학생이었으니 이런 것마저도 없었으면 그야말로 너무너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었다.ㅠ_ㅠ 다행히 중간중간 '권법자(拳法者)' '바람의 파이터(방학기)'같은 실사 액션위주의 만화책 등이 발간되어 굶주린 욕망을 조금씩 채워나갈 수는 있었다.

3

당시는 몰랐다. 박스무협을 국내 작가 분들이 쓰신다는 것을 말이다. 무협소설은 당연히 중국(中國)의 작가들이 쓰시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으니까 말이었다. 그 수많은 한문에(특히 한문시간에 엄청 두드려 맞았던 나ㅡㅡ;) 엄청난 무공의 종류들… 웬만한 지식으로는 감히 손도 못 댈 것이라 느끼는 것은 당시의 나로서는 어쩌면 당연하였다.

어느 날이었다. 친한 친구 한 녀석이 우리 집에 놀러와서는 당시 읽고있던 박스무협을 들쳐본 적이 있었다. 녀석은 책이라면 만화책조차도 지겨워하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하며 박스무협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것이었다. 녀석의 가장 진지한 모습을 그날 보았다. ㅡㅡ;쿨럭

"나 이것 좀 빌려줘라." 의외의 말이 녀석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왔고 나는 요청대로 책을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녀석의 박스무협 탐독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내가 빌려온 책은 어느덧 나와 녀석의 공유물이 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무협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의 마력이란 말인가? 만화책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던 녀석을 그토록 빠져들게 하는 무협의 매력… 무협에 대한 열정이 막 식으려했던 나는 녀석의 반응을 빌미 삼아 다시금 무협에 심취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너 혹시 무협지 빌려가서 찢는 것 아니겠지?" 책을 반납하러 가기가 무섭게 도끼눈의 아주머니에게서 음산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예…?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나야 당연히 모르는 일이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으윽… 잡히기만 해봐라."구석에 놓여진 백여 권의 박스무협을 바라보며 노기를 활활 태우고 계시는 우리의 대본소 아주머니… 무서웠다. ㅡㅡ;

"응? 이게 웬일이지?" 한창 기분 좋게 무협지의 페이지를 넘기고 있던 나의 이맛살은 한순간 와그작 구겨지고 말았다. 무슨 꼭 쥐 파먹은 것처럼 소설의 한 부분이 십여 장 정도 찢겨져나갔기 때문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그냥 넘어갔다. 다소 어지러웠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권도 또 다음 권도 계속 찢겨져있는 모습에 읽던 책을 바닥으로 던져버려야만 했다. "으윽! 이게 뭐야?" 갑자기 짜증이 확 밀려왔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중간이 찢겨진 무협지를 읽는다는 것은 대단히 불유쾌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도 몇 작품에서 이런 일이 연속해서 되풀이되었다.

"혹시 그녀석이…?" 이모저모를 뜯어 맞추어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친구녀석이 의심이 갔다. 이상하게도 녀석에게 무협지를 빌려주면서부터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주머니가 찢겨졌다고 투덜대는 작품들은 녀석의 손을 거쳐갔다는 점, 나를 슬프게 한 무협지들은 녀석이 먼저 빌려가서 읽었었다는 점들이 속속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분노를 삭히며 그 길로 경공술을 펼쳐(자전거의 도움을 빌려ㅡㅡ;)녀석에게 쳐들어갔다. 한겨울 찬바람이 얼굴에 칼날처럼 와 닿았지만 후끈 달아오른 몸은(열이 한창 받은 상태인지라…ㅡㅡ;)그런 추위조차도 잊어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계속)


Comment ' 11

  • 작성자
    Lv.3 소보(小步)
    작성일
    05.03.27 13:03
    No. 1

    헉, 감상비평란에 절단마공이??
    빨리 다음편 올려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일
    05.03.27 13:08
    No. 2

    저기 절단마공이 뭐죠?^^ 제가 컴맹에 정보맹이라^^;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鐵手無情郞
    작성일
    05.03.27 13:19
    No. 3

    웬만한 소설보다도 더 재밌다는 뜻인것 같군요.
    간만에 만화방추억을 비오는 일요일 오후에 즐겨보는 것도 참 좋습니다.
    다음편 빨리 올려주세요...
    (작가로 나서도 충분할 듯한 글솜씨입니다.---감상문에 대한 감상문)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일
    05.03.27 13:51
    No. 4

    아! 저...절단 마공에 그런뜻이?^^

    초보 네티즌인 저도 글사이트나 무협사이트같은곳에서 적응하려면 이것저것 알아야할게 많을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__)꾸벅...공손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쿤산
    작성일
    05.03.27 14:14
    No. 5

    얼~절단마공 --
    작가들만이 연성한다던 그 메직류 레어급 무공을 이곳에서 또 발견하다니!
    전직하셨습니까?(머라카는 거냐 이놈)

    ㅎㅎㅎ 재밋습니다.
    정말 작가도 되겠는데요 ^^ 다음 감상문 올려주세요~ 그 사악한 친구를 과연 우리 정의의 주인공이 어뜨케 뚜들겨 줄찌~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쿤산
    작성일
    05.03.27 14:16
    No. 6

    앗 이제보니 요 밑의 글들도 님씨의 글?! +_+
    이것도 모두 절단마공이 ~ 우워~ 그래도 다 올려져서 무효! 실드~(-_-)
    즐겁게 보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윈드윙
    작성일
    05.03.27 14:26
    No. 7

    감사합니다^^잡담글에도 리플이 올라오니 넘 정겹네요^^

    어제 가입했습니다^^앞으로 종종 뵐수있기를(__)꾸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1 반여랑
    작성일
    05.03.27 20:23
    No. 8

    우옷. 오늘 안계를 넓혔습니다.
    엄청난 내공!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화일박스
    작성일
    05.03.27 23:57
    No. 9

    아,,,이재학,,,작가님을,,,빼먹고 있었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9 파천러브
    작성일
    05.03.28 00:34
    No. 10

    근데 왠만하면 단락사이에 너무 뛰우지 마세요;;; 고무림에선 여백 허용잘 안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풍소혜
    작성일
    05.03.29 11:28
    No. 11

    하하하 재밌네요..
    반가운 이름들두 많이 보이고..
    담편두 어서 올려주세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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