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신독
작품명 : 무적다가
출판사 : 청어람
# 미리 밝히자면, 신독 님은 나의 친구다. 그의 입장에서는 '에이,
난 알머리 싫어' 라고 투덜댈 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를 친
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인연으로도 엮여있다.
그러나, 사람이 좋은 것과 글이 좋은 건 분명히 별개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글이 나쁘면, 그는 나쁜 작가이다.
반대로, 사람은 나빠도 글만 좋으면, 그는 적어도 좋은 작가이기는
하다.
신독 님은 다행히도 둘 다에 해당된다.
들어가기에 앞서 이런 너스레를 늘어놓는 건, 알머리 특유의 소심
한 노파심 때문이다. 나야 상관없지만, 행여 신독 님에게 안 좋은 인
식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이 글은 분명히 감상문이고, 따라서 오직 글에 대한 감상뿐, 그와
의 친분 같은 건 지구 반대편에 묻어두고 썼다.
책이 좋아서여야지, 작가가 좋아서 감상문을 쓴다는 건 굉장히 쪽
팔리는 짓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꽤나 고집불통이다.
아마 신독 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내 나이 열 일곱에는 무엇을 했을까...?'
한 권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던 것 같다. 경쾌하게 휙휙 뛰어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열 일곱 살의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 때의 나를 규정하자면 걸어 다니는 불만덩어리였다.
하기야 나만 그럴까? 그 시절만 그랬을까? 현재의 열 일곱 청춘도
걸어 다니는 불만덩어리일지 모르겠다.
부모님에게도 불만이 주렁주렁, 학교에도, 사회에도, 이 세상에도...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불만은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 때의 나는 세상을 아주 같잖게 봤다.
도대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 빡빡하게
살아가는 걸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끙끙대며 공부해서 뭘 하자는
걸까? 뒷구멍으로는 별 지저분한 짓을 다 하면서, 앞으로는 근엄한
척 뒷짐지고 다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과연 뭐가 들어있을까? 버
스를 타고 가다가 앞좌석에 얌전히 앉아있는 아저씨의 뒤통수를 보
면 괜히 한 번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양복을 입고, 머
릿기름을 깔끔하게 바른 아저씨일수록 더 그랬다.
책머리에 '감자먹이는 이모티콘'을 보면서 난 목젖이 튀어나갈 정
도로 푸하하 웃었다.
열 일곱 살 무렵의 나는 거의 매일 세상을 향해 감자를 먹였다.
'에라, 쑥떡이다!' 이런 의미였다.
어쩌면, 작가도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더 웃음이 나왔
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의 교감을 느낀다는 건 정말 좋다.
사실 돌아서서 콧방귀만 뀌는 건 좀 비겁하지 않은가? 하려면, 적
어도 마주보고 서서 '감자먹이기' 정도는 해야지.
아무튼 그렇게 쉬지 않고 세상을 향해 퍽퍽 감자를 먹이면서도,
예쁜 여학생들한테는 어쩔 줄 몰라했던 게 또 열 일곱 살이었다.
예쁘면 예쁠수록 바라보질 못했고, 행여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하
루 온 종일 손을 잡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하루를 다 보냈다. 그리고
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에잇! 바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어쩌다
가 용기를 내서 아주 거친 척, 불쑥 손을 잡아버린 적도 있었다. 뒷
골목 어깨처럼 눈에 힘 팍 주고...그러나 속으로는 그 보들보들한 손
을 잡는 순간부터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째서 그런 열 일곱 살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그걸 의도하고 쓴 이야기일 수도 있고, 그냥 내 멋대로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나버린 걸 수도 있겠다.
뭐, 상관은 없다.
작가는 작가 마음대로 쓰는 거고, 독자는 독자 마음대로 읽는 거
니까.
아무튼 난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이어지는 2권을 읽으면서
도 자꾸만 내 열 일곱 살을 회상하면서 읽게 되었다. 그리고, 그럴수
록 더욱 '무적다가'는 열 일곱 살의 낭만이라는 생각을 다지게 되었
다. 내가 열 일곱 살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이 '진파'라는 녀석이 착
착 해주고 있는 것이다. 흥이 날 수밖에 없다.
문장이 어떻고, 전개가 어떻고 하는 얘기는 모르겠다.
일단 흥이 나서 읽기 시작하면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흥이 안 나니까, 재미가 없으니까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다.
나는 마냥 '진파(히히^^ 사실은 다진파)'만 쫓아가면서 키득댔다.
제 몸에 맞지도 않는 무공을 억지로 익히느라 허덕대는 철정을 보
면서 진파가 화를 낼 때는, 나도 화가 났다. 벽화를 만나서 흐물대는
진파를 보면 나도 '흐흐...'웃었다. 잔머리나 굴리면서 정의가 어떻고
떠드는 노인네들을 볼 때면, 진파만큼 성질이 났다. 내 열 일곱 살은
그냥 성질만 내고 말았는데, 진파는 쾅쾅! 두들겨 패버린다.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다. 시원해서 죽겠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시원하다 말려고 한다.
2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문장이니 전개니 하는 것들이 눈에 들어오
려고 하는 것이다. 흥이 깨지려고 한다는 거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
다. 갑자기 빈번해지는 '......것' 투의 반복설명 때문인지, 묘하게도 설
렁설렁해 보이는 편집 탓인지, 아니면 한 권 내내 벽화하고만 알콩달
콩 해서인지... 또는 실제로 작가 자신이 별로 흥이 안 났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별로 시원하지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연재를 통해서 3권까지를 읽은 나는 그 깨지려던 흥이 다시
살아난다는 걸 안다. 처음보다 더 신나는 흥이다.
진파는 더욱 대차게 어중이떠중이(양복에 머릿기름 바르고 다니면
서 근엄한 체 하는)들을 쾅쾅 두들겨 패주고, '언 놈이 내 여자 건드
려!' 소리치면서 자기 여자 지켜주고, 덤으로 우왁! 세상에 열두 명씩
이나 되는 미녀들에게 둘러싸인다.
그야말로 열 일곱 살에 꿈꾸던 내 최고의 낭만이다.
정말 그렇다.
내가 읽은 '무적다가'는 바로 '열 일곱 살의 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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