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민 감독은 모두가 함께 의견을 내는 '토론농구'를 만들려하고있다. |
ⓒ 서울삼성 |
전 메이저리그 스타 박찬호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절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국내 스포츠계의 경우 작전회의 등을 할 때 감독 말에 끼어들기가 힘들다. 고참급들도 함부로 나서기가 쉽지 않아 연차가 짧은 선수들은 그저 묵묵히 듣고 시키는 것만 해야 한다.
이는 학창시절부터 계속적으로 이어오는 모습이어서 대부분 운동선수는 이러한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박찬호가 경험했던 미국은 달랐다. 작전회의시 감독, 코치는 말할 것 없이 선수들이 너도 나도 자기 의견을 말했다. 국내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박찬호 입장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박찬호는 난데없이 자신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보면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작전회의 때는 묵묵히 듣기만 하는 게 습관이 돼버려 의견을 내는 게 너무 낯설었던 것이다.
이렇듯 국내스포츠 정서는 미국 등 서구사회와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다르다. 특히 감독의 권한은 절대적이어서 선수가 중간에 의견을 내려 끼어든다는 것은 의도를 떠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우려가 있다. 예전과 사뭇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해도 쉽게 바뀌지 않는 부분이다. 단순히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 안준호 감독은 한 시대를 풍미한 명장 중 한 명이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스타일이 아니라 얼핏 보기에는 유약해 보이지만 자신만의 농구철학이 뚜렷하고 다양하고 창의적인 작전구사에 능했다. 용병급 사이즈와 기량을 갖췄지만 어느 감독도 다루기 힘든 서장훈이 팀 플레이를 해친다고 판단되자 과감히 그를 배제하다시피하고 우승을 일궈내는 등 특유의 뚝심도 있었다.
당시 안 감독은 강혁(40·187cm), 이상민(44·183㎝), 이정석(34·183cm), 이시준(33·180㎝) 등 빼어난 가드들을 앞세워 꾸준한 성적을 올렸다. 각양각색 가드진이 전천후로 활용되는 가운데 장신슈터 이규섭(39·198cm)이 뒤를 받쳤다. 올루미데 오예데지(35.201.4cm), 테렌스 레더(35·200.3cm), 애런 헤인즈(35·199cm) 등 외국인선수를 보는 안목도 뛰어났다.
안 감독하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작전타임시 벌이던 이른바 '토론농구'다. 코트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경기를 지켜보거나 작전지시를 하던 안 감독은 열정적이었지만 남의 말에 귀도 잘 기울여 주었다. 한참 작전에 대해 얘기하다가도 선수들이 의견을 말하면 말을 멈추고 들어주던 스타일이었다.
그로인해 삼성 벤치는 너나 할 것 없이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토론장 같은 분위기가 펼쳐지는 경우가 잦았다. 보통의 감독 같으면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팬들 사이에서 '토론 작전타임'으로 불렸다. 특히 최고참급에 속하던 이상민은 감독 이상으로 발언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수시로 의견을 내고 상황에 따라서는 작전판을 들고 직접 지시를 하기도 했다.
안 감독 역시 이러한 모습을 인정해줬다. 국내무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모습이어서 당시 이러한 광경은 팬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상민은 당시의 좋았던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도 그런 감독이 되려하고 있다.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차피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라며 "감독이 지시를 하는 것은 맞지만 매번 그리할 수는 없어 선수들 스스로도 생각하고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를 전체적으로 총괄하는 감독의 시선 못지않게 직접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이 느끼는 것은 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이 감독 체제는 아직 전임 안 감독 시절처럼 활발한 토론 문화는 정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감독 스스로가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감독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주희정(39·180cm)에 이어 김태술(31·180cm)이라는 고참급 가드도 새로 합류해 점차적으로 바뀌어갈 공산이 크다.
호불호를 떠나 보수적인 국내 스포츠 문화에서 이 감독의 이러한 마인드는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문피아독자 윈드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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