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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미식 단편 홍합탕

작성자
Lv.9 요철
작성
16.09.29 00:47
조회
1,548

나는 나이들어도 소주는 혼자 안마셔.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했었지. 국밥집에 홀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지저분한 아저씨를 볼때면 저런 꼴은 되지 말아야한다고 다짐했었는데.

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술 한잔 비울 때는 사람이 거추장스럽게 많았다. 혼자서 마시는 술이 대체 무슨 맛인가 그때는 몰랐다.


날이 어두워진다. 서두르지 않으면 마트에도 못들어가게 생겼다. 일은 바쁘고 사람에 치이는데 한잔 술이 빠져서는 힘이 안난다. 어찌된 것이 일 마치고 나면 더 바쁘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개운한 샤워도 한잔 술의 여유도 없다.


후다닥 뛰어들어가서 이곳저곳을 빠른 걸음으로 살핀다.

바쁘던 발걸음은 술 코너 앞에서 멈춘다.

여기서부터가 고민이다. 

피곤한 몸은 맥주 한 잔도 버거운데 오늘 하루 고생은 소주를 부른다. 아니야 기분내러 와인코너를 들러볼까?

여기서 머뭇 저기서 머뭇거리던 손을 꽉 쥐었다. 에라 모르겠다. 소주를 쥐었다. 고생한 날에 몸을 더 고생시키고 싶은 이유가 대체 뭘까? 바보같은 고민을. 오늘 알아보면 되지.

뭐든 몸으로 배우는게 가장 빠르다. 가자 기분이다.


안주는 뭘로 할까. 목에 기름이라도 발라봐?

아니다. 바람은 어느새 쌀쌀해져 오고 반팔 티셔츠는 집에서나 입는 계절이 되었다. 이런 날 따끈한 국물 한 숟가락 들어가면 하늘에라도 날아갈 걸. 

나도 모르게 홍합을 쥐었다. 


집에 들어온 나는 가방도 대충 던져두고 소주를 일단 냉동실에 넣었다. 아무도 없는 방안이 쓸쓸하니 TV도 틀어둔다.

그러고는 홍합을 꺼냈다.

옛날에 시장통에서 팔던 홍합은 이리 깨끗하지가 않았다. 손으로 쓱쓱 비벼씻어도 껍데기에 붙은 찌꺼기는 잘 떨어지지도 않았고, 칫솔로 박박 닦아야 반질반질한 껍데기가 흑요석처럼 빛나는 꼴을 볼 수 있었다.

앙다문 입에 걸린 해초찌꺼기도 힘껏 뜯어내야했다.

그래도 그만한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다. 홍합탕 한 숟가락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법이다.


꺼낸 홍합은 보기에는 깨끗하다. 혹시 모를 일이니 서너번 씻어주고 남은 찌꺼기도 손으로 뜯어주면 완성이다. 냄비에 홍합을 넣고 물만 잠길듯 부어주면 준비가 끝난다.

요놈들이 입을 벌릴 때까지는 시간이 남는다.


도마를 꺼내 대파와 고추를 썰어두고 국물이 올라오는가 냄비도 뒤적거려본다. 홍합 이놈은 아무리 봐도 효자다.

삼천원에 양도 푸짐한데 손까지 안가는 안주가 세상에 어디 흔한가.

올라오는 거품을 걷어낼때면 항상 흐뭇하다. 한놈 한놈 입을 벌리는 사이에 내 손을 따라 깨끗해지는 국물에 마음이 씻겨내려가는 것 같다.


입을 다 벌리면 썰어둔 고추와 대파를 넣는다. 다진마늘 조금에 소금 반 숟가락 넣고 냄비를 통째 흔들어준다.

이러면 뽀얀 국물에 맛이 고루 배여 시원한 국물이 알싸한 액센트를 낼 것이다. 심플하고도 심오한 그 맛을 나는 언제쯤 깨달았을까. 첫 숟가락 입에 넣었을 때일거야.


덜 차갑지만 냉동실의 소주를 꺼내놓으면 놈도 이제 준비가 끝난다. 나도 준비 완료다.


쪼르르 한잔 따라놓고 숟가락으로 한입 떠먹어본다.

이것봐. 첫입에 반한다.

뜨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데 위장에 닿기도 전에 속이 뻥 뚫린다. 개운한 국물에 풋고추 향이 코를 때리는데 반하지 않고 버틸 수가 있나. 분명히 나는 이 맛을 처음부터 좋아했을 것이다.

자 그럼 한잔 넣어보실까. 아니 그전에 한 숟가락만 더 넣어보자. 소주잔이 그래도 제법 차다. 따끈한 국물이 아니었더라면 세찬 바람에 내 위장이 쓸려나갔겠지.


찌르르하게 온다. 처음마셨을 때는 분명히 컥하고 토할 뻔 했었다. 그때보다 내가 강해진 것인가. 아니 무뎌진 거겠지.

속에 차고 뜨거운 것이 섞이는데 기분도 오르락 내리락하며 널뛰는게 당연하다. 엉덩이도 방방 뜨는 기분이다.

술을 넣으니까 내가 솔직해진다니까. 딱딱한 얼굴로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지금 내 모습을 상상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입꼬리가 첫 잔을 넘기니 올라가 있다.

내가 누구 덕분에 기분이 좋을까. 다 요놈 덕분이지.

검은 껍데기가 벌어지면 안에 붉은 빛 속살을 드러낸다.

지금입니다. 드세요.

조개란 놈들은 이렇게 솔직하다.

나도 솔직하게 놈을 대한다. 손가락으로 껍질을 쥐고 쓰읍하고 빨아들인다. 남은 관자는 무시한다. 나는 담대하다.

아니 사실 부자라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금 나는 홍합부자니까.

한 잔에 몇개나 먹을까. 한 열개쯤 먹어버릴까.

입안에 개운하고도 감칠맛 가득한 바다의 은혜가 가득하다.

이럴 때 한잔 또 들어가줘야지.


TV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귀한 손님 받느라 이몸은 정신이 없다. 초장에 찍은 홍합에 국물 두 숟가락. 그리고 소주는 한 모금.

속따갑다 국물 또 두 숟가락.


나하고 홍합탕 소주밖에 없다.

그러나 이순간 외로울 새가 없다. 


어느 새 소주는 바닥이다. 빠르던 숟가락질은 힘을 잃었다.

그래도 관성처럼 입으로 들어간다. 홀짝홀짝 국물을 마신다.

목을 축인다. 처음도 끝도 없다. 항상 이 국물은 같은 모습이다. 손을 하늘 위로 쭉 뻗고 넘어가버린다.


이제 내 몸이 한계다. 시간도 다 되었다.

짧은 휴식을 끝내고 나는 또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내일은 분명히 아침에 고생할거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 복잡한 건 내일 생각해.

씻어야 하는데....

이른 아침에 잠을 깨우는데는 샤워가 제격이다. 그런 소중한 기회를 지금 써버려선 곤란하지.


눈을 감는다.

입안에 까끌하게 소주의 감촉이 남아있는데 코에 남은 홍합냄새가 위안이 된다. 

*******

홍합탕 드시라고 간단한 영업용 글을 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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