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려거든 약혼하라. 요즘 드라마의 새로운 법칙이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집안의 강요나 혹은 여러 상황 탓에 어쩌다가 약혼에까지 이르는 주인공.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본인의 약혼식장이다. 물론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엉뚱한' 사람이 서 있다.
어쨌든 '반지'만 손에 끼워주지 않으면, 그 모든 서약은 무효다. 적어도 요즘 드라마 속에서는 그렇다. 그 많은 하객의 헛걸음이나 헛돈 들어간 것쯤은 하등 중요치 않다. 주인공은 예복을 입은 채로 한 시라도 빨리 약혼식장을 벗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면 그만이다.
<한강수타령>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삼각 관계들은 이런 식으로 정리됐다. 헤어질 사람과는 약혼식장까지만 동행한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셈치고 약혼식장까지는 가 준다.
드라마 속에서 내내 우유부단했던 주인공들은 하필 약혼식 직전에 정신이 든다. 사태가 그 지경까지 확대되어야만 상대방에 대한 사랑도 확인이 되는 모양이다.
요즘 드라마에 재벌급 주인공들이 넘쳐나는 이유도 이 약혼식 비용을 '껌값'으로 만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인지 모른다. 보통의 가계로는 기둥이 뽑힐 이 어마어마한 비용에 대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한때 '가정의례준칙'이라는 전두환 정권 시절의 생활규범에 의해 '허례허식'으로 몰려 금지되기도 했던 약혼식은, 이제 드라마 속의 갈팡질팡하는 연인들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필수 장치가 되었다. 현실에서는 거의 생략되는 약혼식이 드라마 속에서는 '반전'을 위해 남발되고 있다.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한기주 역)은 두 번이나 약혼이 물거품으로 끝나는 기록을 남겼다. 처음엔 오주은(문윤아 역), 두 번째는 김정은(강태영 역)과 치렀던 약혼식은 모두 결별로 이어졌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지성(강현우 역)은 이보영과의 약혼식을 펑크내고 유진에게 달려간다. 잃었던 기억이 하필 약혼식 날 돌아왔기 때문이다.
<천국의 계단>에서는 삼각 관계의 세 주인공이 모두 예복을 입고 약혼식장에 등장한다. 원래는 권상우와 김태희의 약혼식이었는데, 최지우까지 가세해 '반지 줍기 대회'를 방불케하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왕꽃선녀님>에서 이다해와 김성택의 약혼식은 심지어 '하늘의 뜻'으로 인해 성사되지 못한다. 이다해가 약혼식 도중에 신내림을 받아 '고전 무용'까지 선보인 까닭에 파혼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속의 약혼식은 결혼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의식(Initiation)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상실한 지 오래다. 헤어질 커플들은 반드시 약혼한다. 요즘 드라마의 공식 아닌 공식이다.
대략..
우리나라드라마...
너무 뻔하죠?-_-;;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