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회귀의 가장 큰 장점은 미래를 안다는 것이죠.
즉 기연과 같은 요소들을 우연이 아니라 합리적인 개연성으로 만들수 있는 겁니다.
미래를 아는 소설들이 대부분다 이런 개연성 측면에서 유리한 혜택을 받습니다.
쓸데없는 내용을 줄이고, 기연을 다 퍼부어줘도 알고 있던 사실을 가로채서 챙기는 것에 불과하니 개연성의 오류도 발생하지 않죠.
독자들의 입장에선 개연성 오류가 적으니 볼 맛이 나고, 거기에 재미적인 면을 만족시켜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고.
작가의 입정에서는 불필요한 내용을 확 줄일 수있고, 쉽게 개연성을 형성할수 있으니 글을 쉽게 쓸수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회귀라는 소재를 가지고도 개연성 오류를 일으키는 등 글에 허점 투성이고 재미도 없다면 글을 그냥 드럽게 못쓰는 작가라 보시면 됩니다.
전 윗 사람들과 보는 관점이 다른데요.
종특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을 보면 이세계물이 판치고 우리나라를 보면 회빙환이 판치죠.
각각 사회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반영됬다고 생각합니다.
회귀 빙의 환생 전부 미래 지식을 아는 것을 베이스로 하니 작가 입장에서도 이야기를 진행하기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사이다 전개를 하기에 더 편리하죠.
사이다라는 개념이 조금 모호한데.
딱 정해진게 아니라 독자마다 사이다를 다른 뜻으로 쓰고 있는게 보입니다.
막힘 없는 시원한 전개를 하기 위한 개연성으로 미래의 지식이 압도적인 먼치킨 파워보다 매력적이죠.
쓰는 게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긴 글 읽지 마세요, 부연 설명이나 다름없습니다.
요약 제일 밑줄에 있습니다.
회빙환은 이미 특정 사건을 겪어서 충분한 지적 상승, 감정의 고조 등등 많은 게 성숙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외의 장르는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죠.
회빙환이 쓰기 쉽다고 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에 저는 저 성숙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쳐 만들어질 '성격'이 프롤로그에 나올 회빙환 상황에 결정되어 1화를 시작하는 거니까요.
여기서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다른 직선형 소설도 마찬가지 아니냐?
그런데 다릅니다. 직선형 소설에서 저렇게 쓰면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경로를 제한합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극단적으로, 25살 주인공 생일 날 집에 살인강도가 들었습니다. 그들은 온 가족을 죽이고 집에 뒤늦게 도착한 주인공까지 죽이려 합니다.
"네가 찰리아들인가, 드디어 왔군."
여기가 분기점입니다. 여기서 죽으면 회빙환, 안 죽으면 직선형.
이어서, 회빙환을 위해 그가 죽습니다.
그러면 그는 다시 돌아가 "집에 강도가 들었어, 25살 내 생일." 이렇게 중얼거리며 몇 년, 혹은 몇 달, 어쩌면 며칠 전으로 돌아간 주인공을 비춥니다. 몇 년이라면 다양한 준비를 할 것입니다. 취업도 준비해야겠고, 어쩌면 그 집을 떠나 이사를 준비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 위해 돈을 모을 수도 있겠죠. 그러다가 아직 여유시간이 있으니 연애도 할 수 있을 거고요. 동아리도 할 수도 있겠죠.
회빙환이니 다른 몸으로 환생, 빙의 하면 그날의 비밀을 간직한 채 지내다가 엉뚱한 곳에서 그들을 마주하거나 완결까지 맥거핀으로 남겨둔 채 그를
"부모 잃은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어 남들이 엄마아빠만 있으면 발작을 일으키며 '넌 엄마아빠 있잖아. 도대체 뭐가 부족한 거야?'라며 투정 부리는 놈으로 보이게 만들 수도 있고, '있을 때 잘해, 부모님 맘 아프게 하지 말고.' 처럼 성인군자 식인 놈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직선형은 다릅니다.
찰리의 아들이라는 점이 중점입니다.
독자는 도대체 찰리가 누군지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직 주인공이 온 가족이라고만 표현했을 뿐 아버지 어머니는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아직 살아있다고 말 할 수도 있겠죠.
그럼 여기서, "찰리의 아들... 내 아버지 이름은 아스만이야. 하지만 아빠의 동료는 내가 어릴 때 아빠를 보고 찰리라고 장난 쳤었지. 옛날 생각난다면서... 아빠를 찾아야 해."
이런식으로 비밀을 아빠가 알고 있으니 아빠를 찾아가는 게 주요 내용이 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관련된 조직의 추적이 계속돼서 전투가 이어지는 마피아물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중점으로 보이고자 하는 건 이겁니다.
여유.
회빙환은 여유가 있습니다. 물론 죽음이 고작 며칠 앞이라면 여유따윈 없겠죠. 당장 이사가야 한다며 조르는 주인공을 비추지만, 엄마는 돈이 어딨다고 이사를 가냐며 투정 부리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음이 이어지면 다시 회빙환. 이런 느낌으로요.
그런데 보통의 회빙환은 이 이야기의 텀을 길게 가져가고 300화는 쓰려고 넓게는 20년, 짧게는 1년을 잡습니다. 그럼 여유가 장난 아닙니다. 연애는 물론이고, 그동안 범인을 찾아낼 수도 있겠죠. 겸사겸사 힌트였던 찰리라는 아빠를 찾아가 진실을 들으면서...
회빙환과 직선형 이야기의 차이는 이렇듯 조금 애매하지만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는 쓰기 편하다고 말 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회빙환을 쓰면 '목적의식'이 흐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시로 든 것들이 전부 노선 밖의 이야기들 뿐이니 말입니다. 당장 가족이 살해당했는데... 이런 건 독자에게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저 새X가 지금 장난치나? 이럴 시간에 노가다판을 굴러서 해외로 튀어도 모자란 판에 뭐 하자는 거지?" 이런 의문이 들게 되면 그 글은 아이덴티티를 잃게 되고 명작으로는 이름을 남길 수 없겠죠.
직선형은 말했듯 바로바로 위협이 이어집니다. 찰리의 아들이 조직원을 모두 사살하고 도주했다. 그를 뒤쫓으면 찰리를 찾아낼 수 있을 거다 라며 많은 조직원들이 투입되어 찰리의 아들인 주인공을 뒤쫓습니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여러 위협에 노출되고 쫓기고 부상 당하고 치료하고를 반복하며 아버지를 찾고 진실을 마주하고, 그게 다분히 아버지가 조직 보스의 가족을 몰살해서 그렇다며 아버지와 "그 사람들은 죄가 없잖아!"라며 다투기도 하고 "그들은 인질이었다, 그들에게는 본보기가 될 위협이 필요했지." 라며 타당성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극적으로 의견을 타협하고 협동해서 조직을 괴멸시킬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일이 틀어져 찰리의 아들이 제 발로 조직으로 기어들어가 아버지의 죄를 대신 받겠다고 무릎을 꿇을 수도 있겠죠. 물론 평범한 소설이라면 주인공 죽지 말라고 아버지인 찰리가 동료들 데리고 와서 극적으로 구해주겠지만요.
아무튼, 어쩌다 보니 장황하고 길게 적게 됐네요.
요점은 이겁니다.
여유의 차이.
회빙환은 좁지만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직선형은 넓지만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회빙환은 여러 갈래로 갈 수 있지만 그러면 목적 의식이 사라져 독자는 이 글에 흥미를 잃게 됩니다.
직선형은 한 가지로 갈 수 있지만 그러면 너무 강강강 혹은 반복되는 패턴에 질려 떠나는 독자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요즘 정서가 회빙환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좁은 길도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클리셰라는 세발 자전거가 있는 덕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우 정말 오늘 써야 할 분량마저 제껴가며 댓글을 쓰고 앉아 있었네요. 도움이 되셨다면 좋겠지만, 제 의견이 정답은 아니니까.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시고 넘어가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밥 먹고 연재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첫 연재라 떨리네요. ㅋㅋ좋은 하루 되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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