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궤변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궤변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소설은 기본적으로 있을 법한 내용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흔히 개연성이나 현실성이라고 불리곤 하지요.
주인공은 아무런 의미 없이 행동하여서는 안 되며 그 행동에 따른 원인은 충분하지 않아도, 결과는 충분조건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즉 등장인물이 어떠한 행동을 할 때에는 어떤 연유로 인해 그런 행위가 생겼는지 분명해야 하며, 그에 따른 결과는 먼 미래에 특정 사건과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런 사건과 사건은 유기적인 구성으로 서로 얽혀있어야 하며 , 그러기 위해선 작중에서 인물이 행동하는 환경에 대해 확실한 부연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
쉽게 말해, 인과론(결정론)을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양자역학에서야 확률론적 결정론으로 판단해야 한다지만, 그건 미시세계에서의 일이고 거시세계를 다루는 현실에서는 인과관계는 주어져야 한다고 보거든요.
(정말 깐깐합니다)
그런데, 뭐라 해야 하나......
장르문학은 특성 자체가 대부분 ‘가벼이 읽을 수 있는’이다 보니,
대체로 소설을 읽다 보면 무언가 허전한 경우가 꽤 있습니다.
수작이 아닌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충분히 그 역할을 한다지만,
그렇지 않은 소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주인공이 대세인 건지,
(덤으로 등장인물은 항상 주인공의 얄팍한 수에 당합니다)
아니면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쓰는 것이 대세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생각이 좀 듭니다.
짜임새야 그것은 작가의 역량이고, 작가 본연의 특색이니
삼국지처럼 정말 방대한 플롯을 연출하는 소설이 있다면,
정말 한정적으로 배경을 연출하여 압박감을 주는 소설도 있지만...
그런 소설은 기본적으로 인과관계가 있거든요.
적어도 ‘뜬금포’라는 생각은 들지 않을 정도로.
(물론, 뜬금포만 연발하다가 떡밥을 회수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장르문학은 이미 세계관 자체가 짜여져 있는 배경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보니까, 암묵적으로 ‘아, 이건 독자들도 잘 알고 있으니까 넘어가도 되겠지’라고 약속을 한 듯이 전개를 하는 게 많덥니다.
더군다나, 누군가 만든 설정이 성공이라도 하면 우후죽순으로 그 플롯을 따라하기에 급급하니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몇 개월의 노력도 거치지 않고 단순히 1~2달 깔짝 쓰는 경우도 많으니...
그래서 그런지, 정말 내용이 진부해 보이고,
잘 짜여진 내용도 정말 어쭙잖게 보이는 게 허다합니다.
심지어는 작가로서의 철학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런 덕분에, 가끔씩 장르문학을 읽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상하게도 애착이 계속 갑니다.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계속 보고 싶고, 정이 갑니다.
하이텔 시절부터 (어렸을 때인데도, 지금 24살입니다. )
부모님 몰래 보다가 전화비 폭탄 나와서 맞아 죽을 뻔한 적도 있어서 그런지,
그냥 자꾸 보게 됩니다. 집착인지 몰라도, 옆에서 잔소리를 하고 싶기도 하구요.
그런데, 더욱 웃긴 건 소설을 습작으로 써봐도
앞에서 말한 대로 자꾸 글을 써 내려간다는 겁니다.
글을 심사숙고하여 쓰면 쓸 수록, 이게 호응이 잘 올지도 모르겠고,
강박감에 빠져서는 완벽주의로 밀어부치는 경우도 많구요.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 혼란이 오곤 하는데,
어쩌라는 건지, 답은 구하지도 않고서 무마시킬 때가 많습니다.
제가 봐도 참, 답이 없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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