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인간의 뇌에 직접 신호를 보내는 방법이 개발된다.
이로써, 컴퓨터와 연결된 헤어 밴드를 장착하고 게임을 하면 게임 속의 상황과 일치하는 후각 신호, 촉각 신호가 게이머의 뇌에 전달되어 보다 현실감 있는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모니터에 초원이 나타나면 살랑거리는 산들바람에 실려오는 싱그러운 풀냄새를 맡게 되고, 사막을 건너야 하는 맵이 나오면 이글거리는 햇빛에 실제로 땀을 흘리게 되는 등....
격투 게임에는 펀치를 맞으면 가벼운 통증을 느끼게 하는 메뉴까지 추가되었지만, 보다 리얼한 게임을 즐기려고 통증 레벨을 높이다가 일상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의 타격을 받는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바람에 이 기능은 곧 법령으로 폐지되었다.
지나치게 현실과 흡사해진 게임 개발을 우려하는 여론이 높아진다.
좀비 사냥 게임에 동원되는 시체 썩는 냄새나 피비린내가 사람들의 감성을 황페화시킨다는 것.
그러나 모든 과학 기술이 그렇듯, 한 번 개발된 기술은 후퇴할 리 없다.
가상의 감각 신호 기술에 이어 완벽한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기술이 더해져, 컴퓨터 게임은 이제 현실과 구별이 불가능해질 정도에 이른다.
우려의 목소리는 점점더 높아지지만, 반면 옹호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가상 현실의 완벽화를 통해 실제 성범죄가 줄어들었다는 것.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게이머의 새디즘을 적당히 자극할 정도의 반항을 하는 가상의 여인을 강제로 범할 수 있는데 어째서 굳이 경찰 당국에 체포되고 사회의 지탄까지 받게 될 위험을 감수해 가며 현실의 여인을 범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쨌거나 이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현실의 삶 말고도 모니터 속에서 이루어지는 제 2의 삶을 따로 누리며 살았다.
점잖은 사람들은 프로방스에서 송어낚시를 즐기거나 타이티 해변의 의자에 누워 원주민 바텐더가 만들어 주는 칵테일을 즐기는 온건한 프로그램에 만족하였고, 현실에서 낙오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적절히 태클을 걸어 주는 경쟁자 캐릭터들을 쓰러뜨리고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면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여 마침내 CEO 자리에 오르는 비지니스 게임을 즐겼고, 천박한 사람들은 은행을 털거나 재벌 총수를 납치하여 몸값을 받아내는 완전 범죄 프로그램을 탐닉하였다.
좌절감에 시달리던 사회주의자는 자신의 이상이 완벽하게 구현된 세계를 만들었고, 지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를 창설하여 교주가 되어 만인의 숭배를 받거나, 제 2의 히틀러가 되어서는 3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결국 지구를 멸망시키기도 하였다.
출산률이 떨어진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가상의 이성과 실제보다 더 리얼한 섹스가 가능한데 더 비용이 많이 들면서 쾌감은 떨어지는 현실의 섹스를 선택할 만큼 우둔한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까.
가뜩이나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신하여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는 생산활동을 도맡아 하는 세상에서 인구까지 줄었으니 일부러 힘들게 일하러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외출 따위의 원시적 행동을 포기하고 컴퓨터의 가상 현실 속에 칩거하여 살게 되었다.
세상은 그럭저럭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세상에서도 인간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만족과 행복은 같지 않았다.
모든 욕구가 즉각적으로 충족되는 세상에서 인류의 뇌는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형질 변화를 일으켰고, 실제 식품을 섭취하기보다 충분히 배부르게 먹었다는 가짜 신호를 받는 것만으로 만족하다 보니 인류는 점점더 피골이 상접한 채로 뇌파 활동만이 왕성한 정신적인 존재가 되어 갔다.
인간의 육신은 점점더 쪼그라들어 물질의 흔적만이 남게 되고, 반면에 정신 활동은 극단적으로 맹렬해졌다.
그리고 마침내ㅡ
지구상에는 마침내 육신에서 자유로워진 뇌파 덩어리, 에너지 덩어리들만이 도깨비불처럼 부유하고 다니게 되었다.
성경에서 말하던 연옥의 풍경이 실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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