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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선글라스 이야기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3.10.14 17:30
조회
1,214

창원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던 시절의 기억 하나ㅡ

 

 

어느 날, 아침 배달을 앞두고 북적거리는 집배원 실에서 나보다 서너 살 젊은 동료 한 명이 시커먼 선글라스를 끼고서 으시대고 있었다.
길거리의 리어카 장수에게서 산 물건이라고 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도 재미 삼아 그에게서 잠깐 선글라스를 빌어 써 봤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썩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이런저런 결점들을 지닌 내 얼굴형에 어울리는 물건을 골라낼 자신이 없어 애당초 선글라스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지냈었는데, 별로 작은 편도 아닌 내 얼굴의 절반 가까이를 뒤덮을 만큼 큼직한 알이 달린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의외로 제법 멋스러웠다.
  "주윤발이 따로 없네!"
만족해 하는 나를 본 그 동료는 인심 좋게도 그 선글라스가 그렇게 마음에 들면 그냥 가지도록 하라고 나왔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우동 한 그릇을 사주고 선글라스와 맞바꾸었다.

 

 

여름이 본격적으로 무르익기 시작하던 그 즈음, 집배원 실에는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하나둘 늘어 가던 참이었다.
온종일 눈 따가운 햇볕 속을 돌아다녀야 하는 집배원의 업무 성격상 선글라스는 필수품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깥에서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우편물이 있어 하루에 한번씩은 들러야 하는 병원이 내 배달 구역 중에 있었는데, 접수대에 앉아 노닥거리던 간호사 둘이 시커먼 선글라스를 쓰고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오늘은 멋을 잔뜩 내셨네요."
  "그건 또 어디서 나셨어요?"

 


말로는 멋있다고 칭찬을 하고 있었으나, 보아하니 비웃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별 악의는 없는 듯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내 모습이 모처럼 양복을 빼입고서 도시 나들이를 나온 시골뜨기쯤으로 보이는가 보았다.
하기사 좁은 어깨에 앙상한 가슴을 한 나 같은 체격에는 선글라스가 별로 어울리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그 선글라스를 쓰고서 몇 시간만 지나면 어김없이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안경알이 너무 싸구려라서 그런 것이었다.
이틀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나는 선글라스를 벗어 버렸다.
두통에 시달리느니 햇빛에 눈이 좀 부신 편이 나았다.
그런 다음, 맨 얼굴로 예의 그 병원에 다시 찾아갔더니 이번에도 아가씨들이 까르르 웃어 대었다.

  “오늘은 왜 선글라스를 안 쓰셨어요?”
맙소사! 이 아가씨들 눈에는 전번에 자기 딴에는 멋을 부린다고 쓰고 나왔던 선글라스를 자신들이 놀려 대는 것을 눈치챈 내가 부끄러워서 오늘은 쓰지 않은 것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정말 그렇게 순박한 총각으로 보이더란 말야?
  '후줄근한 집배원 유니폼 속에 숨은 샤프한 인텔리가 내 컨셉이었건만.... '

내 평생 처음으로 써 보았던 선글라스는 그렇게 하여 입수한 지 사흘 만에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번에 내가 다시 선글라스를 쓰게 된 것은 그로부터 십 년쯤 뒤의 일이었다.
안경테가 휘어졌던가 렌즈가 금이 갔던가 하여 수선을 받으러 안경점을 찾아갔다가 그만 진열대의 파란색 선글라스에 필이 꽂혀 버렸던 것이다.
살 생각이냐고 안경점 점원이 묻길래 나는 별로 넉넉하지 못한 처지라서 살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 점원은 얼마쯤의 가격이면 살 수 있겠느냐고 끈질기게 물어 왔다.
이 정도 가격을 부르면 저 사람도 포기하려니 생각하고 나는 가격표에 적힌 금액의 절반을 불렀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자는 대답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나는 집에 가서 돈을 가져오겠다고 하였다.
담배를 진작 끊었기에망정이지 담배값 대기조차 빠듯하던 처지였지만 그 파르스름한 선글라스를 꼭 갖고 싶기도 하였다.

 

 

내가 본래 한번 무엇인가에 마음이 동하면 그놈을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다.
어쩌다가 들었던 노래 하나가 마음에 들면 곧바로 그 레코드를 구해 와야지만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순간에 내가 원하는 그 물건만 손에 넣으면 내 삶 전체가 만족스럽게 바뀔 것만 같은, 매번 배반당하면서도 이성으로는 도무지 제어하기 힘든 환상에 또 매번 사로잡히고 마는 것이다.
말하자면 광고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가는 이상적인 소비자랄까....
탄산음료처럼 상큼한 느낌의 그 파르스름한 선글라스만 내 것으로 만들면 감각이 파릇파릇하게 깨어나 글도 잘 써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저녁에 돈을 가지고 안경점으로 갔더니 그 점원은 미안하다고 내게 사과를 해왔다.
내가 골랐던 그 색깔로는 내 시력에 맞는 렌즈가 없더라고 하면서 다른 놈을 고르라고 열심히 권하는 것이었다.
그가 새로 권하는 선글라스도 파란색이었는데, 내가 골랐던 연한 파란색이 아니라 아주 짙은 파란색이었다.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두껍고도 정교한 느낌의 은색 테 때문인지 객관적으로 말해서 이쪽이 훨씬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실제로도 이놈이 앞의 물건보다 더 고가의 물건이지만 가격은 애초에 정했던 선까지 낮추어 주겠다는 것이 안경점 점원의 말이었다.
하지만 안경 가격이 더 높고 낮고와는 별도로 이놈은 앞의 것만큼 갖고 싶다는 욕망을 내 속에서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돈도 없는 처지에 갖고 싶던 물건이 없으면 그냥 나와 버리면 될 텐데 안경점 점원이 하도 열심히 권하는 것을 차마 뿌리치기 힘들어 선글라스를 사고 말았다.
어디 가서든 누가 뭘 열심히 권하면 차마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내 성격인 것이다.
오죽하면 군대 가서 무려 11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왔는데도 서울에 첫 발을 디디자마자 헌혈 좀 해달라고 매달리는 아가씨들에게 차마 냉정한 얼굴을 지을 수가 없어 그 금쪽 같은 시간 일부를 헌혈차 침대에 누워 보냈을까.

 

 

그렇게 사 가지고 온 선글라스 역시 책상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입고 다니는 옷은 싸구려인 사람이 선글라스만 번쩍이는 것을 쓰고 다니면 그것도 좀 우스운 일일 것 같았다.
그래서 하는 일이 잘 풀려 이다음에 바캉스를 가게 되면 그때 사용해 봐야지 하고 속으로 벼르기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바캉스를 떠날 수 있는 여유는 좀체 생기지 않았고, 그렇게 가끔씩 꺼내어 거울 앞에서나 선글라스를 써보는 동안에 내 시력은 점점더 나빠져 나중에는 렌즈 도수가 맞지 않게 되고 말았다.
결국 단 한 번도 실제 사용을 못한 채 그놈을 버려야 했다.

 

 

아무래도 나는 선글라스와는 영 인연이 없는 것 같다.


Comment ' 16

  • 작성자
    곁가지옆귀
    작성일
    13.10.14 17:45
    No. 1

    큭 .. 저도 자이즈 렌즈 비싼 선그라스 알로 맞추었었는데요. 결국 세번이상을 알만 교환했어요..
    두번을 알 깨먹고, 한번을 빌려 줬다가 알에 흠집을 잔뜩 내서 가져오고, 아흐....현재 자이즈 렌즈가 한알에 너무 고가로 거래 되더군요.. 당시 아는집에서 (한알당)13만원할때 3만원에 맞추었었는데..

    추억을 되돌아 보게 되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4 17:47
    No. 2

    제 경우에는, 원신지 근신지 아무튼 형편없는 시력에 난시까지 겹쳐 선글라스 알 자체를 구하기 어렵더라고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3.10.14 17:45
    No. 3

    이 글 보는 내내 피천득씨의 수필이 떠올랐습니다.
    문제는 그 수필의 제목이 뭔지 기억이 안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4 17:48
    No. 4

    아.... 그러고 보니 피천득 선생도 뭔가를 장만했다가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했다는 그런 글을 읽었던 기억이 저도 나는군요. 그게 무슨 물건이었더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묘로링
    작성일
    13.10.14 17:58
    No. 5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전 피천득씨가 부인 반지를 계속 싼걸로 바꿔서 나중에 반짓고리에 반지가 나뒹구는 그게 기억나네요.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5 02:20
    No. 6

    갑자기 궁금해져 검색해 보니 '금반지'란 제목의 글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1 최지건
    작성일
    13.10.14 18:07
    No. 7

    굉장히 옛스러운 문체라. 저는 방망이 깎던 노인이 생각 났습니다.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5 02:21
    No. 8

    그런 유명한 글과 비교하시다니....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0 낭만거북이
    작성일
    13.10.14 18:19
    No. 9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진짜 요즘에 보기 힘든 옛스러운 문체네요. 장르소설보다는 수필집 같은거 써보시면 어떨까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5 02:23
    No. 10

    수필집을 쓴다고 누가 일부러 읽어 봐 주겠습니까. 일단은 글로써 먹고사는 길부터 뚫는 것이 급선무라는....ㅜ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믌고기
    작성일
    13.10.14 18:20
    No. 11

    수준이 너무 높아서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5 02:25
    No. 12

    딱이 이해해야 할 의미 같은 건 없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유니셀프
    작성일
    13.10.14 19:40
    No. 13

    뭔가 기고하시는 글인 줄 알았어요. 굉장히 수려하다고 해야할지 옛스럽다고 해야할지..술술 읽힙니다. 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5 02:26
    No. 14

    제 문체가 그렇게 고풍스러운가요? 같은 댓글이 셋씩이나.... 아무튼 술술 읽힌다니 칭찬으로 받아들이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flybird
    작성일
    13.10.14 20:14
    No. 15

    수필한편 잘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10.15 02:27
    No. 16

    엉성한 글인데 수필이라 불러 주시니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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