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LG공장에서 한 반 년 일했었다.
LG 산하의 청소용역업체에서 세탁기나 냉장고 시제품 폐기물들을 전동차에 실어 폐기장에 버리는 것이 내 일이었다.
그럭저럭 착실하게 일하기는 하지만 일 머리가 딸린다는 평가를 받으며 열심히 살던 어느 날 저녁, LG 정직원 한 명이 내게로 와서 블랙박스에 찍혔다는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내가 전동차를 몰고 어두컴컴한 주차장을 지나가는 영상이었다.
내 전동차가 지나가는 순간에 삐이ㅡ 소리가 들렸다.
그게 바로 내가 몰던 전동차가 거기 주차돼 있던 자기 차를 툭 치고 지나가는 순간이란다.
그게 이틀 전 일이었는데, 그 동안에 자기 차를 긁고 지나간 사람이 누군지 알지 못하다가 고장났던 블랙박스 화면을 이제야 복구했다는 얘기였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 주차장이 바로 내가 버려야 하는 폐기물들을 쌓아 두는 공간과 이어져 있어 하루에도 대여섯 차례는 내가 전동차를 몰고 지나가곤 했는데, 워낙에 협소하고 어두컴컴하여, 게다가 전동차 뒤에 대차까지 매달고 지나가노라면 매번 주차돼 있는 차들을 건드리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지곤 했으니까.
아무튼 내가 남의 차를 긁었다고 그러고 차 주인이 나타났으니 보상을 해야 했다.
가뜩이나 소장한테 잔소리를 듣고 살던 터라 가능하면 내 돈으로 수리비를 갚고 회사에는 이 일을 알리지 않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범번가 뭔가를 새로 가는 데 60만 원 정도 나올 것 같다고?
아무튼 알았다고 대답하였다.
“당연히 보상은 해드려야죠. 한데.... 보시다시피 몇 푼 안 되는 월급 받고 사는 사람이니 가능한 한 좀 싸게 해주세요.”
그러자, 자기도 이런 일을 빌미로 남에게 덤태기를 씌우는 사람은 아니라고, 가능한 한 돈이 덜 들게 해주겠단다.
“네, 믿겠습니다.”
방실방실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이 쓰려 왔다.
으.... 피 같은 내 돈.ㅜㅜ
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60만 원이 80만 원으로 늘어나 있었다.
조금 고민이 되었다.
한 달에 잔업까지 모두 쳐서 150만 원 받고 사는 처지에 월급의 반을 뜯기다니....
그리고 또 그 다음날ㅡ
최종 가격이 95만 원으로 확정되었단다.
견인차 비용까지 모두 합쳐서 그렇단다.
전화를 끊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역시 그 정도의 돈은 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회사에다 사고 얘기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일하다가 다친 사람 치료비도 안 내 주는 회사 분위기를 생각하면 입이 안 떨어지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회사 일을 하다가 낸 사고 아닌가.
업무 중에 낸 사고를 왜 사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가.
나처럼 이렇게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근로자들 권익이 이 모양 이 꼴인 거다....
회사 사무실로 찾아가서 사고 얘기를 했더니 예상했던 답변을 한다.
회사에선 그런 돈을 내주지 않는다고, 사고를 낸 본인이 부담하라고, 지금까지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늘 그렇게 해왔다고....
여차하면 회사를 그만둘 각오를 하고 창원 노동청에 상담 글을 올렸다.
평소에 나만 보면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리던 소장이 뒤늦게 얘기를 듣고 나를 불렀다.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소장은 ‘일을 이렇게 하는 당신에게 앞으로 믿고 일을 시키겠느냐’는 소리를 하였다.
가뜩이나 눈치가 보이던 터라 ‘이 달까지만 일하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라는 대답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ㅠㅠ
그런데 한 가지ㅡ
그 차 주인이라는 젊은 사람, 생각할수록 괘씸하네.
나한테는 범버 수리비 80만 원에 견인차 비용 15만 원을 불렀던 그 친구, 소장이 직접 나서 깐깐하게 따지자 수리비는 50만 원, 견인차 비용은 5만 원으로 내려갔단다.
그러니까 자기는 남한테 덤테기 씌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 놓고 실제로는 나한테 덤테기를 씌웠던 것이다.
물론 애당초 사고를 낸 나한테 일차적 잘못이 있다는 거야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지만, 아직 대학생처럼 보일 만큼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3천만 원짜리 고급차를 몰고 다니면서 자기 나이 두 배 가까운 늙은 막노동자한테 덤테기를 씌울 마음이 생길까?
생긴 건 탤런트 수준으로 멀끔하고 착하게 생겨 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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