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에이서님이 적어주셨듯, 무협소설은 그 내부에서 스토리의 디테일을 정비하기에 매우 좋은 장르입니다. 당장에 김용의 연작소설만 봐도, 단순히 ‘무협'이랄 것이 아니라 각각마다 테마가 다르고, 주제가 다르고, 주인공의 성향도 다릅니다.
거기에 확고하게 잡혀진 장르적 법칙들은 각종 영화 등을 통해 널리 배급되었고, 당장에 참고가 될 만한 현실적인 ’사료'들도 조사가 가능한 물건이고요.
그렇다면 판타지 장르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주제' 자체에서 시작해서 모든 틀을 세워나갈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예를 들어, 에픽 판타지의 시초인 ‘반지의 제왕'의 경우, 엘프나 드워프, 멀린을 생각나게 하는 마법사들 같은 설정은 전설과 동화(페어리테일)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만, 그것 자체가 하나의 ’신화'를 위해 체계적으로 짜여 세계를 구축합니다.
코스믹 호러 장르의 경우, ‘인간의 인식' 자체를 부수기 위해 끔찍하고 반항할 수 없는 거대한 외계존재를 투입합니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불사의 존재가 갖는 고뇌를 표현하기 위하여 ‘뱀파이어'라는 고전적인 아이콘을 극히 세련된 방식으로 불러들였죠.
십이국기의 경우, 작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은하영웅전설'에서 표현된 ’부패한 민주정 vs 명군의 전제정'의 테마를 직접 따와서, ‘왕과 기린'이라는 통치제도에 대한 특이한 시스템으로 짜여있는 세계를 형성하여 그것 자체만으로 작 내의 스토리를 이끕니다.
가까운 것을 들어보면, ‘드래곤 라자'는 주제를 위해 ’인간'과 ‘드래곤'의 관계를 역사로 규정하고 그 사이에 ’드래곤 라자'라는 소제를 넣었으며, 눈마새와 피마새로 오면 이러한 소제 자체가 주제와 테마를 설명하거나, 그 자체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요소들은 더욱 많아지지요.
단순히 “누구나 알고 있는 판타지 세계”에 “내가 만든 등장인물이 강해지는 이야기"만을 쓰는건... 판타지의 매력을 백분 짜내는 것이라기 보다는,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한 팬픽'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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