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항상 문피아에 오면 느끼는 것이 장르시장의 질적저하와 판매저조등의 탓을 불법스캔, 대여점, 책구입 저조등으로 돌리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이 있어서 글을 써보려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장르시장의 붕괴는 불법스캔본의 탓도 대여점의 탓도 아닙니다. 이건 그냥 시대의 흐름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쇄매체의 종말과 문학의 암흑기입니다.
첫째로, 과거와 달리 이미 장르소설은 대중문화의 중심이 아닙니다. 과거 무협소설, 판타지소설 등은 우리 대중문화에서 상당히 큰 축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때만해도 만화방, 대여점에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아주 붐비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중고등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대여점이 아니라 피씨방입니다. 과거 무협소설을 들고서 담배를 피우며 소일거리하던 아저씨들도 이미 피씨방에서 인터넷 화투를 치고 있지요. 밤늦게 집에서 추리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청년은 이제 카톡을 두드리고 온라인 게임을 하고 있지요. 이미 장르소설의 위치는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밀려나있습니다. 한 마디로 스캔본으로 열심히 장르소설보던 친구가 어느 날 스캔본이 없어진다면 그 친구는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디아3나 해볼까'쪽으로 가는 세상이죠.
둘쨰로, 문학시장 자체가 이미 그 영역을 많이 잃었습니다. 이것은 첫째와 연결되는 말인데 이미 과거에 수십만, 수백만권씩 소설들이 팔리고 인기있는 시집은 수십만부씩 나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현대는 워낙 많은 놀거리와 매체들이 등장했고 문학은 그 영역을 많이 잠식당했고 앞으로는 더 그럴 것으로 예측합니다. 장르시장 뿐만 아니라 문학에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뛰어난 기량을 갖춘 작가들이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과거라면 소설지망생이었을 인재들이 방송작가, 게임시나리오에디터등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조정래씨가 태백산맥을 집필 중이라면 그 분은 완결내봐야 계속해서 골방에서 글을 쓰셨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셋째로, 인쇄매체가 점점 기울고 있습니다. 도서관계에서도 이 문제로 이만저만 고민이 아닌데, 과거 인쇄매체가 라디오, tv같은 선택제한적인 소수의 매체들의 우위에 서서 대부분의 정보전달의 매개였다면 이제는 컴퓨터와 넷의 등장으로 그 위치를 잃었습니다. 정보전달이든 흥미위주이든 인쇄매체를 매개로하는 분야들이 점점 사장되고 있습니다. 장르시장도 그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전자책, 북큐브같은 넷상의 소설등 많은 방식을 고안하고 있지만 과거의 인쇄매체만한 위력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상의 1,2,3번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계속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지 결코 이것은 대여점이나 스캔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큰 흐름이 아닙니다. 대여점과 스캔본이 '전혀'없는 세상이 된다해도 장르시장의 계속되는 붕괴는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상의 상황들로 가장 책을 구입하는 '큰 손'인 도서관계에서 조차도 '도서 구입비'로 산정된 예산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드래곤라자같은 양질의 장르소설이 아니라 와룡강 소설같은 양판소 무협들도 도서관에서 구입해서 비치한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 도서관들이 더 이상 장르소설까지 구입 할 정도의 도서구입예산이 없습니다.
그래서 웃기게도 가장 장르소설을 많이 보유한 도서관의 자료실은 국립중앙도서관의 어문학자료실입니다. 무협소설과 판타지소설이 엄청나게 있는데 그 이유는 국중은 '납본제(국가대표도서관으로 국내에서 출판되는 모든 서적을 납본받는 제도)' 떄문에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장르소설을 국중에 납본하다보니 그렇게 많아진 것입니다.
장르소설이 살아남으려면 책이라는 '매체'를 벗어나서 과거의 인쇄매체와 버금가는 위력을 가질 수 있는 신매체를 찾아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스캔본 단속이든 뭐든 무슨 수를 써도 이 배가 기울어가는 것을 막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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