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아. 가난하게 살더라도 작가를 할 걸. 나는 어차피 가난 같은 거 신경도 안 쓰는데.’
그 때가 시간이 없을 때였죠. 생업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문피아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죠. 일이 끝나면 피곤에 지쳐서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면 해야 할 일들을 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하다보면 다시 일을 가야 되고. 그럴 때 생각했죠. 나는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무언가의 스토리를 만들고. 그것들을 상상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데. 수없이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적어지지 못해 희미해져가는 걸 느끼면서. 그리고 제 나이가 먹어가는 걸 느끼면서. 나는 모든 이야기를 다 써내고 싶은데 내가 이대로면 이야기를 다 적어낼 수 있을까? 라는 후회가 있었죠.
그런데 전업작가를 고르는 건 쉬운 게 아니었었죠. 지금 다시 돌아가면 무슨 선택을 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선택일 것 같긴 합니다. 단순히 돈이 적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두려웠던 건 가난이 아니라. 제가 그런 사람이었던 거죠.
저는 좋아하는 걸 좋아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거죠. 제가 좋아하는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하는 사람이었고. 주변인의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사람이었고. 주변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던 거죠. 사실 이런 주체적 표현보다는 주변인들을 실망시키는 행동을 못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겁쟁이이면서 용기 없는 사람인 것이죠.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죠.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기도 하구요. 글 쓰는 것을 정말 좋아하지만. 그리고 글 쓰는 것에 자긍심도 있지만. 글 쓰는 일이 직업이 되는 건 두려운 일이었죠. 가난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글로 돈을 버는 일이 두려웠습니다.
전 태어나서 국어를 1등급 받아보지 않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이죠. 그리고 정신이 산만하고 불안지수가 높고, 청력이 안 좋아 제가 가장 못하는 부분이 국어듣기인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언어영역을 매우 잘했습니다 언어영역을 다 풀고나면 항상 15분 정도 남았고. 그 시간동안 지문을 정독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좋아하죠.
그런 제가 이과를 간다고 햇을 때 많은 분들이 의아해했죠.
하지만 전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일보다 항상 해야 할 일이 우선되는 사람이고. 좋아하는 일을 남에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매우 극도로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죠. 얼마나 부끄러워하는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을 직업으로 하면서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을 만큼이나요.
그래도 지금은 사실 아쉬워하진 않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언어를 더 잘할 수 있었고. 글을 잘 쓸 수 있었고. 글을 좋아할 수 있었다구요. 글이란 건 결국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글은 솔직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솔직한 마음을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어. 아니 내뱉어낼 수 없어. 도저히 솔직함을 내뱉을 용기가 나지 않아. 가장 문학적인 표현으로. 내 솔직함을 가장 근사한 거짓말의 형태로. 내뱉어낼 수 있는 거짓말로 솔직함을 내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극도의 거짓말쟁이에. 극도의 부끄러움을 타고. 극도로 절망적이기에. 극도로 불안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글을 좋아하고. 이렇게 완벽한 글을 써낼 수 있던 거죠. 그렇게 생각하네요.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