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리플로 달려고 썼는데 너무 길어진 것 같아서 새글로 달아봅니다. 이 글을 쓰고서 제 마음고생이 좀 있겠지만 며칠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수위를 넘어선 비난글을 그냥 보고있을 수가 없어서 글을 써봅니다.
소위 달력식 사업이라는 말이 있지요. 어떤 일을 차분히 오래 준비해서 하지 못하고 매년 되풀이되는 일정따라 기념일 챙기기 바쁜 식으로 전개되는 일들. 아무리 일본문화가 좋아서 죽고 못살더라고 적어도 일년 중 8월 15일 하루만은 안된다, 자제하라고 말할 수는 있지요.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돌출행동을 한 십대들을 보면 곱게 보이지 않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런 날 일장기 들고 일본 만세라고 외치고 다녔던 사람도 아닌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진까지 불법펌질하면서 부모욕보다 더 심한 욕까지 먹었을 몇몇 십대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닐런지요. 여론의 치도곤을 당하고 있는 그네들 한번 붙잡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요. 그렇게도 일본이 좋아서 광복절날 그랬나고? 아마 돌아오는 대답은 단지 코믹스 행사날짜가 그날이어서 그랬고 자기가 너무 좋아하는 만화라서 등장인물들처럼 꾸며보고 싶었다고 할겁니다. 몇년 더 지나고 나이더 먹으면 당연히 그때가서 자기 스스로도 자신의 생각이 부족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일에 너무 엄한 책임을 묻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분노해야할 대상에 분노하지 않고 헛다리짚는 모습을 보는게 가장 답답합니다. 어떤 시인의 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는 왜 항상 조그만 일에만 분노하는가'라는 제목의 시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불법을 자행하고 있던 군부독재 정권에는 저항도 못하면서 설렁탕에 먹지도 못할 힘줄덩어리만 얹어준 돼지같은 식당여자'에게만 화를 내는 자신을 풍자한 시가 있습니다. 우리가 광복절에 화를 내야할 대상은 따로 있습니다. 제발 물타기에 넘어가지 말고 한번 어이없어하고 넘길건 가볍게 좀 넘기자구요.
일제시대때 독립운동 하던 분들 밀고하고 탄압하면서 영화를 누렸던 식민지 관료들과 전문직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주류가 되고 떵떵거렸던 것은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고 과거문제 좀 청산하고 가자면 먹고 살기 힘든데 왜 그러냐는 말들이 그렇게 나오는게 지금 우리나라입니다. 옛날에도 똑같았지요.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인조반정으로 집권해서 후금이 강성해하는 현실 속에서 친명배금을 주장했던 서인정권은 누르하치의 2만 군대에 짓밟혀서 삼전도의 굴욕까지 겪었지요. 철수하는 와중에 청군들이 포로로 잡아간 여자들을 나중에 돈을 내고 되찾아왔음에도 이들을 '환향녀'라고 멸시하고, 유서깊은 양반가에선 자결까지 강요했었죠. 도대체 왜 그런겁니까? 그럴 정도로 후금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으면 군대를 길러서 전쟁이라도 해볼 것이지. 그러지는 못하고 자신들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자기들이 지키지 못했던 약자들에 대한 잔인한 응징으로 풀고.
일제시대 위안부 문제도 똑같습니다. 일본하고 수교하고 197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학계말고는 거론도 되지 않았지요. 이는 누구도 자신이 위안부였다고 말하고 나서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 그렇게 말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더러운 것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 이미 포항제철과 국가 자존심을 엿바꿔먹어버린 군부독재 정권에 뭘 기대하겠습니까?
말이 길어지고 논지에서 좀 벗어나기도 했는데 제가 말하고픈 건 왜 아직도 과거 역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진솔한 사과를 거부하는 일본정부, 그리고 현재 일본사회를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일본의 보수우익 세력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거의 안하고 키보드도 두드리지 않으면서 일본문화가 좋아서 나는 광복절에도 즐긴다는 어린 학생들만 붙잡고 늘어지는거냐구요. 이들의 잘못은 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예의부족 정도일 뿐입니다. 민족 반역자가 되어서 등뒤에서 칼꽂은게 아니구요. 언론에서 떠드는대로 일년에 하루있는 광복절을 그런 식으로 학생들 물어뜯으면서 보내는게 뜻깊은 일입니까? 제발 진짜 분노를 보내야할 대상을 잘 보고 표출했으면 좋겠네요.
끝으로 정말 답답한게 왜 문화적 취향과 현실에서의 개인의 인격이나 가치관을 연관지어서 생각하려고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한 개인적인 문제 아닌가요? 솔직히 문외한이 무협소설보면 중국풍 마초 판타지라고 해도 별로 할말이 없지요. 중화가 새외세력보다 항상 우월하다는 뿌리깊은 자민족중심주의, 영웅은 호색이란 말로 대변되고 주로 수동적 위치에 머무리는 여주인공들이 많은 데서 아무래도 여자들은 보면 딱 마초라고 하겠죠. 거기다 복잡한 일들은 항상 강자의 무력으로 깔끔하게 정리된다는 무력중심주의까지..메스를 가져다대면 끝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현실 속에서 자기가 무협소설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 사람을 친중국적이고 힘만 숭상하는 꼴통마초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정신이 나간 사람이겠죠.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것과 그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보이는 인격을 연관짓게 되면 이처럼 우스운 겁니다. 그런데 왜 일부 학생들의 문화적 취향과 그들의 인격을 연관지어놓구서 온갖 비난의 상찬을 벌이는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요.
정말로 이런 행동을 한 학생을 지금처럼 욕할 수 있는 분은 구한말과 일제시대의 역사를 상세히 알고 있고, 평소에 일본문화와 관련된 것은 보지도 듣지도, 사지도 않았던 분이라고 봅니다. 자기들도 평소에 일본영화보고 일본만화보고, 애니메이션까지 죄다 보면서 자기는 그래도 광복절날 일본옷 코스튬 플레이는 하지 않았다고 그들을 욕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애국심과 우월감에 기름칠하는 모습 별로 보기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광복절에 즈음해서 시민단체와 친일문제연구소 등에서 시민성금을 위해서 일본 새역모의 역사왜곡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한 일본 주요일간지 신문광고 게재비용을 모금했을 때는 반향이 적어서 원래 3~5회 하기로 한걸 겨우 몇개 신문에 2회 게재할 비용밖에 마련하지 못했다지요. 이처럼 정작 해야할 일도 못하고 욕할 대상을 욕하지도 못하면서 왜 속된 말로 분위기 파악 못한 일부 십대들에게는 가혹한건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이렇게 일년에 하루 마녀사냥하듯 분위기 파악못한 몇몇을 신나게 씹어주고 일년내내 잊고 살면서 친일잔재가 청산되길 바라는 건 요원한 일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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