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와 나]이제 우리는 일본이 두렵지 않다
최병권 논설위원 | 04/08 12:35 | 조회 9808
요 며칠 사이 사람들을 만나면 말도 많고 화도 많고 걱정도 많다. 낙산사가 불타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이 과거 청산이냐’라고 빈정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도와 일본의 ‘새 역사 교과서’를 두고 ‘좋은 해법이 없을까요’라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독도든 뭐든 국가와 민족 생각만 하면 열통이 나 아예 관심을 꺼버리고 코미디 연속극만 본다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일본은 왜 저럴까. 일본의 우경화는 흔히 말하듯이 한줌도 안 되는 우파 인사들의 음모인가 아니면 일본 사회 나름의 위기의식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인가. 일본의 우경화가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라면 그것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경제위기인가 정치위기인가.
일본의 지난 10년은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일본은 여전히 잘 나가는 나라이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습관처럼 치달았던 우경화의 길을 다시 걷고 있다.
왜 그럴까. 여기에 대한 대답이 될지 모르지만 프랑스 신문 르몽드에 실린 ‘이제 우리는 일본이 두렵지 않다’는 기사가 있다. 일본이 ‘떠오르는 태양’이던 1990년대 초 ‘누가 일본을 두려워하지 않으랴’라고 하던 유럽 신문들의 기사와 아주 대조가 되는 기사이다.
‘이제 일본이 두렵지 않다’는 ‘경제대국, 정치 소국’의 일본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와 세계화의 공세 앞에서 자기 정체성을 잃고 파편화되어 가고 있는 일본 청소년층의 경조부박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신세대들의 안목이 시공간적으로 짧고, 지적수준이 별것 아닌 것임이 확인되고 있는데 뭣 때문에 일본을 두려워할 것이냐는 이야기이다. 일본 청소년들의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말해주는 갖가지 심층 취재 기사를 이 신문은 동시에 싣고 있다.
말하자면 일본은 경제위기나 정치위기가 아닌 정체성의 위기를 겪고 있다는 것인데, 일본 신문 요미우리도 21세기 새해 아침 통단 사설에서 이 정체성의 위기를 최대 이슈로 다루면서 ‘화혼’(和魂) 교육에 대해 긴 말을 하고 있었다.
또 히로히토 천왕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한다든가, 그의 아들 아키히토 천왕이 올 여름 미국에의 항복을 거부하고 수천명의 일본군이 ‘반자이’(만세)를 부르며 절벽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은 남태평양 군도의 옛 전쟁터를 방문하겠다는 것 모두가 일본인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한 캠페인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세계화를 일본인들은 일본 앞바다에 뜬 21세기 초의 또 하나의 흑선으로 보고 있다. 페리 제독의 흑선 앞에서 일본의 막부체제가 무너진 것처럼 세계화의 흑선 앞에서 일본 사회가 탈통합의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는 정체성의 위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러했던 것처럼 일본은 국민통합을 위해 민주적인 인간, 민주적인 사회에로의 어려우나 값진 길이 아니라 국가주의와 우경화라는 쉬우나 싸구려인 배타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불행이다. 타인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라고 하지만 일본의 불행이 동북아 전체의 불행으로 번진 과거사가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르몽드 기사처럼 이제 우리는 일본이 두렵지 않다. 일본이 올바른 길을 걸을 때 두려운 것이지 진실보다는 허구의 편에 서는데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허구가 진실, 비민주가 민주를 이긴 역사가 없다. 그들이 무슨 길을 걷든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고, 결국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들이 허구의 편에 설 때, 우리는 진실의 편에, 그들이 쉬운 길을 갈 때 어려운 길을, 그들이 폐쇄적일 때 우리는 개방적이고, 그들이 국가주의의 우경화로 기울 때 우리는 민주와 인권, 인류 보편의 가치를 존중하는 문자 그대로 개명된 민주사회에로의 길을 꾸준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낮은 생산성과 무질서, 선동과 독단의 껍데기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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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매일 가서 읽는 인터넷 신문 중 한 논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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